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미생들 인생 역전 돕기 위해 뭉쳤죠”

강호철 기자 2024. 10. 3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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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농구 선생님’ 하승진·전태풍·최윤아
남녀 프로농구 스타 출신 전태풍(왼쪽부터)과 하승진, 최윤아가 경기도 용인시에 전태풍이 마련한 농구 교실 체육관에서 공을 잡고 포즈를 취했다. 셋은 농구 선수 생활을 하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꿈이 꺾인 이들을 지도해 다시 꿈을 찾게 하는 ‘턴오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한 명이라도 프로에 들어가면 대성공이죠. 마음 같아선 셋 다 이름이 불리면 좋겠어요.”

지난 16일 프로 농구 무대에 도전하는 일반인들 대상 트라이 아웃이 열렸다. 프로 선수 신인 드래프트는 11월 16일. 이 드래프트 명단에 포함될 자격을 심사하는 자리다. 대한농구협회 소속이 아닌 일반인 16명이 참가했다. 소속 팀이 없는 ‘일반인’으로 분류되지만 프로 지명에서 외면당했거나 중간에 선수 생활을 그만뒀던 미생(未生)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등정하는 이들이다.

이날 16명 중 5명이 드래프트 신청 자격을 얻었다. 그중에는 지난해 10월 시작한 ‘턴오버 프로젝트’ 참가자 3명이 있다. 서문세찬(24·한양대 졸업), 이승구(23·경희대 졸업), 정연우(23·중앙대 졸업). 이들은 농구에서 실책을 저질러 공격권을 넘겨주는 턴오버(turnover)가 아닌 현실(인생)을 뒤집어보겠다는 각오를 담은 다른 턴오버를 꿈꾼다.

‘턴오버 프로젝트’ 기획자는 프로 농구 KC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하승진(39)과 전태풍(44). 프로 농구 스타 출신들이다. “은퇴 후 시작한 유튜브가 꽤 인기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한순간 회의가 들었어요. 제가 인생을 걸었던 농구로 발전적인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죠.”(하승진)

하승진은 영혼의 단짝과도 같은 선배 전태풍과 의기투합했다. 전태풍(미국 이름 앤서니 애킨스)은 미 청소년 대표를 지낸 하프 코리안.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KBL(한국농구연맹) ‘혼혈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미국 국적까지 포기하면서 제2의 인생을 일구고 있다. 은퇴 후 용인에서 ‘앵클브레이커’란 농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둘은 KCC에서 ‘꺼꾸리(전태풍 키 179㎝)와 장다리(하승진 221㎝)’로 통하며 호흡을 맞췄다. 은퇴도 같은 해 같은 날 하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친했다. 이번 프로젝트도 그런 관계 속에서 싹텄다.

남녀 프로농구 스타 출신 전태풍(왼쪽부터)과 하승진, 최윤아가 경기도 용인시에 전태풍이 마련한 농구 교실 체육관에서 공을 잡고 포즈를 취했다. /장련성 기자

야심 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많은 지원자 중 추려진 10명이 전태풍 용인 개인 체육관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훈련했다. 하지만 “4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기량이 쑥쑥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발전 속도가 느렸다(전태풍).” “좀 되는가 싶으면 안 좋은 버릇이 튀어나와 처음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하승진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태풍이 형하고 머리를 맞대고 얘기한 결과 우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마침 하승진 누나 하은주와 신한은행에서 같이 뛰었던 여자 농구 스타 최윤아(39)가 떠올라 도움을 청했다. “대표팀 코치를 그만둔 다음 뭐할까 생각하던 중 프로젝트 얘기를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무모하기도 하지만 용기 있는 일이잖아요?(최윤아)”

그게 ‘신의 한 수’였다. 하승진은 “우리 둘이 잡아내지 못하는 걸 최윤아가 보자마자 짚어주자 애들도 따랐다”고 했다. 미국 농구를 경험해 자율성을 추구하는 전태풍, 하승진과는 달리 코치 경험이 풍부한 최윤아는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쳤다. ‘이거 한 번 더 하자’ ‘진짜 마지막이다’라며 훈련시키는데 30분, 한 시간이 쑥 지나가기 일쑤였다고 한다. “애들이 나와 태풍이 형에겐 ‘형, 형’ 하는데 윤아에게는 ‘선생님’이라고 해요.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죠?”

한국 농구판에선 최고 스타였던 이들도 ‘턴오버’ 도전자들처럼 좌절과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미국 진출했을 때) 마이너 리그(NBA 하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샌드위치 하나 사서 반은 점심, 나머지 반은 저녁에 먹었어요. 월급이 800달러밖에 안 됐어요. 14시간씩 버스 타고 경기도 하고...”(하승진).

“신인 때는 주목받았지만, 생각보다 안 늘어 주전이 되기 전까지 2~3년간 고생했어요. 트레이드된다는 말도 들었어요. 떠날 때 떠나도 후회 없이 해보자고 마음먹고 하루도 안 쉬고 야간 훈련을 했죠.“(최윤아)

“전 인생 자체가 다 힘들었어요. 어렸을 때나 유럽 리그에서 인종차별을 하도 많이 당해 매일 싸웠어요. 한국에 와서도 문화 차이 때문에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죠. 그때 승진이 안 만났으면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줬거든요.”(전태풍)

이들 손을 잡고 첫 관문(트라이 아웃)을 통과한 ‘턴오버 프로젝트’ 생존자 3명에겐 진짜 도전이 남아 있다. 프로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 아웃보다 더 어렵고 좁다. ‘재수·삼수생’들인 이들이 어린 후배들을 제치고 프로 구단 낙점을 받을 수 있을지. 하지만 스타 3인방은 도전하는 과정에 일단 의미를 둔다. 전태풍은 “처음 ‘턴오버’ 시작할 때 의기소침하던 선수들이 다시 도전하려는 꿈을 키우면서 자기만의 색깔이 나왔다. 이 프로젝트가 단지 농구 실력만 키우는 게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도 도움을 준 것 같다”고 했다. 하승진·최윤아도 “다들 처음 봤을 때 (표정이) 어두웠는데 밝아지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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