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완벽한 남자’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조회수 2024. 3. 2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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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수뇌부와 동료가 배석했던 성명 발표

사흘 전이다. 그러니까 한국 시각으로 26일이다. 다저스 구장 프레스 룸이 북적거린다. 미국과 일본에서 온 70~80명의 취재진이 몰린 탓이다. 어느 기자는 “입장하는데 15분이 넘게 걸렸다”며 투덜거린다.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다저스 구단의 엄중한 사전 요청이 있었다. 스틸 사진도, 동영상 촬영도 금지됐다. 심지어 질문도 할 수 없다. 문답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일방적인 성명서 발표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MLB 네트워크와 스포츠넷 LA가 라이브를 켰다.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다. 오타니 쇼헤이가 자신과 관련된 불법 도박 문제에 대해 직접 입을 여는 날이었다. “나는 몰랐다.” “도박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송금을 허락한 적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속았다.”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그런 심정을 밝혔다.

오타니 앞에는 준비한 일본어 성명서가 놓여 있다. 그의 곁에는 윌 아이레튼이 자리했다. 영어로 의사 전달을 도왔다. 해고된 미즈하라 잇페이를 대신해 임시로 통역을 맡은 인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배석한 인물이 여럿이다. 스탠 카스텐 다저스 회장(CEO), 앤드류 프리드먼 야구 부문 사장, 브랜든 곰스 GM(단장),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옆을 지켰다. 또 있다. 선수단 대표 2명도 함께 했다. 17번을 양보한 투수 조 켈리, 야수 쪽에서는 키케 에르난데스가 엄숙한 표정으로 호위(?)했다.

이렇게 여럿이 함께한 이유가 있다. 로버츠 감독이 설명한다. “우리는 오타니가 자랑스럽다. 매우 정직하게 자신이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답변했다. 나와 우리 선수들, 다저스 구단은 그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현지 유력 매체의 이어지는 비판

11분간 당사자의 해명. 다저스 구단 고위층의 전폭적인 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특히 현지 미디어는 공격의 수위를 높인다. 이 사건을 (통역) 미즈하라가 아닌 ‘오타니 스캔들’로 정의하며 질문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성명서 발표 다음 날이다. LA타임스의 빌 플라슈키가 칼럼을 기고했다. ‘아직도 오타니 쇼헤이를 믿나요? 잘 모르겠군요’라는 제목이다.

그는 ‘아직도 찜찜하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오타니와 그의 조언자들이 아무리 치우려고 해도 이 쓰레기 더미 속에는 악취가 풍기는 무언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톤을 높였다. 또 ‘오타니가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동료를 버스 아래로 던져버릴 정도로 교활한 것인가? 아니면 친구가 수백만 달러를 속여도 모를 정도로 바보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여전히 의문투성이’라고 지적한다.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특유의 비꼬는 듯한 톤으로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반려견 이름조차도 공개하지 않았다. 결혼을 발표하면서도 신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런 미스터리한 존재의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도박 중독에 빠진 친구를 곁에 두고 있었다. 450만 달러가 사라졌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신문(WP)은 다저스 구단과, 오타니의 에이전트, 법률 대리인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반복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노 코멘트로 일관한 탓이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 곤란하다는 답변만 내놓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받아쓰기만 강요하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피트 로즈의 비아냥 “통역 있었으면, 나도 무죄”

뉴욕 포스트의 조엘 셔먼은 오타니의 설명을 ‘어리석은 쇼’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10분의 시간 동안 말하는 사람은 (오타니) 혼자였다. 아무도 질문할 수 없었다. 그건 기자회견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의 주장대로 오타니는 친한 친구에게 속은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에 대해 결백하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USA투데이의 밥 나이팅게일의 얘기도 비슷하다. ‘어떤 어두운 비밀에 대한 폭로도 없었다. 자극적인 고백도, 사죄도 없었다. 단순히 친구를 믿은 어리석음에 대한 동정은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오타니의 이미지에 얼마나 타격을 줄지 모르겠다. 다저스 구단이 그를 영입하며 기대한 연간 5000만 달러의 추가 수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많은 미디어가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주로 본인 모르게 그런 거액에 손을 댄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포브스 같은 경제전문 매체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분석한다. 복잡하고,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열거하며 ‘정상적인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팬사이디드, 레딧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말할 것도 없다. 훨씬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비판과 비난이 쏟아진다. 와중에 피트 로즈의 한마디가 이목을 끌었다. 도박으로 인해 영구 제명 처분을 받은 그는 “1970~80년대에 나한테도 통역이 있었다면, 나도 무죄였을 것”이라는 멘션이었다.

LA타임스 “오타니는 오염됐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보는 시각과는 또 다르다. 물론 미국에서도 안타깝고, 딱하게 여기는 팬들이 많다. 하지만 싸늘하고, 냉소적인 기류는 어쩔 수 없다. 특히 현지 미디어의 시선은 냉정하고, 가혹하다.

어쩌면 그간의 이력도 어느 정도 작용했는지 모른다. 처음 메이저리그 진출하면서(2017년 말) 팀을 고를 때. 그리고 지난해 FA 자격을 얻어 이적할 때. 엄청난 관심 속에서도 철저한 신비주의를 유지했다. 치밀한 보안으로 정보를 통제했다. 때문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도 컸던 게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가 비꼰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반려견 이름, 신부의 정체조차 한동안 비밀에 부쳤던 것 말이다. 거의 모든 사생활이 베일에 감춰졌다. 외출이나 외식도 드물다. 호감을 가진 쪽에서 보면 구도자의 모습으로 느낀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를 수 있다. 지나치고, 비정상적이라는 시각도 실재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이질감, 혹은 불편함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의 바른 생활 이미지는 오히려 기막힌 반전 효과를 제공했다. 그래서 훨씬 더 흥미로운 표적 혹은 먹잇감이 됐을지도 모른다. 새롭게 악의 제국이라고 불리는 다저스에 대한 반감까지 첨가제로 작용된다.

LA타임스의 빌 플라슈키는 칼럼 말미를 이렇게 맺었다.

‘미즈하라(통역)는 망했다. 오타니는 오염됐다.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이 게임에 승자는 없다. 일본인들은 그를 캄페키나 히토(完璧な人ㆍ완벽한 사람)라고 부른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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