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 시승기, 르노 5 터보


앞바퀴를 굴리는 자동차가 어느 날 차체 중앙에 엔진을 탑재하고 뒷바퀴를 굴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 로망을 실현한 자동차가 있다. 



르노 5는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 속에 한 획을 그은 자동차다. 르노의 디자이너 미셸 부에(Michel Boue)가 여가를 활용해 디자인한 자동차는 생기가 넘쳤고, 실용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형태만 보면 프랑스의 좁은 골목길을 느린 속도로 자유롭게 누비는 게 제일 어울리는 자동차이지만, 르노는 이 차를 평범하게 둘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고성능 엔진을 탑재한 ‘르노 5 알피느’ 버전이 먼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앞바퀴를 굴리는 게 그렇게 싫어?
르노 5 알피느는 등장하자마자 빠르면서도 거칠게 주행해야 하는 레이스, WRC에 투입됐다. 당시 르노의 레이서였던 장 라뇨티(Jean Ragnotti)는 1978년에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포디움에 오르는 등 큰 활약을 했지만, 커다란 단점을 갖고 있었다. 차체 전면에 엔진을 탑재하고 앞바퀴를 굴리는 자동차를 정말 실어했던 것이다. 그는 “나는 뒷바퀴를 굴리는 자동차가 좋다”라고 항상 말하고 다녔으며, 심지어 출발 지점에서 차를 거꾸로 세운 뒤 후진 기어를 넣고 출발한 적도 있었다.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르노는 진지하게 뒷바퀴를 굴리는 WRC 참가용 자동차를 개발하기로 했다. 다만 접근 방법은 다른 자동차 제조사와 달랐다. 기존 알피느 모델에 탑재하고 있던 1.4ℓ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을 통째로 옮겨서 뒷좌석 자리에 탑재하고 뒷바퀴를 굴리기로 한 것이다. 모두가 생각하고는 있지만 보통은 실천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엔진이 차체의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배치된 점도 특이했다.

뒷좌석에 엔진을 탑재하다 보니, 뒷바퀴가 자연스럽게 돌출되었고 엔진을 식히기 위한 에어 인테이크도 별도로 마련해야 했다. 그 작업은 르노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당시 ‘베르토네(Bertone)’에서 근무하던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맡았다. 레이스용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실내가 꽤 아름답게 다듬어졌는데, 이탈리아의 저명한 디자이너인 마리오 벨리니(Mario Bellini)가 담당했다. 전용 가죽을 사용하고 독특한 형태의 스티어링 휠도 부착했다.

르노 5 터보는 분명히 5의 형태를 하고는 있었지만, 외형도 실내도 기존의 5와는 달랐다. 게다가 성능도 보장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당시의 르노가 만든 자동차들 중에서 가장 비쌌다고 알려진다. 심지어 당시 비싸다고 알려졌던 알피느의 스포츠카, A310보다 비쌌으니 말이다. 르노의 자동차이지만 생산은 알피느의 공장에서 이루어졌고 차체도 알루미늄을 사용해 만든 부분이 꽤 많아서 이렇게 됐다. 그래도 인기는 꽤 높았다.

왜 인기가 높았는지를 알 수 있는가 하니, 르노 5 터보가 꽤 오래 생산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존 르노 5 터보의 대중화를 노린 르노 5 터보 2도 등장했다. 이 차는 1983년부터 등장했는데, 본래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던 지붕과 보닛, 도어 패널을 강철로 바꾼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전용 가죽을 사용하고 화려함을 자랑했던 실내는 사라지고, 일반 르노 5 모델과 동일한 색상의 실내로 변경됐다. 당연히 스티어링 휠도 바뀌었다.

르노 5 터보는 당연히 WRC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장 라뇨티는 이 차에 굉장히 만족했던 것 같다. 1981년 몬테카를로 랠리, 1982년 코르시카 랠리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1983년에 최고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WRC 그룹 B가 등장하면서 르노 5 터보의 시대는 잠시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레이스에 진심인 르노는 다시 한번 자동차를 다듬어 1985년에 에볼루션 모델인 르노 5 맥시 터보를 투입했다. 이 차는 르노에게 WRC 무대에서의 귀중한 승리를 갖다주었다.

뒷바퀴에 스티어링이 달렸다?
오늘도 열심히 그란투리스모 7 속에서 노동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중고차 시장에서 르노 5 터보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달려볼 차례다. 외형과 실내는 슬쩍 감상했고, 이제 시동을 걸고 서킷에 진입해 본다. 일단 엔진 소리부터 감동을 주는데, 1.4ℓ라는 배기량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웅장한 소리다. 이 당시 터보차저 엔진은 대부분 가볍게 돌면서 앵앵거리기 마련인데, 르노 5 터보는 그런 것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최고출력 162마력, 최대토크 21.4kg·m.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정말 별것 없는 출력일 것이다. 그런데 그 출력을 잊어버릴 정도로 가속이 빠르다. 아니, 맹렬하게 돌진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아마도 자동차가 꽤 가볍기 때문일 것이다. 패널에 알루미늄을 사용해서인지, 이 차의 무게는 970kg에 불과하다. 그렇다. 1톤이 안 되는 차체에 적절한 출력의 엔진이 탑재됐으니 맹렬하게 돌격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르노 5 터보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9초 만에 도달하며 최고속력은 시속 200km에 달한다. 그런데 사실 감동적인 것은 시속 90km부터의 가속이다. 정확히는 기어를 수동 모드로 맞추고 3단에서 가속할 때다. 시속 90km에서 시작해 130km까지 도달할 때의 그 감각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오른발과 엔진이 직결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짜릿하고 즐겁다. 만약 실제로 이 차를 운전한다면, 고속도로에서 가속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코너링이다. 이 차가 엔진을 뒷좌석에 배치한 이유이기도 한데, 아마 처음 운전한다면 코너를 도는 감각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앞머리를 돌리는 것까지는 자유자재인데, 그 뒤의 움직임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설프게 제어하려 든다면, 앞머리의 방향으로 뒷바퀴가 따라오지 않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돌아버리는 바람에 제자리에서 스핀하고 말 것이다. 이 차를 진짜로 돌리는 방법은 사실 따로 있다.

그 방법은 코너에서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차체 바깥쪽 부분에 하중을 건 다음에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차는 앞바퀴보다는 뒷바퀴의 움직임에 더 예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코너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예전에 이 자동차를 실제로 경험했던 선배가 ‘뒷바퀴에 스티어링이 달린 자동차’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비록 가상 세계에서의 운전이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스티어링 휠을 돌려보니 알 것 같다.

아니, 이제서야 생각이 났다. 꽤 오랜 기간 잊고 있었던 감각인데, 처음으로 포르쉐 911을 운전했던 때와 흡사한 코너링이다. 당시 마지막 공랭식 911 카레라를 붙잡고 코너를 도는 데 꽤 고생했는데, 그때도 코너 바깥쪽에 자동차의 하중을 걸고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야 빠른 코너링이 완성됐었다. 설마 르노가 그 오래 전에 포르쉐와 동일한 감각의 코너링을 만들어냈을 줄이야! 르노 5 터보가 왜 지금도 추앙받고 있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이토록 즐거운 자동차라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비록 르노 5 터보는 손에 넣을 수 없지만, 그 후속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클리오 스포트 V6는 어쩌면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를 아는 이들이 갖고 있는 모델을 쉽게 중고차 시장에 내놓지 않을 것 같다. 그 전에 군자금도 없으니 오호통재라! 아쉬움을 곱씹어가며 게임기의 전원을 내릴 수밖에!


글 | 유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