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흔든 한인교포 4천명 '뜨거운 몸짓'

[정규수의 스포츠 깊게 바라보기]

문화유산 된 미주체전

미국 전역에서 약 4000명의 한인 동포들이 텍사스주 달라스에 모였다. 이유는 하나. 6월 20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제23회 전미주한인체육대회(이하 미주체전)를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는 전국체육대회가 있다면 미국에는 미주체전이 있다. 힘겨운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그들은 달리고, 공을 차고, 라켓을 휘두른다.

2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선다. 각 종목 우승자 및 팀은 미국 대표로 한국 전국체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뿌리의 나라와 연결되는 것이다. 1981년 시작된 미주체전은 4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이민 1세대의 땀과 헌신, 그리고 다음 세대의 참여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필자는 미주체전을 '문화유산'이라 부르고 싶다. 이민 공동체 사회의 온기와 한민족의 자부심이 살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열린 전미주 한인체육대회의 입장식 . 사진= 정규수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는 각 민족들이 자신들만의 스포츠 대회를 갖는다. 예를 들어, 중국계 미국인들은 무려 79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북미 중국인 배구 토너먼트(North American Chinese Invitational Volleyball Tournament)를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다. 인도와 파키스탄계 커뮤니티는 시카고에서 농구대회(Indo-Pak Basketball Tournament)를 35년째 이어오고 있다. 또 유대인 커뮤니티의 경우, JCC Maccabi Games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올림픽 스타일의 경기를 열고 있는데, 이 행사는 유대교가 결합된 특수한 문화 스포츠 행사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미주체전은 민족을 중심에 둔 유일한 올림픽 스타일의 대회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종교나 출신 지역을 넘어서, 한민족이라는 정체성만으로 연결되는 미주체전은 미국이라는 다민족 국가 안에서 우리만의 뚜렷한 문화적 재산이다.

40여년간 지켜온 노력의 인프라들

미주체전의 운영 구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방식과 유사하다.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는 바로 재미국대한체육회. IOC가 올림픽을 책임지듯 재미국대한체육회는 미주체전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2025년 현재, 이 조직은 미국 전역에 걸쳐 총 31개의 지역 체육회를 산하에 두고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아틀란타의 조지아 대한체육회도 그중 하나다.

재미국대한체육회에는 각 종목별 중앙 경기 단체도 있다. 현재 22개의 종목 단체가 소속되어 있는데, 이는 올림픽의 국제경기연맹과 흡사한 구조다. 태권도, 축구, 배드민턴, 골프, 수영, 탁구, 사격, 족구 등 그 다양성은 놀랍다. 이는 미주체전이 단순한 한인 체육대회를 넘어, 조직적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도적이고 전문화된 행사로 성장해 왔다는 방증이다. 마지막으로, 미주체전의 실질적인 기획과 집행을 맡는 조직이 있다. 바로 조직위원회다. 이번 대회에서는 달라스 조직위원회가 경기장 확보, 인력 구성, 대회 일정 운영은 물론, 개막식과 폐막식 같은 상징적 행사까지 모든 책임을 졌다. 이들의 노력 없이 미주체전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대회를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와 운영 구조야말로, 한인 동포 커뮤니티의 진짜 자산이 아닐까.

미주체전에 참가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승부를 즐기기 위해, 누군가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온다. 하지만 그 모든 동기 안에는 하나의 공통된 열망이 있는데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결국, 미주체전은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닌 민족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다. 민족 정체성(ethnic identity)이란 같은 언어, 역사, 문화를 공유하며 형성된 심리적 소속감이다. 미주 한인 동포들에게 있어 이 정체성은 종종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한민족이라는 감각은 흐릿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전의 현장에 서면, 다시금 그 연결감이 되살아난다.

입장식에서 행진하는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전미주체육대회 행사 관계자들. 사진=정규수

특히 전국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경험은 단순한 스포츠 일정 그 이상이다. 너무나도 성장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체험하며, 동포들은 우리 민족의 잠재력과 저력을 직접 확인한다. 흥미로운 장면도 있다. 젊은 시절 선수로 뛰었던 이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아이의 손을 잡고 경기장을 찾는다. 때로는 그 아이가 다음 세대 선수로 참가하기도 한다. 세대가 이어지는 모습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강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미주체전을 40년 넘게 지속되게 한 가장 큰 이유 아닐까.

민족 정체성, 타 민족에게는 배타적으로?

민족 정체성은 우리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부여한다. 하지만 동시에 조심해야 할 양면성도 지닌다. 바로 타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타성으로 변질될 위험이다. 많은 연구가 스포츠가 민족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포츠가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한민족을 포함한 아시아계 집단이 비교적 강한 민족 배타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 문화는 대체로 규범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다른 문화를 가진 타민족과의 경계에 대해 민감하고 철저한 편이다. 이는 단지 문화적 습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회적 태도와 정책적 입장에도 반영된다.

