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업체 판도 재편 83억450만 달러(약 11조906억원). 지난해 한국 게임 산업(이하 ‘K게임’)이 기록한 수출액이다. 전체 콘텐트 산업 수출액의 64.1%로, 최근 효자 수출 상품으로 명성 높은 K팝(8.1%)이나 K드라마·예능(6.4%)보다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바로 이 수출에서 기업 간에 희비가 엇갈리면서 K게임 경쟁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왕년의 3대 게임사인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3N’ 체제가 무너지고, 크래프톤을 필두로 하는 신흥 강자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복병으로 떠올랐다.
‘3N 시대는 가고 NK 시대가 왔다.’ 국내 게임 업계 관계자들이 최근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말이다. ‘3N’은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를, ‘NK’는 넥슨과 크래프톤을 각각 가리킨다.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세 회사가 K게임 전체에서 차지한 비중과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로 3N이라 통칭한 게 2010년대부터다. 특히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2010년대 넷마블이 급부상하기 전인 2000년대부터 이미 K게임의 터줏대감이자 절대자로 통했다. 그만큼 공고했던 3N 체제가 NK 체제로 재편되면서 수출 효자 상품인 K게임의 제작·소비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넥슨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게임 매출 1위
게임 업체의 올해 2분기 실적 발표가 모두 끝난 가운데 넥슨은 올해 상반기 매출 2조451억원, 영업이익 6579억원으로 선두 자리를 지켰다. 같은 기간 크래프톤은 매출 1조3729억원, 영업이익 6426억원으로 2위에 올랐다. 크래프톤은 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 비중)만 보면 47%로 넥슨(37%)마저 밀어내고 있다. 3N 중에 넷마블은 매출 1조3675억원으로 근소한 차이의 3위에 올라 체면을 지켰지만, 영업이익은 1149억원으로 넥슨과 크래프톤의 6분의 1 수준이다. 엔씨소프트는 상황이 더 안 좋다. 매출 7668억원으로 크래프톤과 넷마블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NK 체제 형성은 수출에서 기업 간 희비가 엇갈린 때문이다. 넥슨은 상반기 해외 매출이 1조1049억원으로 전년 동기(8749억원) 대비 증가하면서 해외 매출 비중도 상승(42%→54%)했다. 그러면서 올해 사상 첫 해외 매출 2조원 돌파가 유력하다는 평가다. 이는 넥슨의 핵심 지식재산권(IP)인 ‘던전앤파이터’ 등이 해외에서 꾸준히 통하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전 세계 모바일 게임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5월 중국에서 출시돼 세계 최대 게임 소비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블루 아카이브’도 일본에서 올 2분기 지역 매출 기록을 자체 경신했다.
이에 맞선 크래프톤은 해외 매출 비중이 94%에 달할 만큼 수출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회사의 대표 IP인 ‘PUBG: 배틀그라운드’는 2017년 처음 출시된 이후 폭발적 인기를 모으면서 전 세계 200개국 이상에 수출 중인 스테디셀러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선화 KB증권 연구원은 “배틀그라운드는 세계 최대 게임 거래 플랫폼인 스팀(Steam)에서 일간 최고 동시접속자 수 69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에서의 매출도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차기작 ‘다크앤다커 모바일’과 ‘인조이’로도 글로벌 게이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반해 수출에서 넷마블은 ‘현상유지’ 엔씨소프트는 ‘퇴보’로 크래프톤 같은 신흥 강자에 추격을 허용했다. 넷마블은 ‘나 혼자만 레벨업’ 등의 선전에 힘입어 올 상반기 해외 매출 비중 78%를 기록했지만, 전체 매출 규모가 비슷한 크래프톤에 비해서는 아쉬운 수치다. 다만 넷마블은 부진했던 올해 1분기에 비해 2분기에는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하면서 분위기 반전에는 성공한 만큼, 하반기 크래프톤과의 승부에서 재역전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는 “하반기 기대 신작 출시를 통해 글로벌 게임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시프트업, 한때 게임 기업 시총 3위 올라
엔씨소프트는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리니지’ IP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게 독이 되고 있다. 그 결과 올 상반기 해외 매출 비중이 35%로 3N 중 가장 낮고 크래프톤에 크게 뒤처진 것은 물론, 80%대의 펄어비스 등 후발주자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엔씨소프트는 3N 중 해외 매출이 유일하게 역성장(지난해 상반기 3302억원→올 상반기 2670억원) 중이다. 그래도 이런 약점을 리니지 IP의 압도적인 국내 실적으로 만회하면서 3N 가운데 하나로 군림한 게 과거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이마저 안 통하고 있다.
리니지 IP의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등 과금 요소에 실망한 ‘린저씨(리니지 하는 아저씨)’들이 등을 돌리면서 엔씨소프트는 2022년 2조5718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1조7798억원으로 30.8% 감소, 영업이익은 5590억원에서 1373억원으로 1년 만에 4분의 1 토막이 났다. 정효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엔씨소프트는 신작 ‘호연’에서 다양한 캐릭터 조합 등 여러 새로운 시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리니지 스타일의 인터페이스와 과금 요소가 시장의 거부감을 자극해 초반 성과가 부진하다”면서 “참신한 게임 개발을 향한 전략 변화가 절실하다”고 평가했다.
게임 업계는 이외에도 크래프톤에 스마일게이트·카카오게임즈·펄어비스를 더한 ‘SKKP’, 시프트업을 더한 ‘SK’ 체제가 형성돼 업계가 3N의 대항마인 신흥 강자 위주로 재편 중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엔씨소프트 출신의 김형태 대표가 이끄는 시프트업의 경우 올 상반기 매출은 1026억원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이 710억원으로 엔씨소프트(346억원)의 두 배였다. 해외 매출 비중도 80%대에 달한다. 그러면서 한때 게임 기업 중 시가총액 3위에 오르기도 했다(현재 4위).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 K게임의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장(한국게임학회장)은 “최근 게임 업계의 판도 변화는 소비자들이 과금 모델 등 기존 (K게임의) 인기 요소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실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며 “기존 수익 모델에 안주한 업계 경영진의 안일함이 후발주자들엔 기회를 제공 중”이라고 지적했다. 위 학장은 “기업들이 신선한 게임 개발에 집중해야 수출 기여도와 회사 실적의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