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혼다 CR-V 하이브리드를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SUV들처럼 화려한 디자인도 아니고,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3일간 200km 넘게 타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차는 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한, 진짜 '잘 만든 차'였다.

가격은 5,180만 원(전륜구동)부터 5,480만 원(4륜구동)까지다.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 타보면 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연비 때문이다.

공식 연비는 복합 14~15.1km/ℓ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좋다. 도심에서 22km/ℓ, 고속도로에서 19km/ℓ가 나왔다. 실연비는 21km/ℓ였다. 이 정도면 아반떼나 소나타 하이브리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SUV치고는 정말 놀라운 수치다.

더 놀라운 건 시내 주행에서다. 정체가 심한 구간에서는 거의 전기차처럼 움직인다. 엔진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매연도 나오지 않는다. 배터리가 90% 정도 충전되면 4km를 순전히 전기만으로 갈 수 있었다. 하이브리드인데 전기차의 조용함과 부드러움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혼다만의 독특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때문이다. 다른 하이브리드들이 엔진과 모터가 함께 바퀴를 굴리는 방식이라면, 혼다는 모터가 주인이고 엔진은 보조다. 1,993cc 자연흡기 엔진(147마력)은 주로 발전기 역할을 하고, 184마력의 시스템 합산 출력 중 대부분을 전기 모터가 담당한다.

결과적으로 사실상 '자가발전하는 전기차'에 가깝다. 그래서 가속도 전기차처럼 부드럽고 즉각적이다. 35kgf·m의 강력한 모터 토크 덕분에 웬만한 오르막길은 엔진 도움 없이도 거뜬히 올라간다.

승차감도 이 차의 큰 장점이다. 전장 4,705mm, 축거 2,700mm로 투싼보다 크고 산타페보다 작은 크기지만, 실내 공간은 생각보다 넓다. 특히 뒷좌석 다리 공간은 동급 최고 수준이고, 8단계 리클라이닝까지 된다. 5인 가족이 장거리 여행을 가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 차는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연비도 좋고, 힘도 충분하고, 승차감도 편하다. 코너링할 때도 안정적이다. 58:42의 앞뒤 무게 배분과 4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SUV치고는 제법 스포티하게 달릴 수도 있다.

CVT 변속기의 단조로움도 혼다만의 기술로 해결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가상의 기어 단수를 만들어 마치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변속감을 준다. 패들 시프트로 회생제동 강도도 4단계로 조절할 수 있어 전기차 못지않은 원페달 드라이빙도 가능하다.

선택의 기준은 간단하다. 연비가 최우선이라면 전륜구동(5,180만 원), 겨울철 안정성까지 원한다면 4륜구동(5,480만 원)을 고르면 된다. 4륜구동도 연비가 리터당 20km 정도 나오니 경제성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

요즘 전기차 충전료가 올라 하이브리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CR-V 하이브리드는 전기차의 장점과 내연기관의 편리함을 모두 갖춘 현실적인 대안이다. 화려한 기능은 없지만 자동차의 기본기에 충실한, 오래 타도 질리지 않을 차다. 한 대로 모든 걸 해결하고 싶은 사람, 특히 가족과 함께 경제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이동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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