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너무 잘생겨서 국정원 요원 역할만 계속 하고있는 배우

(Feel터뷰!) 영화 '휴민트'의 조인성 배우를 만나다

이쯤 되면 국가정보원에서 명예 요원 위촉장이라도 전달해야 할 판이다. 영화 ‘모가디슈’의 안기부 강대진 참사관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더니, 전 국민을 열광케 한 드라마 ‘무빙’에서는 하늘을 나는 블랙 요원 김두식으로 분해 국정원 요원의 판타지를 완성했다. 그런 그가 이번엔 다시 현실로 내려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공기 속에 몸을 던졌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에서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의 이야기다.

연이은 요원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자기 복제에 머물지 않는, 오히려 매번 새로운 결의 ‘국가 요원’을 창조해내는 그를 만나 작품과 연기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모가디슈’, ‘무빙’에 이어 이번에도 국정원 요원이다. ‘요원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인데, 부담은 없었나?

솔직히 말하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또 요원인가?’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웃음). 하지만 ‘조 과장’은 앞선 인물들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모가디슈’의 강대진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기회주의적 면모가 있었다면, 이번엔 훨씬 더 고독하고 건조한, 일상에 찌든 직장인으로서의 요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류승완 감독과 벌써 세 번째 작업이다. ‘휴민트’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감독님이 그리는 세계관 속에서 내가 쓰임새가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싸늘한데 뜨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물로 따지면 ‘외로운 늑대’ 같달까. 감독님과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영화적 동지 같은 사이다.

- 이번 조 과장 캐릭터를 구축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국정원 요원이라고 하면 흔히 차갑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조 과장을 ‘피로한 직장인’으로 해석했다. 아침에 일어나 몸이 뻑뻑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일을 하러 나가는 삶의 무게를 지닌 인물 말이다. 출근 전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일상적인 모습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조금 더 현실적인 인물로 다가가고 싶었다.

-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안내자’ 역할을 자처했는데, 연기 톤을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안내자이기에 내 감정이 너무 진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슬픔이나 분노를 강요하면 관객이 따라올 여백이 사라진다. 노희경 작가님께 배운 ‘버리는 연기’를 이번에 많이 활용했다. 힘을 빼고 백지 상태로 서 있어야 관객들이 각자의 감정을 그 위에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극 중 북한 요원 박건(박정민)과의 팽팽한 대립도 인상적이다. 박정민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정민이는 정말 똑똑하고 에너지가 좋은 배우다. 아이돌 그룹에서 춤선이 유독 눈에 띄는 멤버가 있듯, 정민이는 똑같은 대사를 해도 자신만의 선이 확실하다. 현장에서 정민이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선배로서 길을 열어주고 싶었고, 실제로 결과물이 너무 좋아서 뿌듯하다.

- 휴민트’ 채선화(신세경)를 향한 조 과장의 감정은 멜로인가, 동정인가?

나는 ‘인류애’라고 정의하고 싶다. 조 과장은 과거에 정보원을 잃었던 아픈 경험이 있다. 선화를 돕는 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어른으로서의 태도이자 약속이다. 개인적으로 이제 멜로는 ‘한도 초과’라고 생각한다(웃음). 사랑 그 자체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태도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 가디건을 입혀주며 부드럽게 질문하는 장면이 화제다. 계산된 연기였나?

그 장면이 조 과장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포인트다. 상대방의 심박수는 올라가고 흔들리고 있지만, 조 과장은 아주 부드럽고 다정하게 접근한다. 계산된 부드러움이랄까. ‘당신을 지키러 왔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온도를 택한 것이다.

- 액션 장면이 굉장히 우아하고 스타일리시하다. 특히 긴 코트를 활용한 액션이 돋보이는데.

사실 액션 할 때 코트는 정말 불편하다(웃음). 자꾸 걸리적거려서 찢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멋있어 보이려고 의도한 건 아닌데, 짧은 무스탕을 입은 박건과 대비되면서 묘한 분위기가 산 것 같다. 액션이 우아해 보였다면 그건 전적으로 류승완 감독님의 ‘매직’ 덕분이다.

- 류승완 감독이 촬영 후 담낭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감독님의 컨디션을 살뜰히 챙겼다던데.

감독님 몸이 안 좋아 보일 때마다 옆에서 마사지하듯 계속 눌러드렸다. 사실 수술까지 하실 줄은 몰랐지만, 서로를 신뢰하는 동료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감독님의 컨디션이 곧 영화의 퀄리티로 직결되지 않나.

- 조인성에게 액션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사실 난 내가 액션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배우들도 다 이 정도는 하지 않나?(웃음) 액션 배우를 꿈꾼 적은 없다. 단지 이야기가 재밌어서 선택했는데 그 안에 액션이 있었을 뿐이다. 매번 찍을 때마다 ‘치가 떨릴’ 정도로 힘들지만, 주어진 본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 2026년 ‘휴민트’를 시작으로 ‘호프’, ‘가능한 사랑’ 등 기대작이 줄지어 개봉한다. 부담은 없나?

솔직히 도망가고 싶다(웃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건방진 생각이다. 대한민국 영화계가 어려운 시기에 이렇게 좋은 작품들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전체 산업의 파이가 커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 부분이 있다면?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부정하기보다 잘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예전엔 모든 걸 다 보여주려 했다면,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도 진화’라는 걸 배운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은 대중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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