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빠른" 학원 광고 문구가 우리 아이 기계로 만든다...착각을 깨부수는 '메타인지' 학습법
얼마 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한국의 'hakwon'(학원)이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시험 점수 중심으로 지나치게 좁은 학습만 중시하는 태도는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해서 화제가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 학부모들의 대답은 한결 같다. "헤크먼 당신이 어디 한번 한국에서 애 낳고 살아봐라, 별 수 있나."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무슨 무슨 학습법'이란, 언제나 큰 노력 없이, 최단 기간 내에, 많은 양을, 손쉽게 소화해내는 공부법을 말한다. 편안히 드러누운 채 다 배우려드는, 이런 심보가 어디 있나 싶은데 현실에서 효과는 막강하다.
사람더러 기계가 되라는 것, 그게 한국 교육
학원가에서, 그리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메타인지 학습법'이란 말이 입에 오르내릴 때도 그랬다. "그래, 그거 하면 다음 중간고사부터 성적이 쑥쑥 오른대?" 요즘엔 여기에다 공포가 추가됐다. 인공지능(AI) 시대라 하니까 이제 학생들은 'AI를 뛰어넘는 메타인지'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영수만 해도 골치 아픈데 메타인지 배우려면 어느 학원을 보내야 하나.
미국 컬럼비아대학 심리학과 교수 리사 손이 쓴 책 '메타인지 학습법'은 이 지점에 서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6만 부 이상 판매되며 학부모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지만 정작 손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런 한국적 트렌드와 반대 지점에 놓여 있다. 밀어부치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감을 둬야 오히려 공부가 더 잘된다는 얘기다.

손 교수는 "한국 학원들의 광고 문구를 보면 ‘빠른’ ‘쉬운‘ ’실패없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등의 단어가 많은데 이는 모두 '기계'를 묘사하는 단어"라고 못 박는다. 부모가 낳은 건 '사람'인데, 학부모가 기르는 건 '기계'라는 쓴소리다.
손 교수는 학습을 둘러싼 3개의 착각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가지 착각이란 ①빠른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②쉬운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③실패 없는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라는 것이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AI를 뛰어넘기 위해' 메타인지 공부법을 한다면서, 정작 'AI만도 못할 게 뻔한 기계가 되기 위한' 메타인지 공부법을 하게 된다는 일침이다.
공부가 그리 쉬우면 부모부터 공부해보라
202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어김없이 난이도 조절 실패로 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한국 땅에서 메타인지 공부법의 핵심은 뭘까. 다섯가지로 정리해봤다.
학습 자체가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부모들은 "그게 왜 안돼?"라고 쉽게 말하지만 원래부터 잘 되는 건 없다. 오은영 박사가 이미 말했다. "공부가 그렇게 쉬우면 부모가 공부해서 의대 가라"고. 메타인지는 크게 모니터링과 컨트롤 두 과정으로 구성된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모니터링이고, 그에 맞춰 방향과 전략을 설정하는게 컨트롤이다.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그리고 향후 방향을 고민할 시간을 갖게 된다.
부모 스스로의 불안을 경계한다. 내가 학교 다닐 적에 영어를 못해서, 혹은 나는 잘했지만 요즘 수학이 워낙 어렵다니까 혹시, 라는 식으로 부모는 자신의 불안감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불안함은 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전염된다. 거기에다 부모의 과도한 불안은 아이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걸 방해한다. 부모의 불안을 감지한 아이가 감추려 들기 때문이다. 어렵다, 모른다, 편히 인정해야 한다.
실패와 실수가 메타인지에는 더 좋다. 실수와 실패는 '인지적'으로는 학습에 서툴다는 뜻이지만 '메타인지'를 키우기엔 좋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틀렸는지 짚어보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한다'고 한다. 그건 학습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학습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어린 시절이라 그렇다. 그저 빨랐을 뿐인데 아이가 뛰어나다고 착각한 거다. 그러다 중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면 "너 사춘기니?"라며 싸운다.

얼마나 기억할지가 아니라 얼마나 망각할 지부터 생각하라. 공부했으니 이건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공부했어도 모르는 게 당연한 거다. 공부한 걸 다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돌아서면 잊는다. 그 당연한 걸 막기 위해 학습이란 걸 하는 거다. 공부는 바짝 벼락치기하고 나서 뒤도 안 돌아보는 게 아니라 틈틈이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긴 시간 두고 반복 확인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최악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의지하는 거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설명 들어보니 다 아는 것 같다? 학원 가면 강사님이 쪽집게처럼 쏙쏙 짚어주니 다 알 것 같다? 객관식 사지선다로 네개 중 하나 골라서 맞혔으니까 나는 이걸 다 안다? 아리송하면 나무위키 검색하고 AI에게 정리해보라 시키면 된다? 최악이다. 스스로의 수준을 파악한 뒤 거기서 약간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해 보는 것, 그걸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해보는 것, 그게 학습이다.
완벽주의에 내몰린 아이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한인 2세로 미국 뉴욕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손 교수를 화상통화로 인터뷰했다. 뭐든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는 착하고 예쁜 아이로만 자라서, 그런 자신을 바꿔보고 싶어서 심리학, 그것도 메타인지 심리학을 공부했다는 손 교수의 고백은, '아이에게 되도록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볼 틈을 주자'는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케 했다. '무한 학원 뺑뺑이'가 되레 생각을 정리해볼 시간을 뺏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메타인지 학습법', 어떻게 관심 가지게 됐나.
"어릴 적부터 나는 착하고 조용하게, 되게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고 불안이 가득한, 그런 아이였다. 요즘 말로 전형적인 'K-장녀'였다. 메타인지를 공부할수록, 석박사까지 하고 교수가 된 어른이 되고서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을 자주 드나들게 되면서 한국 아이들도 그렇다고 느꼈다. 다들 시키니까 열심히는 하는데, 뭘 위해 열심히 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 얘길 했더니 주변에서 그게 바로 한국에 꼭 필요한 얘기다, 라고 권해주셔서 책도 쓰게 됐다."
-메타인지 학습법이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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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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