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잡겠다는 건지 눈감겠다는 건지… 새 층간소음 대책의 맹점
기존 대책 데시벨 미충족 시 하자
새 기준은 설계대로 하면 통과
건설사 면죄부 만들어주는 꼴
분쟁조정 시스템도 엉망인데
심리상담이 유용할 지도 의문
데시벨 기준만 충족하면 될 일
정부가 또다시 층간소음 대책을 내놨다. 이번엔 바닥구조에 하자가 있는지를 판정하는 기준을 신설하고, 층간소음 갈등 전문 심리상담사의 방문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정부가 층간소음 대책을 낼 때마다 피해자보단 건설사들이 혜택을 누렸다. 이번엔 좀 다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월 12일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생활편의 서비스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 제도를 운영해 사회의 다양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다. 흥미로운 건 이 개선방안에 층간소음 대책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층간소음 대책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바닥구조 하자 판정기준'을 신설한다. 정부에 따르면 그동안 공동주택 층간소음 차단구조의 하자 판정기준이 미비했던 탓에 입주자가 층간소음 관련 하자보수를 청구하기 쉽지 않았다.
이번에 하자 판정기준을 명확히 해서 하자보수 청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바닥구조 하자 조사를 위해 슬래브(윗집 바닥 겸 아랫집 천장인 콘크리트 마감재)를 뚫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은 물론, 하자보수 비용과 손해배상의 세부 기준도 담을 계획이다.
둘째, 층간소음 갈등 전문 심리상담사 방문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소음측정 온라인예약시스템을 도입한다. 현재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서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층간소음 갈등 관련 전문 심리상담사 방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것들이 과연 현재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대책이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 문제➊ 면죄부 논란 = 우선 바닥구조 하자 판정기준 신설은 입주자의 하자보수 청구를 수월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건설사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장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왜일까.
'바닥구조 하자 판정기준'은 지난 6월 국토교통부가 행정예고한 '공동주택 하자의 조사, 보수비용 산정 및 하자판정기준 개정안'에 잘 나타나 있다. 개정안에 담긴 '바닥구조의 시공하자'는 세가지다.
바닥구조 구성층의 두께가 설계도서에 표시된 두께보다 부족한 경우, 측면 완충재가 누락되거나 설치 위치가 설계도서와 상이한 경우, 바닥구조를 구성하는 재료의 품질이 설계도서의 성능기준보다 부족한 경우다.
찬찬히 살펴보면 건설사가 당초의 설계도서에 표시된 대로 시공을 했느냐를 따지는 내용이다. 바꿔 말하면 설계도서대로 시공했다면 층간소음이 있어도 하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원래 층간소음의 하자는 데시벨(dB)로 따진다. 바닥면을 정해진 도구(현재 임팩트볼)로 쳐서 기준치(49㏈)를 넘으면 안 된다. 지난해 12월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앞으로 짓는 3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은 정부가 정한 층간소음 기준(49dB 이하)을 충족하지 못하면 준공을 불허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던 것도 그래서다.
특히 원 전 장관은 "소음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보완 시공을 의무화하고, 준공을 못 받아서 입주가 지연되면 시공사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만들겠다"고도 했다. 층간소음에 있어 하자란 '설계도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층간소음 기준을 못 맞추는 것'이라는 방증이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구조 하자 판정기준'을 만들어 층간소음의 하자 판정기준으로 삼겠다는 건 층간소음 기준을 근거로 하자를 주장하는 소비자들에게 건설사가 '설계도서대로 시공했으니 하자가 아니다'고 반박할 여지를 주는 거나 다름없다. 더구나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층간소음 하자보수 청구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마저 있다.
강규수 소음진동피해예방시민모임 대표는 "정부가 건설사들을 위해 층간소음 측정방법까지 완화(2020년 뱅머신을 임팩트볼로 교체)했는데도 여전히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이젠 하자 판정기준까지 바꿔주겠다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원 전 국토부 장관이 공언했던 걸 그대로 추진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 문제➋ 심리상담 논란 = 층간소음 갈등 전문 심리상담사의 방문서비스 확대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전문 심리상담사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중요한 건 전문 심리상담사를 통해 층간소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층간소음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거다. 이를 위한 시스템도 없지 않다. 층간소음 피해자는 환경부로부터 허가받은 측정업체를 통해 층간소음을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층간소음 분쟁조정위원회에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분쟁조정위는 심리를 통해서 층간소음 유발자에게 배상을 판결할 수도 있다. 실질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분쟁조정위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 7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환경부와 국토부가 운영하는 층간소음 분쟁조정위의 연평균 조정신청 건수는 환경부 2건, 국토부 20건에 불과했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되는 층간소음 민원만 해도 연간 3만~4만건에 달하는데, 실제 분쟁 조정은 극히 일부란 얘기다.
더구나 층간소음 분쟁 조정신청을 통해 문제가 해결됐는지도 알 수 없다. 사후 모니터링을 통한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다.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건데, 이유가 뭘까. 사례를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경기도의 한 아파트 입주민 A씨는 층간소음을 참지 못해 전문 측정업체에 측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를 지역 환경분쟁조정위(지역위)에 제출했다. 이를 근거로 결국 배상 판결도 받아냈다.
하지만 윗집은 결과에 불복했고, 사안은 중앙 환경분쟁조정위(중앙위)로 이관됐다. 이런 경우, 중앙위는 지역위가 제대로 판결을 했는지만 따지면 그만이다. 고등법원이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지방법원 판결에 흠결이 없는지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중앙위는 지역위가 진행한 조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거였다.
심지어 층간소음 측정 기준에도 없는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전문업체의 층간소음 측정 결과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결국 중앙위는 지난 7월 A씨의 재정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층간소음 재정 신청 자체를 없도록 하는 게 중앙위의 역할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과적으로 중앙위가 재정 신청을 기각하고 있어서 조정신청 건수도 터무니없이 적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층간소음 갈등 전문 심리상담사의 방문서비스 확대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강규수 대표는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를 해소하고 싶다면 자꾸 이상한 장치들을 보탤 게 아니라 현행 시스템이 상식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게 훨씬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