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노조가 오는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글로벌 메모리 공급망에도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파업이 본격화될 경우 사전 예비 작업과 사후 안정화 작업을 합쳐 한 달 이상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삼성전자의 파업 리스크를 글로벌 고객 확보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사 입장차 여전…총파업 현실화
15일 업계에 따르면 성과급 산정 기준을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총파업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이날 회사 측 공문을 받은 뒤 “6월 7일 이후 협의할 의사가 있다”며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잘 이행할 생각”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6월 7일은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종료일이다. 사실상 오는 21일부터 18일간 예고한 총파업을 먼저 진행한 뒤 사측과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노조는 전날 사측이 추가 대화를 요청하자 이날 오전 10시까지 핵심 쟁점에 대한 회사 입장을 먼저 밝히라고 요구한 바 있다. 회사 입장을 확인한 뒤 대화 재개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취지였다. 삼성전자는 공문을 통해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와 별도로 상한 없는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가 요구해온 성과급 산정 기준 변경과는 거리가 있는 만큼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조 주장에 따르면 이번 파업에는 최대 5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파업에 앞서 라인 운영 속도와 품질 관리 체계를 점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공정별 장비와 인력이 연속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파업 당일 인력 공백이 발생한 뒤 대응하면 생산 중단과 품질 불안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전날 생산라인 운영과 품질 관리 체계를 재점검하는 비상관리 상황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업노조 측은 “사 측이 평택 D램 라인에서 1만5000개의 웨이퍼 운반용기(FOUP·웨이퍼 기준 36만장)를 라인 내 복도에 보관하기 위해 스토커에서 빼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는 파업에 대한 대비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18일간의 파업에 사전 예비 작업과 사후 정상화 과정이 더해질 경우 생산 차질 영향이 한 달 이상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파업 전에는 생산량 조정과 품질 리스크 관리를 위한 사전 작업이 필요하고, 파업 종료 이후에도 자동화 라인 재가동과 공정 안정화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파업 기간 자체는 18일이지만 실제 생산 영향은 전후 2~3주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中 추격 거센데…발목 잡는 노조 리스크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 우려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번지고 있다.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견조한 상황에서 삼성전자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고객사들의 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AMD,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I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 입장에서는 메모리 조달 일정이 흔들릴 경우 서버 증설 계획과 제품 출하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고객사들은 납기 리스크가 커질수록 대체 공급망을 검토할 수 밖에 없다. 중화권 업체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관측은 여기서 나온다. CXMT와 YMTC는 가격 경쟁력과 내수 기반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와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에 따르면 지난해 CXMT 점유율은 5%대까지 증가하며 글로벌 D램 시장 세계 4위권에 안착했다. YMTC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11.8% 수준으로, 내년에는 14%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와 윈본드도 공급망 다변화 국면에서 주목받는 업체로 꼽힌다.

중화권 업체들이 삼성전자의 고부가 메모리를 곧바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고객사들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설 경우 비교적 기술 허들이 낮은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부터 보조 공급처로 검토할 가능성은 있다. 삼성전자 생산 차질이 현실화할수록 중화권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내수 기반을 앞세워 글로벌 고객사와 접점을 넓힐 명분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들 업체들에는 단기 물량 확대보다 고객사 검증 기회 자체가 더 중요하다. 메모리 고객사는 품질 안정성, 납기 대응력, 가격 조건을 검증한 뒤 공급처를 정한다. 한 번 공급망에 진입하면 후속 제품이나 다른 제품군으로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파업 리스크가 중국 업체들에는 글로벌 고객사 진입 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버발 메모리 수요가 강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공급 여력이 줄면 고객사들은 납기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대체 공급망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CXMT와 YMTC 등 중화권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