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생아였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나 중학교때 이름이 생겼다는 배우

사생아로 태어난 배우, 성동일의 고백

성동일은 수차례 방송에서 자신이 '사생아'였음을 밝힌 바 있다. 그는 10살이 되어서야 출생신고가 되었고, 이전까지는 호적에도 이름이 없던 아이였다.

어머니의 포장마차와 순대국의 기억

어머니가 어렵게 아버지에게 합가를 요청하며 가족을 꾸렸지만, 이후에도 가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그는 결국 20년 넘게 아버지를 보지 않고 살았고,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성동일은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하며 미움과 감사를 동시에 품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어머니의 포장마차와 순대국의 기억

긴 무명시절, 성동일의 어머니는 새벽까지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한 계모임에서 받은 목돈으로 하루를 쉴 수 있었던 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뭐든 사주겠다며 불러냈고, 아이들은 순대국을 골랐다.

성동일은 "그날 어머니는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비싼 것도 못 먹고 순대국을 먹는 걸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과거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는 그가 아버지가 된 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남 준이가 "아빠가 무서웠다"고 말할 만큼 엄격했지만, '아빠 어디가' 출연 이후 그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감자와 김으로 차린 첫 아침밥을 맛있게 먹던 준이의 반응에 그는 눈물을 삼켰고, 자녀 교육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되돌아보게 됐다.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되, 책임은 스스로 지라는 원칙을 갖고 있다. "내가 버는 동안은 도와줄 수 있지만, 이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그가 직접 체득한 삶의 교훈이기도 하다.

아들 준이가 과학고를 거쳐 명문대 공대에 진학한 사실을 전하며 "나는 수학을 못했지만, 준이는 머리가 타고난 것 같다"고 자랑했다.

성동일은 연기보다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로 "아내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은 것"을 꼽는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세 자녀를 키우는 삶이지만, 아이가 “피자 먹고 싶다”고 말하면 가격 걱정 없이 사줄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난하고 복잡했던 유년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온 성동일. 지금의 가족과 함께 웃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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