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예금 보증”… 줄파산 공포 차단 나선 美

박영준 2023. 3. 13. 18:5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그니처은행 예금도 지급보증
재무부·Fed ‘뱅크런’ 적극 대응
채권·주식은 보호대상서 제외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틀 만인 12일(현지시간) 세계 금융 중심지 뉴욕에 본사를 둔 가상화폐 전문 은행 시그니처은행까지 폐쇄되면서 글로벌 시장에 금융위기 패닉(공포) 그림자가 드리우자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이들 은행에 맡긴 고객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 부족 금융기관에 자금 대출을 해준다는 대책이 골자인데, 중소형 은행 연쇄 부도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조기 불식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닫힌 뉴욕 시그니처은행 미국 뉴욕의 시그니처은행 지점 출입문이 12일(현지시간) 굳게 닫혀 있다. 당국이 10일 실리콘밸리은행에 이어 이날 시그니처은행도 전격 폐쇄하면서 미국에서 소규모 은행 줄도산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저녁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SVB와 시그니처은행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한다고 밝혔다. 재무부 등은 미 연방예금보험법상 특정 은행의 파산이 광범위한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보험 한도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기금(BTFP: Bank Term Funding Program)을 조성한다고도 밝혔다. BTFP는 특별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이다.

당국은 이를 통해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담보를 내놓는 은행, 저축조합, 신용조합 등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할 계획이다. 연준은 특히 담보 가치를 시장가가 아닌 액면가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SVB가 보유한 국채 상당량이 연준의 계속된 금리 인상 때문에 당장 매각할 경우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한 조치다.

이는 특히 SVB사태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발 빠른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SVB를 시작으로 한 잇따른 은행 폐쇄에 시장의 공포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고객들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다른 은행서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신속하게 금융시스템 보호 조치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가상화폐 전문 실버게이트은행이 재정난으로 자진 청산한 뒤 SVB, 시그니처은행까지 일주일 동안 현재 미국 중소형 은행 3개가 문을 닫았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입구 모습. 연합뉴스
당국은 “예금자들은 13일부터 모든 예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SVB의 파산과 관련된 손실은 납세자가 부담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정부가 구제금융으로 은행을 살릴 경우 도덕적 해이 논란과 연방부채 증가 등 부작용이 있는 만큼 예금주만 살리는 방향으로 지원 범위를 국한한 것이다. 성명은 주주와 담보가 없는 채권자 일부는 보호받지 못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SVB 고위 경영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예금 보증 조치 관련 성명을 통해 “우리 금융 시스템을 안전하게 지키는 신속한 해결책에 도달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형 은행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연방정부의 개입이 발표된 직후, 미 뉴욕증시 지수 선물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섰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연방정부의 조치를 두고 SVB 사태로 노출된 균열이 시스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는 또 시차상으로 아시아의 월요일 오전 금융시장 개장을 앞두고 발표되면서 아시아 증시 시장에도 안도감을 안겼다.
정부의 진화 노력과는 별도로 스타트업 자금이 모인 SVB와 가상화폐 전문 은행 시그니처은행이 연이어 파산하면서 미국의 스타트업과 가상화폐 업계 위기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는 높아지는 상황이다.

시그니처은행은 지난주 청산한 실버게이트 은행과 함께 가상화폐 거래 주요 은행으로 꼽힌다. 가상화폐 회사 간 실시간 자금 이체를 용이하게 하는 결제 네트워크를 제공해,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예치금 가운데 가상화폐 부문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자산 거품이 불어난 기술기업이나 가상화폐 관련 기업의 줄도산 우려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SVB 파산으로 미국 최대 스트리밍 하드웨어업체인 로쿠(ROKU)가 운영하는 로쿠채널, 미국 달러 코인(USDC) 암호화폐를 발행한 가상화폐 결제 기술 회사 서클, 암호화폐 대출업체인 블록파이 등이 영향을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위기감 확산과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스타트업과 가상화폐 업계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산 거품이 큰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높은 중소 규모 지역 은행에도 충격파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연관된 팩웨스트 뱅코프는 9일과 10일 이틀간 주가가 폭락했다. 같은 기간 29% 폭락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하면서 대출을 급속도로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부동산 담보대출 등 위험 자산에 노출된 은행과 현금 인출에 민감한 고객층을 두고 있는 은행의 주가가 급락해 거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두고 연준을 향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연준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로 금리’ 정책을 필요 이상으로 고수했고, 지난해 3월에서야 첫 금리 인상을 시작한 뒤 유례없이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 은행 파산 등의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연준이 오는 21∼22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당초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이 아니라 0.25%포인트를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