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에 가장 큰 기회...에너지 정책은 극명하게 갈려”[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
[커버스토리 : 트럼프vs해리스 정책해부]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 입법지원팀은 10월 7일 한경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앞으로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바이오·헬스케어나 방위산업 부문 등에 있어서 한국 기업들에 새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을 했다.
현재 율촌 입법지원팀은 미국의 최고 로비 전문기업으로 꼽히는 BGR그룹과 손잡고 현지 입법 및 규제 대응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율촌 입법지원팀은 국회 및 정부 부처 출신의 고위 관료와 전문인력들로 구성됐다. 이날 인터뷰에는 박지웅 변호사와 윤여훈·김한규 전문위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9월 초부터 BGR그룹과 머리를 맞대고 미국 대선 유력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의 공약을 톺아보기 시작했다. 양 후보의 공약은 새로운 미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경제외교 정책 등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두 대선후보의 공약이 한국 정부, 그리고 기업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도 수시로 펴내고 있다.
현재 미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 기조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각 당을 대표해 대권 주자로 나선 트럼프와 해리스의 공약도 서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율촌 입법지원팀은 이 중에서도 양 후보가 공통으로 내세운 공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중국 견제’다.
해리스 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과도한 의존도를 점차 줄여나가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정책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중국을 공급망에서 아예 분리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을 내세우며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예고했다.
박지웅 변호사는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 차이는 있지만 양 후보 모두 미국의 핵심 산업·공급망의 ‘탈중국화’라는 공통된 어젠다를 던졌다”며 “다른 모든 경제 공약들은 이런 탈중국화 정책의 하위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진단했다.
누가 되든 바이오·헬스케어는 수혜
양 후보가 모두 대중국 견제를 핵심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명 ‘블루칼라’로 불리는 미국의 백인 노동자 표심을 끌어안기 위해서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미국 백인 남성들의 분노를 공략한 끝에 트럼프 역시 과거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들이 ‘승패를 좌우할 변수’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양 후보가 ‘미국 우선주의’와 ‘탈중국화’를 대표 공약으로 꼽았다고 분석했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든 향후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이는 한국 정부·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 또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율촌 입법지원팀의 전망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강화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가장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산업으로 ‘바이오·헬스케어’를 지목했다.
미국 의회는 지난 9월 여야 이견 없이 ‘생물보안법(Bio Secure Act)’을 통과시켰다. 이유는 이렇다. 중국의 관련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에서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해왔다. 이것이 미국의 정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적대 국가의 바이오사업을 자국에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법안 통과에 따라 중국 최대 유전체 분석업체 BGI그룹과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 우시바이오로직스,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인 우시앱텍 등 5개 중국 바이오 업체가 ‘미국 안보에 우려되는 생명공학회사’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희비 엇갈리는 산업도 예의 주시해야
미국 내에서 제품 판매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노인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나 저소득층 의료보장인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못 받게 된 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는 셈이다.
박지웅 변호사는 “해당 법안엔 중국 기업과 거래하는 외국 바이오 업체와 거래를 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일본의 대표 CDMO 업체인 후지필름, 또는 한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중소제약사들이 앞으로 중국 업체를 대신해 공급망 확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근래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우상향하는 것도 이런 미국의 정책에 힘입은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물론 이것이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중국산 장비와 서비스를 이용하는 다른 나라 기업에도 미국 시장 접근을 제한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윤여훈 전문위원은 “중국도 이런 식으로 한국을 통해 CDMO를 우회 수출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상황을 계속 지켜보면서 대응하지 않으면 자칫하다 화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방위산업 분야도 미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산업으로 지목했다. 해리스는 미국 주도하에 동맹국 간 안보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지원 강화가 예상되는데 이에 따라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한국 방산 기업의 수주 증가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급격한 인상을 예고한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김한규 전문위원은 “특히 나토의 경우 현재 미국 군사력에 굉장히 의지하는 상태인데 트럼프가 당선돼 미국이 그 지원을 줄여버리면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방위비를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나토에 소속된 유럽 국가들에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의 협조나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기술력뿐 아니라 미국과 군사동맹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이 나토 국가에 방산 수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릴 수 있다”고 했다.
양 후보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는 산업도 존재해 대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여훈 전문위원은 “무엇보다 에너지에서 두 후보의 정책이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해리스는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인사로 꼽힌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면 바이든 정부보다도 더 친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윤여훈 전문위원은 “이에 따라 한국의 전기차나 태양광 기업들의 대미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트럼프는 반대다. 김한규 전문위원은 “트럼프 진영의 최근 발언들을 보면 화석 연료에 대한 부분들을 강조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미국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전기차 기업들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
특히 현행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지지하는 해리스와 달리 트럼프는 IRA를 폐기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전기차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문제다.
다만 윤여훈 전문위원은 “트럼프의 우군이자 당초 IRA를 반대했던 거대 석유화학 기업들이 최근에는 IRA를 완전폐지하는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트럼프도 IRA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미국의 양대 석유 회사인 엑손모빌과 셰브런은 탄소포집, 수소, 바이오연료 등 다른 저탄소 기술에 300억 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이 계획의 실행은 IRA의 세금 공제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IRA가 폐기되면 투자에 대한 세금 공제 규정이 사라지게 돼 이를 반대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인 반도체와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미국 현지 투자 확대, 보호무역주의 깃발을 앞세우고 있어서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한국의 핵심 산업이자 주력 수출 품목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면밀하게 전략을 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웅 변호사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현지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할 경우 삼성, SK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해외 생산거점을 확대할 수 있다”며 “이는 반대로 설명하면 한국의 좋은 일자리들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여기에 대한 대책과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시설 자국 내 복귀) 방안 등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여훈 전문위원은 “미국의 대선 결과가 나온 뒤에도 정부와 기업 모두 주요 내각 인선과 현지 입법 상황 등의 정세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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