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담보도 못 믿겠다”… 정치가 빚은 ‘나비효과’ [뉴스 인사이드 - 레고랜드發 자금시장 쇼크]
신뢰 저버린 지자체 결정에 시장 패닉
英선 트러스標 감세정책 거센 후폭풍
‘제2의 대처’ 꿈꾸다 최단명 총리 오명
흥국생명 사태에 금융당국 대응 논란
2금융권 전체 유동성 위기 우려 높아
원·달러 환율 오르고 주가·집값 하락
글로벌금융위기 초입과 비슷한 징후
“정부, 시장 안정 대책 마련 서둘러야”
18일 금융업계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김 지사는 지난 9월26일 강원도중도개발공사에 대한 회생 신청을 예고하면서 강원도의 지급 보증 의무에 대해 사실상 디폴트 선언을 했다.
지급 보증에 대한 신용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지자체의 디폴트 선언은 국가가 담보한 빚도 떼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강원도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내년 1월 강원도중도개발공사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했지만 ‘유동성 쇼크’는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다.
국내 증권사와 건설사는 최근 몇 년간 넘쳐 흐르는 유동성과 부동산 호황에 힘입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형태로 많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이 같은 PF-ABCP는 건설산업의 주요 자금줄로 작용했는데, 최근 자금시장 유동성이 둔화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리스크는 커져갔다.
하지만 트러스 전 총리의 감세안은 영국 연기금의 파산 위기 등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영국 중앙정부 재무는 최근 몇 년간 이어져오던 저금리 기조로 올해 1분기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154%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영국 정부의 감세안은 국가 수입 감소,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국채 매각을 준비하는 등 ‘빚잔치’를 예고했다.
시장에 영국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채권값이 급락(채권 금리 급등)해 국채에 투자했던 영국 연기금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격 변동 폭의 몇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투자를 한 연기금은 채권값 급락에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 요구) 위기에 처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보증채무 디폴트 쇼크가 부동산 PF-ABCP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진 데 이어 금융당국의 규제가 제2금융권 전반적인 유동성 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5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조기상환(콜옵션)과 관련해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가, 6일 만에 번복해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위해 신종자본증권(자본)을 부채로 전환한다면 현재 157% 수준인 흥국생명의 RBC 비율은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150%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보험사가 RBC 비율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당국으로부터 영업정지, 경영진교체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에 흥국생명은 신뢰를 잃더라도 최악의 수를 면하기 위해 콜옵션 미행사라는 차악의 카드를 고민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지난 2일 이번 일과 관련해 “흥국생명은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 및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달리 말하면 금융위는 보험금 지급 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사태와 관련해 RBC비율 조정 등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흥국생명뿐 아니라 콜옵션을 앞둔 보험사들에 투자한 신종자본증권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제2, 제3의 ‘콜옵션 미행사’가 발생할 위험이 생겼다.
당장 한화생명이 내년 4월 흥국생명보다 2배 규모인 10억달러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맞는다. 내년 5월에 콜옵션이 예상되는 KDB생명의 신종자본증권 규모도 2억달러로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은 현재까지 별다른 변동 없이 조기상환을 한다는 방침이지만, 제2금융권의 유동성 리스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레고랜드발(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가 수면 아래 있던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를 드러냈지만, 역설적으로 위기를 조기에 대응할 기회를 잃지 않았다는 평도 존재한다.
14일 금융업계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해 ‘제2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규모를 45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산은)과 신용보증기금(신보)의 기업어음(CP) 매입도 ‘1조원+α’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금융당국은 전체 금융시장 유동성 위기에 대응해 ‘50조원+α 유동성 지원 조치’를 추진한다. 금융당국의 신속한 조치로 오늘날 자금시장의 ‘급한 불’은 잠재웠다는 평이다.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2006년 950원에서 2008년 10월 1466원으로 급등하고,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40% 이상 폭락했다. 또한 자금시장 유동성 악화로 상대적으로 부채 비율이 높았던 금호아시아나, STX, 웅진, 동양 등 대기업 그룹이 해체됐다. 또한 자금유동성에 취약한 건설사도 여파를 피해가지 못해서 2008년 7월 말 시공 능력평가 순위 100대 건설사 중 5년간 워크아웃, 법정관리, 채권단 관리, 부도, 폐업 등을 겪은 곳은 절반에 달했다.
최근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12일 기준 코스피는 지난해 최고가 대비 25% 이상 하락한 상태다. 원·달러 환율은 1318원으로 소폭 하락했으나 1년 전과 비교하면 15% 가까이 상승했다. 또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834%로 지난해보다 1.471%포인트 증가했고,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38% 하락해서 2012년 5월 부동산원이 시세 조사를 시작한 이후 주간 기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또한 24주 연속 하락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연준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15개월가량 지나 리먼 사태가 터졌다”며 “개인과 기업은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고 정부는 시장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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