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정부 "블랙먼데이 안돼" UBS 압박 … 위기진화 속도전
CS, 하루 최대 13조 인출 사태
당초 인수에 부정적이던 UBS
시총 7분의1 수준에 인수 시도
스위스 당국, 인수 속도 내려
필수절차 주주투표 생략 추진
당분간 전세계 은행권 '살얼음'
◆ 은행위기 분수령 ◆
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스위스 2위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전에 뛰어든 배경에는 스위스 정부의 막후 역할이 컸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초 UBS 내부에서는 'CS를 인수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만 해도 UBS는 CS 인수설에 선을 그었다.
다만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스위스 정부가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자 UBS 내부에서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국 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스위스 위상이 무너질 우려가 있고, 결국 UBS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8일(현지시간) 오후 5시께 스위스 정부 주도로 UBS의 CS 인수 논의가 개시된 가운데 양사는 막판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UBS가 현재 시가에 한참 못 미치는 인수 가격을 제시한 만큼 CS 측에서도 선뜻 인수 조건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협상에서 CS는 UBS가 제안한 '10억달러 인수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인수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주주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CS의 시가총액은 지난 17일 기준 약 80억달러로, UBS가 제안한 인수 금액의 7배가 넘는 수준이다.
인수를 위한 주주총회 투표를 건너뛰려는 정부 측의 움직임도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스위스 당국은 최대한 빠른 결과 도출을 위해 인수 과정에서 필수인 주총 투표를 생략할 것을 예고했다. 이는 사실상 CS와 CS주주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인수 작업이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협상 결렬로 세계 경제에 더 큰 충격이 닥칠 것을 막기 위한 스위스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도 풀이된다. 협상 타결 마감일인 19일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당장 다음날인 20일 CS발 위기가 전체 금융 시장에 파급되는 '블랙먼데이'를 맞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에만 하루 최대 100억달러의 CS 예금이 인출된 뱅크런 사태가 재연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겠다는 계산이다.
UBS 입장에서는 CS 인수에 따른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수 비용을 낮출 수밖에 없다. UBS는 자사가 CS를 인수하는 조건의 일부로 스위스 정부에 60억달러 규모의 지급 보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지난 16일 CS에 최대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원)의 유동성을 제공하기로 했음에도 CS는 주가 급락 등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보증 지급 요구는 향후 일부 사업 부문 축소와 소송 등으로 발생할 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CS는 잇따른 투자 실패와 스캔들에 휘말리며 지난해에만 약 1조원의 손실을 냈고, 미국 SVB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CS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립은행마저 추가 지원을 거부하면서 더 큰 위기에 직면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이 16일 500억스위스프랑에 달하는 긴급 신용지원을 제공했지만 유동성 위기를 떨쳐내기엔 역부족이었다.
UBS의 참전으로 인수와 관련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자산관리 부문은 남겨두고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투자은행 부문은 인수 이후 처분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안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UBS가 CS의 스위스 국내 소매금융 부문을 어떻게 할지도 관건이다. 해당 사업부는 CS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UBS로 넘어갈 경우 국내 은행 부문에만 사업이 너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UBS와 CS의 자산은 각각 1조1000억달러와 5800억달러다. 시가총액은 지난 17일 현재 각각 650억달러, 80억달러다.
한편 인수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금융 불안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다만 SVB 파산 등이 촉발한 미국 은행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결정도 위기 확산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민기 기자 /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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