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선정 가장 못생긴 국산차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차명은 도로를 뜻하는 '로드'에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올림포스 신들의 으뜸 '제우스'를 엮어 지었고, 도로 위의 제왕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담았습니다. 호화 요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는 외관은 체어맨부터 유러피언 스타일을 내세웠던 쌍용차답게 유려함과 고급스러운 디테일이 돋보였고 당대 어떤 미니밴보다도 승용 감각이 물씬 느껴지는 생김새였습니다.

특히 흔히 말하는 봉고차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1.5 박스 스테일의 짧은 보닛이 아닌 SUV 같은 길쭉한 보닛을 사용한 것과 일반적인 승합차, 미니밴에 폭넓게 쓰인 2열 슬라이딩 도어 대신 승용차에 쓰이는 스윙 도어를 채택한 것, 차체 하단과 측면에 어두운 플라스틱 가니쉬를 넉넉하게 두른 것으로 단순한 미니밴이 아닌 4륜구동을 품은 '크로스오버'라는 것을 강조했죠.

역삼각형을 이루는 거대한 방패형 그릴과 커다란 램프, 오묘한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로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냈는데, 매끄럽게 이어지는 아치의 끝을 아코디언처럼 잡아 부풀려 놓은 듯한 후면부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고 북미형의 단정한 디자인에 익숙했던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렸습니다.

그래도 5m가 넘는 길쭉한 전장과 1.9m의 넉넉한 전폭으로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만큼 확실했죠. 유년 시절 이 차를 실물로 처음 봤을 때 마치 흰 수염 고래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언뜻 봐도 컨셉이나 스케치와 실차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느끼실 텐데, 맞습니다. '관련 법규', '어른들의 사정' 같은 여러 외부 요인에 의해 프로젝트가 본래 기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로디우스가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무쏘'를 디자인했던 영국 RCA의 '켄 그린리' 교수와 쌍용 디자인팀이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이었죠. 그린리 교수가 제안한 디자인 컨셉을 쌍용이 받아 다듬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당시 자동차 관리법의 개정 때문이었는데요. 기존 7인승부터 제공되던 승합차 혜택이 무려 11인승 이상부터 혜택을 받는 것으로 개정되면서 로디우스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승합차 혜택을 받지 못하면 판매량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 판단한 쌍용차는 부랴부랴 설계 변경에 나섰고, 결국 팔자에도 없던 네 번째 좌석이 추가되면서 탑승객을 위한 공간을 우겨 넣다 보니 지금의 독특하다 못해 괴기스러운 후면이 탄생한 것이죠. 오죽하면 디자인팀 내에서도 '낸들 이렇게 하고 싶었겠느냐' 하며 푸념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가 어땠을지 안 봐도 비디오죠. 이미 지나간 결과는 어쩔 수 없지만요.

프로토타입까지 남은 이 차를 보면 넉넉한 3열을 갖춘 쿠페 스타일의 고급 크로스오버로 오히려 십 수년이 지난 요즘에나 먹힐 만한 상당히 앞서간 컨셉이었습니다. 아마 이 모습 그대로 출시됐다면 지금의 테슬라 모델 X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을 것 같아요.

요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느낌은 실내에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요트'라는 문화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여유로운 공간에 포근한 분위기가 돋보였고 부분적으로 사용된 우드그레인 역시 흔히 떠올리는 고리타분한 색상이 아닌 밝은 색상을 사용해 지금 봐도 컬러 매치가 상당히 세련됐죠.

좌우로 펼쳐진 대칭형 실내는 안 그래도 넓은 실내를 더욱 넓게 느끼게 해줬고,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속도계까지 대칭을 해버려 모든 탑승객이 현재 속도를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운전보다는 항해를 하는 기분이 들었죠.

참고로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방식이지만, 당시 유럽 MPV에서는 흔한 구성이었습니다. 굳이 대시보드 중앙에 계기판을 두는 이유는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것보다 옆을 향하는 것이 눈동자의 움직임이 더 적어 안전하고 무엇보다 탑승객과 차량 속도를 공유하는 게 심리적으로 안전운전을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산차 중에서도 유럽 시장을 노리고 만든 차들이 종종 이런 계기판을 달고 나왔는데, 하나같이 호불호가 많이 갈렸고 다음 세대에선 칼같이 삭제됐습니다.

