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정후) 덕분에 야구 볼 맛 난다” SF 깨운 바람의 손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야생마와 매드범의 ‘충돌’

바람의 손자(26). 그에게 8살 많은 외국인 친구가 있다. 야시엘 푸이그(34)다.

과거의 팀 동료다. 지금은 뛰는 곳이 서로 뒤바뀌었다. 예전에는 쿠바산 야생마의 무대가 캘리포니아였다. 지금은 ‘바람…’이 그곳에서 활약 중이다.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이 훈훈하다.

그런데 묘한 운명이다. 친구가 뛰는 팀 말이다. 푸이그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서린 곳이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다.

가뜩이나 피가 뜨거운 캐릭터다. 고인이 된 빈 스컬리 옹이 ‘야생마’라고 불렀다. 좌충우돌, 천방지축…. 20대에는 훨씬 더했다. 그런 그를 폭발하게 만든 적이다. 바로 지금 절친이 몸 담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6년 전 일이다. 다저 스타디움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 자이언츠의 선발은 매디슨 범가너다. 흔히 ‘매드(Mad)범’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광기’ 어린 승부욕의 화신이다.

7회 말이다. 푸이그를 땅볼로 처리했다. 이닝을 끝내는 아웃이다. 마운드를 내려가며 포효한다. 명백한 도발이다. 야생마가 그냥 넘길 리 없다.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된다.

매드범이 기꺼이 받아준다. 그러면서 일갈을 쏟아낸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 시비 걸 때 첫마디 말이다. “뭘 봐.” 영어로 “Don't look at me”였다. 스타디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샤우팅이었다.

전운이 감돈다. 우르르~. 양 팀 선수들이 몰려나온다. 데프콘(전투 준비 태세)이 발령된다. 하지만 다행이다. 거기서 멈췄다. 더 큰 일은 없었다.

다음 날이다. 야생마가 SNS에 사진을 올렸다. 클럽하우스에서 찍은 컷이다. 동료 두 명과 눈을 가린 포즈다. 티셔츠의 문구가 눈길을 끈다. ‘#DON’T LOOK AT ME’라고 새겼다.

푸이그(가운데)와 동료들이 올린 ‘#DON’T LOOK AT ME’ 티셔츠 인증샷. 야시엘 푸이그 SNS

부글거리던 도시에 희망이

범가너와 푸이그의 신경전. 그건 두 팀의 관계를 상징한다. 뿌리 깊은 라이벌리다. 그야말로 앙숙이다.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만큼 치열하다. 날카롭고, 강렬하다.

뉴욕에서 시작됐다. 뉴욕 자이언츠,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부터 서로에게 지고는 못 산다. 그게 서부로 넘어왔다. 하필이면 같은 캘리포니아에 터를 잡았다.

그것도 LA와 샌프란시스코다. 서로 맹주를 자처하는 도시다. 심지어 디비전도 같다. NL(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다. 도망갈 곳도 없는 좁은 링에 마주 선 꼴이다.

이제까지는 그럭저럭 호각지세였다. SF도 짝수해의 법칙을 만들며 선전했다. (2010년, 2012년,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

하지만 최근 10년은 다르다. 다저스가 독보적으로 성장했다. 2013~2024년까지 12시즌 동안 원맨쇼를 펼쳤다. 이 기간에 무려 11번이나 지구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딱 한 번. 2021년만 자이언츠의 1위를 허락했다.

그러니 민심이 오죽하겠나. 도시(SF) 전체가 부글거린다. ‘우리 팀’이 지는 것도 열받는다. 그런데 잘 나가는 상대가 하필 다저스다. 눈이 시고,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야구장 쪽은 아예 쳐다보기도 싫다.

귀 막고, 눈을 감았다. 절망과 탄식이 가득하다. 한숨 소리만 들린다. 그런 무렵이다. 뜻밖의 희망이 피어난다. 기대하지도 않던 승리 소식이 들린다. ‘그러다가 말겠지.’ 하지만 아니다. 하루, 이틀…. 수군거림은 점점 커진다.

