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정구매·깜깜이 처방…취재진이 직접 ‘비만치료제 광풍’ 경험해보니

결혼을 앞둔 동기,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친구...
예전 같으면 안 먹고 운동하는 우직한 방법밖에 없었지만, 최근 주변에 부쩍 주사형 비만치료제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대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갑자기 살이 빠져서 나타난 주변 사람을 보면 으레 '맞았겠거니' 생각하게 됩니다.
반짝인기를 넘어 비만 치료의 주류가 된 주사형 치료제, 그 광풍을 꼼꼼히 뜯어봤습니다.
■ 마운자로 처방, 출시 7개월 만에 12배 넘게 늘어

비만치료제의 선두 주자는 지난해 1월 정식 출시된 위고비와 지난해 8월 한국에 상륙한 마운자로입니다.
위고비는 지난해 1월 기준 2만여 건이 처방됐다가, 올해 들어서는 월평균 7만 건 넘게 처방되고 있습니다.
마운자로는 처방 건수도, 증가 폭도 위고비를 압도합니다.
출시 첫 달엔 1만 8천여 건에 그쳤지만, 올해 3월 기준으로는 22만 8천 건이 처방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동나기 일쑤라, 약국이 몰려있는 종로에 가면 '위고비 입고', '마운자로 구매 가능' 안내가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 '성지' 깜깜이 처방...중복 처방도 거름망 없어

출시 직후 이렇게 처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병원들이 있습니다.
식약처는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거나, 당뇨와 고혈압 등 동반 질환이 있는 BMI 27 이상 환자에게 비만치료제를 처방하라고 권고합니다.
하지만 '성지'라고 불리는 병원들은 BMI 측정 없이, 환자가 요구하는 대로 치료제를 처방합니다.
BMI가 24인 기자가 직접 '성지'로 알려진 병원을 가보니, 2분 만에 한 달 치 마운자로를 처방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틀 뒤 또 다른 병원에서는 키와 몸무게도 묻지 않고, " 5mg 처방을 줄 수 있다"며 곧바로 마운자로 처방전을 내줬습니다.
한 사람에게 다른 용량의 비만치료제를 처방하는 ' 중복 처방'이지만 걸러내지 않는 겁니다.
약국에서는 아예 두 처방전을 한꺼번에 내밀었는데,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약을 내줬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제각각 처방에 중복 처방까지…요지경 ‘비만약 성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48240
■ 비싼 약 값·잦은 품절·제한된 용량에 해외로 눈 돌려
아울러 주목할 점은 가격입니다.
비만 치료 주사제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입니다.
마운자로의 경우 국내에선 2.5mg, 5mg, 7.5mg, 10mg 등 단계별 네 종류가 출시돼 있습니다. 가격은 최저 용량인 2.5mg은 20만 원대 후반, 최고 용량인 10mg은 50만 원대 초반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선 아직 출시가 안 된 12.5mg, 15mg의 고용량 주사제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잦은 품절에 비싼 약값, 제한된 용량 등 여러 요인이 겹치다 보니 국내 소비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해외 직구 사이트와 커뮤니티에는 관광객에게 쉽게 약을 처방해 주는 현지 '성지' 병원이 공유됩니다.
심지어는 비대면 진료로 약을 처방해 주고, 현지 호텔로 약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습니다.
■ 취재진이 직접 비대면 진료 받아보니

비대면 진료 중개 업체 홈페이지는 그럴듯했지만, 진짜 약을 주기는 하는 건지 궁금해져 직접 영상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키와 몸무게, 투약 이력 등을 적어내면 예약된 날짜에 일본인 의사와 통역 직원이 영상 진료실에 접속합니다.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부터 시작해 고용량 마운자로를 처방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비만치료제는 저용량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용량을 높여가야 하지만, 임의로 적어낸 투약 이력을 그대로 믿고 처방을 내줍니다.
처방받고 열흘이 지나 일본 오사카 호텔로 갔을 땐 이미 비만치료제가 배송돼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전 비행기로 서울에서 출발한 지 4시간 만이었습니다.
식약처는 이렇게 해외에서 구매한 비만치료제를 국내에 반입하지 못하도록 지난해 말부터 관세청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해외에서 판매하는 비만치료제는 용량에 상관없이 국내 반입이 금지된 약물입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중개 업체는 '손님들이 기내 수하물에 마운자로를 넣어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간다'고 안내합니다.
[연관 기사] [단독] 당일치기 일본 원정까지…국내 금지 ‘고용량’도 처방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47040
■ 당일치기로 현지 '성지'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

일본까지 가서 처방 약만 받아오긴 아쉬우니 현지 '성지' 진료도 시도해 봤습니다.
인터넷의 많은 '당일치기 원정구매' 후기를 따라 취재진도 오전에 출발해 저녁에 귀국하는 일정을 계획했던 상황.
예약 없이 '성지 병원'을 찾았습니다. "마운자로를 처방받을 수 있냐?"고 묻자,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온다며 앱을 통해 통역가를 섭외하면 바로 진료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가격은 한국의 70% 수준에서 반값까지 다양합니다.
비대면 진료로 비만치료제를 받고, 약을 제3의 장소로 배송받아 해외에서 처방된 비만치료제를 한국에 들여오는 이 모든 절차는 위법입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취재진이 직접 다녀보니 이를 막는 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은 일본에서 구매한 마운자로를 인천공항에서 자진신고했습니다. 신고서를 내밀 때까지도 세관 당국은 가방에 금지 약물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취재 목적으로 구매했다고 설명하자 관세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모든 탑승객의 짐을 검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습니다.
■ 부작용, 진짜 없을까?

이렇게까지 비만치료제에 열광하는 이유는 즉각적인 효과와 함께 부작용이 적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구토, 소화불량 정도는 오히려 식욕을 더 줄여주는 고마운 효과 정도로 여겨집니다.
문제는 부작용이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점.
드물지만 탈모나 급성 췌장염 등의 부작용 사례도 보고됐습니다.
특히 청소년은 담석증과 담낭염, 발진과 두드러기 등의 부작용 발생률이 성인보다 높은 데, 지난해 미성년자의 위고비 처방 건수는 2천600건을 넘었습니다.
[연관 기사] 다이어트 욕심에 부작용 간과…청소년 더 조심해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48241
깜깜이 처방에 해외 원정 구매, 부작용 우려까지 지적이 계속되자 식약처도 조치에 나섰습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의견을 모아 위고비와 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기로 방침을 정한 겁니다.
하지만 지정된다 해도 포장에 문구가 추가되는 정도일 뿐, 실제 오남용 규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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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림 기자 (gaegu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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