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았던 이강인, 이제 당당히 에이스...포르투갈전 승리 희망됐다

이석무 2022. 11. 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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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 대표팀 이강인이 코너킥을 준비하러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하=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진즉에 썼으면 얼마나 좋아.”

‘골든보이’ 이강인(마요르카)이 조규성(전북현대)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하자 취재석 근처에 있던 한국 응원단 가운데 누군가 이렇게 소리쳤다. 아마도 이 경기를 본 모든 축구팬들이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한국 축구가 가나에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대표팀 막내 이강인(마요르카)의 활약에 축구팬들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28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나와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경기에서 2-3으로 아깝게 패했다.

한국은 전반전 중반까지 가나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후 수비가 무너지면서 허무하게 2골을 내줬고 전반전을 0-2로 뒤진 채 마쳤다. 한국으로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벤투 감독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후반 12분 권창훈(김천상무)을 불러들이고 이강인을 교체 투입했다.

신의 한수였다. 이강인은 들어가자마자 1분 만에 경기 흐름을 바꿨다. 후반 13분 왼쪽 측면에서 한 명을 제친 뒤 환상적인 크로스를 올렸다. 문전에 있던 조규성(전북현대)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하는 상대 수비수를 이겨내고 헤딩 골로 연결했다. 이강인의 월드컵 첫 공격포인트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강인은 정확한 패스로 답답했던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낮게 찔러주는 패스는 계속 상대의 허를 찔러 공간을 파고 들었다. 높이 올려주는 패스는 공격수 머리나 발에 정확하게 배달됐다. 주공격수 손흥민(토트넘)이 2~3명씩 달라붙은 상대 집중 마크에 고전하는 상황에서 후반전 대표팀 에이스는 사실상 이강인이었다.

심지어 손흥민 대신 세트피스를 전담하기도 했다. 이강인이 코너킥을 차러 갈 때마다 팬들은 뜨거운 환호로 응원을 보냈다.

2-3으로 뒤진 후반 30분 이강인의 왼발이 다시 빛났다. 상대 진영 오른쪽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 이강인과 손흥민이 공 앞에 나란히 섰지만 이내 손흥민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강인이 왼발로 프리킥을 찼다. 골문을 향해 낮고 날카롭게 깔려 들어가는 직접 슈팅이었다. 가나 골키퍼 로렌스 안티-지기가 몸을 던져 막아내지 않았다면 월드컵 첫 골도 기대해볼 수 있었다.

극적인 대반전 드라마다. 이강인은 2019년 U-20(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에 앞장섰다. 한국 축구 사상 최고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성인 대표팀에서는 잘 풀리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번 월드컵에서 이강인을 볼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지난해 3월 한일전(한국 0-3 패)에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이후 오랜 기간 선발되지 못했다. 올해 9월 A매치 때 1년 6개월 만에 다시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2경기에서 1분도 뛰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그동안 자신의 스타일과 안 맞는다는 이유로 이강인을 계속 외면했다. 팬들이 경기장에서 ‘이강인’ 이름을 연호해도 벤투 감독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최종 명단에 승선했음에도 이강인이 출전 기회를 얻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강인은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훈련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쇠심줄처럼 질기고 질긴 벤투 감독의 고집을 꺾었다. 우루과이와 1차전에 교체 투입돼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데다 이날 가나전에서는 게임체인저 역할까지 했다.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기용한 이유에 대해 “빠르게 치고 나가는 패스가 좋고 특히 탈압박에 능하다”며 “훈련장에서도 그런 장점을 여러 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제 관심은 3차전 포르투갈전에 쏠린다. 12월 3일 오전 0시에 열리는 포르투갈전은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여부가 걸린 마지막 기회다. 한국이 무조건 포르투갈을 이긴다는 가정하에 우루과이-가나전 결과에 따라 극적으로 조 2위가 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 2경기 연속 교체로 들어갔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3차전에는 선발 출전이 유력하다. 이강인을 중심으로 한 전술이나 경기 운영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손흥민이 집중견제를 당하고 있고 또 다른 공격의 핵인 황희찬(울버햄프턴)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강인의 왼발은 대표팀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이강인은 경기 후 현장 인터뷰에서 “벤투 감독님께서 항상 공격적인 플레이, 골에 가까운 플레이를 요구한다”며 “내가 들어가서 반전이 있기는 했지만 결과가 매우 아쉽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울러 “마지막 경기가 남았으니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면서 “다음 경기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이강인이 ‘골든보이’라는 별명답게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축구에 황금빛 기적을 선물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의 눈이 이강인의 두 발에 쏠리고 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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