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SK온]③ 통합론의 벽…삼성SDI·LG엔솔은 움직일까

/챗GPT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SK온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나리오는 국내 배터리 '빅2'와의 통합이다. 과잉 설비를 한 번에 정리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업황이 나빠질수록 "차라리 합치는 게 낫다"는 주장은 힘을 얻는다.

표면적인 계산은 단순하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이 나눠 가진 생산 능력을 재편하면 중복 설비를 줄이고 고정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사와 맞설 덩치도 키울 수 있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통합은 매력적인 카드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계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통합론이 아무리 힘을 얻어도 결국 판단은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의 몫이다. 문제는 두 회사 모두 현재 전략의 무게추를 '외부 인수'가 아니라 '내부 강화'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SDI, 실탄은 생겼지만…내부 투자에 우선순위

삼성SDI 배터리 제품 이미지/사진제공=삼성SDI

삼성SDI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삼성디스플레이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에서는 약 11조원 안팎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겉으로 보면 대형 인수합병에 나설 수 있는 실탄을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자금이 SK온 인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삼성SDI는 현재 전고체 배터리 양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세대 각형 배터리 고도화와 북미 생산 거점 확대도 진행 중이다. 확보한 자금을 외부 인수에 쓰기보다 자사 기술 경쟁력 강화와 미래 사업 투자에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삼성SDI는 그동안 증설 속도를 비교적 신중하게 조절해왔다. 수익성과 기술 완성도를 우선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이런 기조에서 적자가 이어지는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 재무 구조를 흔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인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내부 투자가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엔솔, 덩치 확대보다 규제가 더 큰 벽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통합이 가져올 파장은 더 크다. LG엔솔은 이미 글로벌 상위권 배터리 기업이다. SK온을 흡수하면 생산 능력과 고객 기반이 크게 확대된다. 단순한 국내 재편을 넘어 글로벌 시장 지형을 바꾸는 사건이 된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북미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생산 거점을 운영하거나 건설하고 있다. 투자 규모만 수십조원에 이른다. 가동률 관리와 수익성 방어가 중요한 시점에서 또 다른 대형 인수를 감행하는 것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가장 큰 변수는 규제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온을 흡수하면 미국과 유럽, 한국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예민한 상황에서 반독점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완성차 업체들과 맺은 장기 계약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선 과거 SK와 벌였던 배터리 특허 분쟁의 앙금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다. 지난 2021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판결을 둘러싼 갈등은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양사 간 신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한 산업 논리만으로 통합을 밀어붙이기 어려운 배경이 있는 셈이다.

통합론은 산업 차원에서 보면 설득력이 있다. 과잉 설비를 줄이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개별 기업의 계산법은 다르다. 재무 부담, 규제 리스크, 조직 통합 비용까지 감안하면 쉽게 결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국내 빅2와의 통합은 이론상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현실 장벽이 높다. 전략적 투자자 시나리오가 쉽지 않은 데 이어 내부 통합도 마찬가지다. SK온을 둘러싼 해법이 여전히 안갯속에 머무는 이유다.

또 다른 선택지는 금융자본이다. 사모펀드가 등장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장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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