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걱정' 한국의 튀르키예인들 "친구도 숨져…제일 필요한 건 침낭·이불"

정세진 기자, 김도엽 기자, 박상곤 기자 2023. 2. 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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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서울 이태원의 한 케밥집에서 튀르키예(터키) 출신 종업원들이 근무 하고 있다. /사진=박상곤 기자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튀르키예(터키) 전통 음식점. 튀르키예 출신 점원들은 "무슨 말을 할 기분이 아니다", "매우 슬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손님을 응대할 때는 표정이 잠깐 밝아졌지만 손님이 가고 나면 침울한 적막으로 환원됐다.

지난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에서 강진이 발생한 이후로도 여전히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한가지 달라진 점은 손님들 중 누가 튀르키예 사람인지 쉽게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카산씨는 "가게에 튀르키예 사람들이 자주 온다"며 "다들 아는 사람들인데 표정을 보면 바로 안다. 지진 난 후 표정도 안 좋고 울컥한 상태로도 이야기하고 가족이 다쳤다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만히 있지 말고 돈이라든지 먹을 거 입을 거라든지 이런 걸 보내야겠다고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튀르키예 음식점에서 일하는 에르군씨(38)는 "서울에 오기 전 지진이 난 말라티아 지역에서 28년간 살았다"며 "아는 지인과 친구들 몇 명이 숨져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있다 튀르키예로 간 지인들 중에 지진 후에 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인터넷이 끊긴 것 같다"고 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무함마드 사이드 체옌씨(29)는 "튀르키예 친구들에게 방한 용품이 필요하다"며 "음식과 물은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는데 방한 용품은 별로 안 나온다"고 했다. 체옌씨는 "내 친구들은 집을 못 쓰고 있어서 밖에서 자고 있다"며 "여전히 위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셰 쿠벳씨가 거주하는 인천의 한 레지던스호텔 앞에 재한 터키인들이 보낸 구호물품이 쌓여있다./사진=아이셰 쿠벳씨 제공


고국의 소식을 접한 재한 튀르키예인들은 자국 대사관이 주도하는 활동을 돕거나 국제 구호기구와 협력하는 등의 방식으로 지진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과 튀르키예항공은 인천의 한 물류회사를 통해 지진 관련 구호물품을 튀르키예로 보내고 있다. 대사관은 지난 6일 지진 발생 직후 페이스북에 현지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방한용품을 보낼 물류회사 주소와 함께 현금 기부 계좌를 올렸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제무역학 석사 과정 중인 아이셰 쿠벳씨(25)도 대사관 공지를 보고 튀르키예 친구들과 어떻게 고국을 도울지 고민했다. 쿠벳씨는 카카오톡에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자신의 집 주소를 공개했다. 많은 튀르키예 사람들이 쿠벳씨가 살고 있는 인천 영종대로의 한 레지던스 호텔로 지원 물품을 보낸다.

그는 이 물건들을 모아 튀르키예에 전달하는 일을 나서서 하고 있다. 여유가 많지 않은 유학생들이 보내는 작은 물건들을 한 데 모아 다시 큰 박스에 포장한다. 이를 대사관에서 지정한 물류회사로 옮기고 있다. 다행히 쿠벳씨의 집과 물류회사가 10분 거리다.

그는 "쿠팡에는 나중결제 서비스가 있어서 편리하다"며 "당장 여유가 없는 튀르키예 사람들도 우선 피해 현장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우리 집으로 보내준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 침낭과 아기 옷 같은 방한 용품이 가장 필요하다고 들었다"며 "아기들이 먹을 것도 필요한데 한국 제품을 보내면 현지에서 한글을 못 읽어서 먹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6일 튀르키예(터키)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 /사진=독자 제공


대사관과 별도로 기금을 모으고 있는 사업가도 있다. 튀르키예 출신으로 이태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오는 9일부터 2주간 지진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모금에 나선다. 모금이 완료되면 A씨가 직접 모금된 성금을 튀르키예 현지에서 기부할 계획이다.

A씨는 "우리 레스토랑 요리사 60명 중 절반 가까이가 지진 피해 지역 출신"이라며 "직원 중엔 가족이나 친척이 돌아가신 분도 있고 자기 건물이나 아파트가 지진으로 무너진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불과 담요"라며 "날씨가 매우 춥고 지난주부터 눈이 많이 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기부 포털인 '네이버 해피빈'에 따르면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 국제 의료구호 단체 국경없는의사회 등 10여개 단체들은 모금을 통해 튀르키예 현지에 난방용품과 생필품, 구호물자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한국월드비전에는 3억6000만원, 국경없는 의사회에는 5억원 가량의 기부금이 모였다.

이 밖에 과거 튀르키예에서 8년간 선수 생활을 한 '배구여제' 김연경(35)이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튀르키예에 대한 도움과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등 사회 각계 각층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케밥집. 튀르키예(터키) 출신 점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김도엽 기자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김도엽 기자 usone@mt.co.kr,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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