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났지만 마주치지 않는다…12년 만의 남북 여자축구가 드러낸 현실

[스탠딩아웃]

내고향여자축구단이 한국 땅을 밟았다.

선수 27명, 스태프 12명. 모두 39명이다.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는 취재진과 환영 인파가 몰렸다. 현수막은 펼쳐졌고, 카메라는 선수단을 따라붙었다. 선수들은 말을 아꼈다. 웃음도 많지 않았다. 환영의 언어와 경계의 표정이 같은 화면에 담겼다.

© AP 뉴스

외신도 이 장면을 조심스럽게 봤다. AP는 이번 방남을 긴장 국면 속 8년 만의 북측 스포츠 선수단 방남으로 전하면서도, 관계 개선의 신호로 단정하지 않았다. 더가디언 역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한국 방문을 이례적인 스포츠 접촉으로 다뤘지만, 남북 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이라는 전제를 함께 달았다.

그 해석이 맞다. 이번 방남은 정부가 만든 교류 행사가 아니다. 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일정이 만든 이동이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대회에 참가했고, 개최지는 한국이었다. 그래서 왔다. 이 장면 하나로 남북 관계가 움직였다고 말하는 것은 빠르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장면도 아니다.

북측 스포츠 선수단의 방남은 2018년 이후 8년 만이다. 여자축구로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다. 대표팀이 아닌 여자축구 클럽팀이 한국에서 공식 경기를 치르는 것도 처음이다. 남북 공식 대화가 막힌 상황에서 축구가 먼저 닫힌 문 앞에 섰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숙소다.

내고향여자축구단과 수원FC 위민은 AFC가 지정한 같은 호텔에 묵는다. 그러나 층은 나뉜다. 식사 시간도 조정된다. 서로 마주치는 상황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같은 건물 안에 머물지만 접촉은 제한된다. 이번 경기의 정치적 의미는 거창한 환영식보다 그 장면에 더 가깝다.

경기는 20일(수) 오후 7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7087석은 예매 시작 약 12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 여자축구 경기로는 보기 드문 속도다. 홈팀 수원FC 위민의 준결승, 결승행 티켓, 12년 만의 남북 여자축구, 내고향여자축구단 방남이라는 상징이 한꺼번에 붙었다.

관중석은 뜨거울 것이다. 문제는 그 열기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다.

정부는 남북 선수단을 함께 응원하는 공동응원단 활동에 남북협력기금 3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스포츠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민간 교류의 온도를 관리하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논란도 자연스럽다. 남북 대화는 막혀 있고, 북측은 한국을 통일의 상대가 아닌 적대적 관계로 규정해왔다. 이런 시점에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응원단을 운영하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은 피할 수 없다.

핵심은 지원 여부만이 아니다. 정부가 만들지 않은 접촉을 정부가 어디까지 지원하고, 어디까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 경기를 평화 이벤트처럼 포장하면 무리수가 된다. 북측은 부담을 느낄 수 있고, 국내 여론은 갈라진다. 반대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흘려보내면 어렵게 생긴 실무 접점의 의미를 놓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과 발표가 아니라 관리 능력이다.

이재명 정부에도 까다로운 첫 현장이다. 정부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관계 복원을 말해왔다. 하지만 현장은 구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번 방남은 정부가 준비한 무대가 아니라 국제 대회가 만든 우발적 접촉에 가깝다. 준비된 선언보다 이런 장면에서 정부의 실제 감각이 드러난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입국, 숙소, 이동, 훈련, 경기, 응원단, 취재 동선까지 국제 기준에 맞춰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다. 북측 선수단을 특별 대접하는 듯 보여서도 안 된다. 국내 정치용 장면을 만들려 해서도 안 된다. 수원FC 위민의 경기를 남북 이벤트의 배경으로 밀어내는 일은 더더욱 피해야 한다.

이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들이다.

수원FC 위민에 쉬운 경기도 아니다. 조별리그에서 이미 내고향여자축구단에 0-3으로 졌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주도권과 압박 강도에서 차이가 났다. 이번 준결승은 남북전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홈팀 수원FC 위민의 설욕전이다. 결승행 티켓이 걸려 있고, 한국 여자축구가 북측 여자축구의 조직력과 피지컬을 상대로 어떤 답을 낼지도 걸려 있다.

© 더가디언

더가디언은 앞서 북측 여자축구를 아시아권에서 가장 경쟁력 팀 중 하나로 평가했다. 국제무대에서 오랜 공백이 있었지만, 연령별 대표팀의 성과와 강한 조직력은 여전히 무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었다. 수원FC 위민이 상대하는 것은 정치적 상징만이 아니다. 축구적으로도 까다로운 팀이다.

지소연에게도 이 경기는 남다르다. 한국 여자축구의 상징인 그는 북측을 상대로 승리를 얻지 못했다. “은퇴 전 꼭 이겨보고 싶다”는 말은 감상적인 문장이 아니다. 한 세대의 대표 선수가 자기 시대 안에서 풀고 싶은 오래된 숙제다.

남북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스포츠는 쉽게 도구가 된다. 응원은 메시지가 되고, 사진은 상징이 된다. 선수의 움직임보다 관중석 구호가 더 크게 소비된다. 그렇게 되면 축구는 뒤로 밀린다. 이번 경기를 가장 망치는 방식도 그것이다.

수원 FC 위민은 승부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경기를 문제없이 치러야 한다. 언론은 과장 없이 읽어야 한다. 각각의 역할이 섞이는 순간, 경기는 정치의 배경이 된다.

12년 만의 남북 여자축구는 반가운 장면이다. 동시에 불편한 장면이다. 같은 호텔에 묵지만 동선은 갈라진다. 관중석은 가득 차지만 관계의 빈칸은 그대로다.

휘슬이 울리면 축구가 시작된다. 그 순간만큼은 정치가 뒤로 물러서야 한다.

이번 경기의 의미는 함께 웃는 사진 한 장에 있지 않다. 무리 없이 입국하고, 무리 없이 경기하고, 무리 없이 돌아가는 데 있다. 지금 남북 관계에서는 그 정도도 작지 않다.

20일 밤 수원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거창한 화해가 아니다.

축구가 축구로 끝날 수 있는지다.

출처 : 스탠딩아웃(https://www.standingou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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