한국일보 경영진 '성인지 감수성' 연이어 논란

박지은 기자 2024. 10. 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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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자 연수 차별, 미스코리아 '딥페이크' 질문
노조 "참담 그 자체" 비판 성명
사측, 입장문 계획… 시점 미정

“이번 사건을 접한 구성원의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다. (중략) 경영진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9월26일 한국일보 노조 성명)

최근 잇따라 발생한 한국일보 경영진의 성인지 감수성 논란을 두고 내부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이유로 여성 기자를 해외연수 선발에서 탈락시킨 데 이어 한국일보가 공동주관으로 참여한 미스코리아 행사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희화화’하는 질문이 나오면서 내부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태다. 특히 한국일보 안팎의 비판이 거셌던 육아휴직 기자 해외연수 지원 탈락 사건의 경우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났음에도 한국일보 사측에선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아 내부는 사측의 행보를 두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9월24일 한국일보 사옥에 부착된 <육아휴직자 차별을 규탄한다> 성명서. 해당 성명엔 한국일보 평기자에서 차장, 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 107명이 이름을 올렸다. 그간 한국일보 기자들이 냈던 연명 성명 중 최다 인원이 참여했다고 한다. /독자 제공

8월29일 한국일보가 진행한 ‘외부기관 해외연수 추천 대상자 선발’ 심사에서 이성철 사장은 A 기자에게 “최근 10년간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이 많았다”며 관련 질문을 했다. 또 김영화 뉴스룸국장은 해당 기자에게 선발 탈락을 통보하며 “가장 걸림돌이 된 게 출산, 육아휴직 때문” “다른 사람하고 똑같은 조건이 아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이에 9월23일 노조 비판 성명과 다음날 한국일보 기자 107명의 연명 성명이 이어졌다. 이들은 “육아휴직자에 대한 명백한 차별 행위”라며 경영진에게 해당 조치에 대한 사과와 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어 2024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서 나온 딥페이크 질문에 대한 논란까지 불거졌다. 9월24일 열린 해당 대회에선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진짜 나와의 갭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후보자들에게 던져졌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한국일보 자회사 글로벌이앤비가 주최하고 한국일보는 공동주관사로 참여한다.

9월26일 한국일보 노조는 성명을 내어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반으로 사람 얼굴 이미지를 합성하는 기술을 뜻하는 용어이지만, 성착취와 성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며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고 후보자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연령대 여성들이다. 단순히 불편함을 주는 것을 넘어 성범죄 기술을 희화화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폭력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 성명에 따르면 해당 대회의 질문지는 사전에 작성돼 심사위원을 비롯한 경영진들의 검토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질문 적절성에 대한 비판이 안팎으로 커지자 글로벌이앤비는 같은날 SNS에 사과문을 개제해 “딥페이크를 이용한 불법영상물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어 자체를 사용한 것은 저희 주최 측의 분명한 잘못”이라며 “AI 기술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세대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질문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성원의 비판 성명에 “참담함” “수치심” 등의 표현이 담긴 건 무엇보다 이번 논란이 모두 한국일보 기자들이 지향하는 콘텐츠 방향과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일보는 기사와 오피니언 칼럼에서 시대착오적인 기업의 육아휴직 사용자 차별을 꾸짖었”으며(한국일보 기자 107명 성명) “딥페이크 범죄에 대해 엄정한 대응을 촉구하는 보도로 일관했고, 언론사 중 처음으로 홈페이지 내 모든 기자 페이지에 딥페이크 범죄 예방 경고 문구를 삽입”(한국일보 노조 성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들을 접한 구성원은 “이런 회사에 다닌다는 게 창피하다”고 한목소리로 토로하고 있다.

9월25일자 한국일보 지면 1면에 2024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결과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9월26일 한국일보 노조 성명에 따르면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1년에 하루만큼은 신문을 보고 싶지 않다. 신문 1면에 미스코리아 행사가 큰 사진으로 게재되는 날”이다. 이날 한국일보 노조는 한국일보가 공동주관사로 참여한 미스코리아 행사서 나온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질문 논란에 대해 비판 성명을 내어 “경영진은 미스코리아를 폐지하는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한국일보 구성원은 경영진에 성 상품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미스코리아 대회 폐지를 결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노조는 해당 성명에서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1년에 하루만큼은 신문을 보고 싶지 않다. 신문 1면에 미스코리아 행사가 큰 사진으로 게재되는 날”이라며 “회사는 전통을 지키겠다며 사업을 고수하는 대신 성 상품화 논란을 줄여 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서 보듯 미스코리아는 이미 ‘고쳐 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어 “여성의 외모를 경쟁 대상으로 삼는 시대착오적인 행사를, 정론지를 지향하는 언론사가 주관한다는 이 근원적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매년 논란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며 “또다시 ‘개선’을 운운하며 어물쩍 넘어가려 할 경우 더욱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바깥의 비판도 거세다. 육아휴직자 해외연수 탈락 관련해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는 연이어 비판 성명을 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9월25일 성명에서 “육아휴직을 통한 경력 단절은 대부분 여성 언론인이 직면하는 현실이다. 이번 일이 한국일보의 사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넘어 우리 언론계 성평등 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태’로 봐야 하는 이유”라고 했고, 한국여성기자협회는 다음날 “연수 불가 사유로 육아휴직에 의한 공백을 언급한 것은 명백한 차별적 행위인데 한 달이 지나도록 해당 발언을 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사측은 해당 논란에 대한 입장문을 낸다는 계획을 노조에 밝혔으나 구체적인 입장문 내용, 발표 시점에 대해선 명확하게 알린 게 없는 상황이다. 이에 기자협회보는 한국일보 관계자에게 입장문 발표 계획, 구성원 요구 사항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으나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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