‘또 이겼대.’ ‘다저스 보다 잘하고 있대.’ 그런 두근거림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180도 달라진 여론

“자이언츠의 지난 2주 동안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여러 상황 속에 전개된 경기에서도 많은 승리를 따냈다. 무엇보다 1, 2회를 어렵게 시작한 게임도 결국 역전시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NBC 스포츠 BAY AREA)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를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상대를 굉장한 방식으로 압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점점 더 흥미로운 페넌트레이스가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

“선발 라인업으로 출전한 선수들이 멀티 출루를 만들어낸다. 놀랍도록 생산적인 공격력을 발휘한다. 이런 모습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들의 상승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샌타크루즈 센티널)

칭찬 일색이다. 그들을 향한 미디어의 눈길이 180도 달라졌다.

전에는 싸늘했다. 손가락질과 비아냥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놀라운 약진에 경이로운 시선을 보낸다. 유력한 매체들이 감탄과 찬사가 봇물을 이룬다.

특히 ‘죽음의 조(NL 서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LA 다저스와 팽팽한 3강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시즌 전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당초는 다저스의 독주가 당연했다. 확실한 전력 보강을 이룬 탓이다.

반면 약체로 분류됐던 자이언츠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다. 무엇보다 라인업의 짜임새가 돋보인다. 고질적인 갑갑증이 해소된 느낌이다. 경기당 평균 득점(5.56)이 30개 팀 중 3위다. 다저스(4.65), 파드리스(4.63)를 훨씬 앞선다. (17일 현재)

물론 주역은 ‘HOO’ 혹은 ‘JHL’라고 불리는 타자다. 3번 이정후(Jung Hoo Lee)다.

그가 타선의 물꼬를 튼다. 때로는 찬스를 해결한다. 심지어 현란한 움직임으로 상대 배터리와 내야를 흔들어 놓는다. 가장 확실한 득점의 루트를 안내한다. 이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JHL, HOO… 호칭이 점점 늘어난다

포브스의 17일(한국시간) 기사다. 이런 제목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뜨겁게 출발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정후.’

이런 내용이다.

“SF 자이언츠는 지구 라이벌 LA 다저스처럼 최근 몇 년간의 자유계약 시장에서 최상위권 선수를 영입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윌리 아다메스와 저스틴 벌랜더는 주목할 만한 계약이었지만,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 블레이크 스넬 등의 다저스 선수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면서 바람의 손자 얘기를 꺼낸다.

“그의 첫 시즌(2024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순조롭지 못했다. (중략) 그런데 올해 초반은 다르다. 0.322-0.394-0.644(타출장)을 기록하며 공격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17일 현재).”

찬사는 이어진다.

“아직 초반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전반적으로 꽤 탄탄한 툴을 갖추고 있다. 타선의 거의 모든 위치에서 적응할 것이고, 높은 단계의 가치를 지닌 재목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가 제자리를 확고하게 굳히면, 라인업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유력 매체의 호평만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더 직관적이다.

“Jung Hoo Lee를 보면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완전 팬이 됐다. 그의 플레이는 놀랍고, 믿을 수 없다. 볼수록 매료되고, 더 큰 기대를 갖게 만든다.” (아이디 @nowa*****)

“JHL과 플로레스가 팀을 더 공격적으로 만들어주면서, 투타의 밸런스가 살아난다. 이것이 바로 자이언츠 야구다. 명문 구단의 정체성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이디 @TheChe*****)

“자이언츠가 다저스 위에 있는 순위표를 볼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디 @user-y7****)

“JHL CLUTCH!!!! 믿을 수 없는 야구를 하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부탁한다.” (아이디 @shrim******)

“그가 작년에 펫코 파크에서 첫 홈런을 쳤을 때 직관하는 행운을 누렸다. 저런 대단한 타자가 우리 팀에 와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이디 @james*****)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분다. 잠자던 이들을 깨운다. 드디어 시선을 모인다. 오라클 파크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야 야구 볼 맛이 난다.” 그런 소리가 점점 커진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