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년 고시원비 600만원 대줬는데.." 7년 뒤 경찰 제복 입고 찾아와 울었다

낯선 땅에서 혼자 버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큰돈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밥 한 끼와 "힘내라"는 말 한마디가 무너지려던 마음을 붙잡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손길은 오랜 시간이 지나 뜻밖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오정례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신림동 고시촌 골목에서 20년 넘게 작은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외아들은 결혼해 경기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시촌 반찬가게의 단골은 대부분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정례 씨는 수험생들이 오면 반찬을 한 숟가락씩 더 얹어 주곤 했습니다. "밥은 제대로 먹어야 공부도 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은 정례 씨를 '신림동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9년 전 겨울, 가게에 마른 체구의 청년 하나가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늘 가장 싼 콩나물무침 한 팩만 사 갔고, 말투가 조금 달랐습니다. 어느 날 정례 씨가 고향을 묻자 청년은 머뭇거리다 대답했습니다. "함경북도에서 왔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철민이었습니다. 열여덟 살에 어머니와 함께 국경을 넘었지만, 중국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채 혼자 한국에 왔다고 했습니다. 철민이는 경찰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고시원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 어느 저녁, 철민이가 큰 가방을 메고 가게 앞을 지나갔습니다. 정례 씨가 불러 세우자 철민이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시원비가 석 달 밀려서 오늘 나가야 합니다.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이 문을 닫아서요." 밖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정례 씨는 그 길로 철민이를 데리고 고시원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밀린 석 달 치를 내주고, 앞으로 남은 기간도 자기가 내겠다고 했습니다. 고시원 주인이 놀라 물었습니다. "할머니, 친손자예요?" 정례 씨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가게 단골이요."

그 뒤로 2년 동안 정례 씨는 매달 25만 원씩 철민이의 고시원비를 냈습니다. 모두 합치면 600만 원이었습니다. 저녁이면 가게 문을 닫기 전에 철민이 몫의 반찬 도시락을 따로 싸 두었습니다. 철민이는 그 도시락을 받을 때마다 두 손으로 받아 들고 허리를 숙였습니다.

아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걱정했습니다. "엄마,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큰돈을 대 줘요." 정례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람은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안다. 그 애는 반찬 한 가지도 남기는 법이 없어."

철민이는 새벽 다섯 시면 고시원 옥상에 올라가 체력 시험에 대비해 팔굽혀펴기와 줄넘기를 했습니다. 낮에는 독서실 구석에서 법 과목을 외우고, 밤에는 편의점에서 네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정례 씨는 가게 앞을 지나는 철민이의 운동화가 해질 때마다 시장에서 새 운동화를 사다 놓았습니다.

철민이는 첫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도 몇 점 차이로 떨어졌습니다. 그날 밤 철민이는 가게에 와서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할머니, 저 같은 사람은 안 되는 건가 봐요. 이제 그만 공장에 가서 돈이나 벌겠습니다."

정례 씨는 가게 셔터를 반쯤 내리고 철민이 앞에 앉았습니다. "너 같은 사람이 왜 안 되냐. 목숨 걸고 강 건너온 사람이 시험 하나 못 넘겠냐. 한 번만 더 해 봐라. 고시원비는 걱정 말고." 그날 정례 씨는 철민이에게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먹였습니다.

그리고 7년 전 봄, 철민이는 세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습니다. 합격 소식을 들고 달려온 철민이는 가게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경찰이 됐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안 잊겠습니다."

정례 씨는 그날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철민이를 데리고 시장 양복점에 갔습니다. 첫 출근 날 입을 양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를 맞춰 주며 말했습니다. "경찰은 어깨를 펴야 한다. 이제 누구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마라." 철민이는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습니다.

철민이는 교육을 마치고 강원도 접경 지역으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처음 몇 해는 명절마다 전화가 왔고, 가끔 강원도 감자며 옥수수를 택배로 보내왔습니다. 그러다 바쁜 근무가 이어지면서 연락은 차츰 뜸해졌습니다.

정례 씨는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경찰 일이 얼마나 고된지 텔레비전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찰차가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정례 씨는 저 안 어딘가에 철민이 같은 청년이 타고 있겠거니 하며 혼자 웃곤 했습니다.

그사이 정례 씨도 많이 늙었습니다. 무릎이 아파 가게 문을 여는 날보다 닫는 날이 많아졌고, 아들은 이제 그만 가게를 정리하라고 성화였습니다. 고시촌 골목도 예전 같지 않아 수험생 손님은 하나둘 줄어들었습니다.

지난달 어느 오후, 가게 문이 열리며 정복을 입은 경찰관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정례 씨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라 일어섰습니다. 경찰관은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더니 정례 씨 앞에서 거수경례를 했습니다. "할머니, 저 철민이입니다."

정례 씨는 들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렸습니다. 깡마른 청년은 어깨가 떡 벌어진 서른넷의 경찰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철민이는 관악경찰서 지구대로 발령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이 가게부터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가게 밖에는 순찰차 한 대가 서 있었고, 운전석의 동료 경찰관이 창문 너머로 꾸벅 고개를 숙였습니다. 철민이는 "선배님께 할머니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오늘은 꼭 같이 오자고 하셨어요"라며 웃었습니다.

철민이는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할머니께 받은 고시원비 600만 원입니다. 이 돈 모으려고 7년 동안 따로 적금을 부었습니다." 정례 씨는 봉투를 도로 밀어냈습니다. "이건 빌려준 게 아니라 준 거다. 네가 경찰 된 걸로 다 받았다."

철민이는 한참 망설이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럼 할머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내년 봄에 결혼합니다. 중국에서 헤어진 어머니 소식은 아직 모릅니다. 그날 혼주석에 할머니가 앉아 주세요." 정례 씨는 철민이를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철민이는 순찰 도는 길에 꼭 가게 앞을 지납니다. 무거운 반찬 통을 들어 주고, 셔터가 고장 나면 비번 날 와서 고쳐 줍니다. 골목 사람들은 이제 정례 씨 가게를 '경찰 아들 둔 반찬가게'라고 부릅니다.

지난 주말, 철민이는 예비 신부와 함께 가게를 찾았습니다. 정례 씨는 오랜만에 철민이가 좋아하던 제육볶음을 볶고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제육볶음 한 접시에 된장국과 나물 몇 가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철민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 맛이 제 고향 맛입니다."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에는 가난한 동네에서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묵묵히 품어 주는 이웃 어른들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핏줄이 아닌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힘든 처지의 사람에게 건넨 도움은 그 사람의 하루를 넘어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꼭 큰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내 주변에 홀로 버티는 젊은이가 있다면, 따뜻한 밥 한 끼와 "힘내라"는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 보세요.

올가을 정례 씨는 철민이와 예비 신부와 함께 관악산 자락 산책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산비탈마다 단풍이 붉게 타올랐고, 나뭇잎 사이로 늦은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졌습니다. 정례 씨는 철민이의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출처 : '괭이부리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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