예를 들어,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불법체류자 추방에 대해 합법적 체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응답한 아시안 비율은 63%로 나타났다. 이는 백인의 58%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지만, 히스패닉(83%)이나 흑인(78%) 집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처럼 민족 정체성은 우리 공동체를 단단히 묶어주는 끈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계의 벽을 세우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시대에 따라, 또 사회적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과거에는 이민자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언어, 문화, 심지어 정체성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좋은 이민자란 기존 문화를 버리고 미국식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으로 간주되곤 했다.

이러한 시각은 이후 “멜팅 팟(melting pot)”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다양한 민족이 하나의 주류 문화 안에 섞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발상이었다. 얼핏 듣기엔 이상적인 듯 하지만 멜팅 팟은 결국 이민자 고유의 문화를 지워버리는 것에 가까웠다.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상 주류 문화로의 흡수를 요구했던 셈이다.

주목받는 '레인보우 모델'

오늘날은 조금 다르다. 최근에는 멜팅 팟 대신 “레인보우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무지개는 각기 다른 색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민자 사회도 마찬가지로 각 민족이 자신이 가진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서로 어울리고 협력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사회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관점이다.

자부심 있는 정체성은 결코 배타적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뿌리를 확고히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열린 마음으로 타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 우리라는 정체성이 분명할수록, 타인과의 관계도 더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버리기’가 아니라 ‘지키면서 더해가기’다.

전미주한인 체육대회에 참가한 시카고지역 선수단.

필자는 미주체전이 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고 믿는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정책은 불법체류자를 적발하고 추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찰적 접근이 주를 이룬다. 이런 방식은 문제의 사후 처리에는 작동하겠지만, 사회 통합이나 갈등 예방이라는 더 넓은 차원에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그에 비해, 미주체전과 같은 행사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며 동시에 미국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감을 이민자 스스로 인식하고, 공동체 속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돕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민족 정체성이 가진 순기능, 즉 공동체 의식, 소속감, 문화적 자부심이 배타적인 태도로 흐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미주체전이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미주체전은 단순한 생활 체육의 장을 넘어서야 한다. 이는 정책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와 지역 사회는 이민자를 연결과 참여의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 미주체전은 그 가능성을 매 대회마다 증명해오고 있다.

'인구감소'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

필자는 미주체전이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 선 대한민국에도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인구감소라는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인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접근일지 모른다. 미주체전은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조용히 보여준다. 만약 어느 날 여러분의 동네 체육관에서, 한국 곳곳에서 모인 외국인들이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경기를 펼친다면 어떨까?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응원하고, 고유의 음식과 문화를 나누며, 자긍심을 표출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가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새기고, 공동체로 뭉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정체성이 배타성으로 흐르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포용하고 조율하는 태도다. 미주체전은 이역만리 타지에서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땅에서, 같은 실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

2년마다 열리는 전미주한인 체육대회에 참가한 뉴욕대한체육회 선수단. 사진= 정규수

44년이란 미주체전의 세월이 곧 안정적인 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번 제23회 미주체전은 쉽지 않은 여정 끝에 가까스로 열린 행사였다. 원래 개최지는 캘리포니아 LA였다. 미국 한인 사회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도시지만, 고물가와 운영 부담이 너무 컸다. 결국 LA 체육회는 공식적으로 대회 준비를 포기했다. 이어 개최 의사를 밝힌 곳은 텍사스의 휴스턴이었다. 기대를 모았지만, 이번에도 예산 문제로 논의가 중단됐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달라스가 어렵사리 바통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미주체전은 열릴 수 있었다.

이 소중한 행사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보통 미주체전의 폐막식에서는 다음 개최지가 공식 발표된다. 이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공동체의 연속성과 희망을 상징하는 신호탄이다. 그러나 이번 달라스 체전에서는 차기 개최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누구도 쉬이 손을 들 수 없는 상황. 결국 예산과 인력,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한 열정이 미주체전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필자는 여전히 미주체전을 열렬히 응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행사는 단지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한민족 정체성을 확인하고, 세대와 지역을 넘어 공동체를 이어주는 귀중한 문화 자산이기 때문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번듯한 대기업 후원은 없더라도, 누군가는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할 것이다. 미주체전의 여정은 우리 모두의 여정이다.


※ 정규수 교수는 현재 미국 케네써 주립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후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어스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 이민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주로 연구하며 미국 및 한국에서 일어나는 스포츠 현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경영관리적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안계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학술 활동 이외에도 미주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한 한인 스포츠 단체들의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