이 밖에 폭스바겐 비틀처럼 꽃을 꽂아 넣을 수 있는 전용 홀이 있었던 것과 렉스턴, 테라칸 같은 고급 SUV에나 있던 멀티미터 화면이 오버헤드 콘솔에 들어가 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여기에 후방 카메라를 포함한 12개 스피커의 5.1 채널 DVD 내비게이션과 7인치 천장 모니터, 나중에는 현대기아차의 '모젠'에 대응하는 텔레메틱스 시스템 '에버웨이', 체어맨에나 있던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와 후륜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까지 장비한 최고급 트림인 '플래티넘'을 선보여 경쟁 모델을 압도하는 첨단 고급 사양으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렉스턴이 체어맨의 SUV 버전이었다면 이 차는 체어맨 미니밴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승객 공간은 트림에 따라 9인승과 11인승 두 가지로 구성했고, 깍두기 의자의 유무만 다를 뿐 모두 4열까지 갖췄습니다. 기아 그랜드 카니발이 출시되기 앞서 11인승 미니밴 시장에 포문을 연 모델이었죠. 스타렉스 점보와 봉고차들은 논외로 치고요.

등받이 뒤편에 시트팩 테이블을 마련하고 슬라이딩과 리클라이닝, 특히 2열 시트는 180도 회전까지 가능해 입맛에 따라 다양한 구성이 가능했어요. 아예 모든 시트를 접어 평평한 적재 공간을 만들 수도 있었고, 4열 벤치 시트는 '더블 폴딩'을 지원해 골프백을 세로로 세울 수도 있었죠. 센터 콘솔 박스를 탈거해 캐리어 가방으로 쓸 수 있게 한 것도 깨알 같은 아이디어였어요.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미니밴으로서는 불리한 설계인 세로 배치 후륜구동 방식을 적용하면서 바닥이 높아져 시트 포지션과 공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특히 기어박스가 툭 튀어 나 오면서 당대 미니밴의 덕목 중 하나였던 1열 가운데 좌석은 아예 설치가 불가능한데다 좌석 간 이동까지 불편해졌습니다.

또 공조장치 하단에 마련된 팝업식 컵홀더는 그 자리에 우겨 넣는 게 목적이었는지 겨우 레스비나 종이컵 정도만 넣을 수 있는 사실상 무용지물 수준이었습니다.

뒷좌석 스윙도어도 문제였는데요. 개방되는 면적은 넓었지만 문을 열 때 넓은 공간이 필요하니 주차장 등 좁은 공간에서는 당연하게도 문을 열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이듬해 등장한 그랜드 카니발이 전동 슬라이딩 도어를 가지고 나오면서 고급감까지 챙겼기 때문에 승용 감각이라는 감성 하나만 내세우기에는 잃는 것이 많았죠.

파워트레인은 앞서 렉스턴에 탑재된 직렬 5기통 2.7L XDi 디젤 엔진 단일 사양으로 5단 수동, 벤츠제 5단 자동 변속기가 매칭됐습니다. 벤츠의 DNA가 녹아있는 이 5기통 엔진 특유의 회전 질감은 아시는 분들은 다들 인정하시죠. 출력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두터운 토크가 실용 구간에서 뿜어져 나와 2.2톤에 육박하는 공차 중량을 감안하면 꽤나 시원스러운 가속감을 제공했어요.

실내에서 약점으로 적용했던 후륜구동 파워트레인도 주행에서는 장점으로 적용했습니다. 체어맨 차체에서 비롯된 고속주행 안정성과 육중한 몸무게에서 오는 묵직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선사하면서 장거리 여행에서 그 진가를 드러냈죠. 서스펜션도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멀티링크 구성으로 특히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된 플래티넘 모델은 경쟁차에 비해 승차감이 확실히 고급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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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오늘날 카니발에도 없는 4륜 구동은 이 로디우스만의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였습니다. 파트타임 방식이었지만 눈/빗길과 비포장길 앞에서도 주눅 들 필요가 없었고 업무용 차량과 패밀리카의 구분이 없는 자영업자는 물론 캠핑, 낚시 등 레저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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