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의 ‘인질극 정치’에서 벗어나는 두 가지 길 [쓴소리 곧은 소리]
(시사저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우려했던 대로 극한 정쟁으로 가고 있다. 온통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을 둘러싼 정쟁이다. 여야 태도를 보면 정책·민생 국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야당은 '김건희 심판 국감'에, 여당은 '이 대표 사법 방탄 심판 국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야당은 "윤 정권의 총체적 무능과 무대책, 김건희 국정농단 의혹의 실체를 파헤쳐서 그 책임을 묻겠다"며 '끝장국감'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 재발의를 준비하는 동시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설특검도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여당은 "끝장을 봐야 할 것은 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정쟁몰이고 이재명 방탄 국감, 이재명 사법 리스크 물타기"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김 여사 의혹 관련 증인만 69명을 채택했고 국회 법사위도 증인을 40명이나 부른다. 당내에 '김건희 가족 비리 및 국정농단 규명 심판본부'까지 만들었다. 여당도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의 1심 선고를 앞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집중 부각하며 맞불을 놓을 셈이다.
'이재명 방탄' vs '윤석열 탄핵' 구도에 갇힌 국감
민생과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우리 정치가 어쩌다 권력 장악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의 저질정치로 추락했는지 참담하다. 민생·경제·안보·의료 등 다방면의 현안이 즐비하고, 인구 소멸·기후 위기 등 국가적 과제도 산적한데 국감이 '이재명 방탄 대 윤석열 탄핵'이라는 정쟁 구도에 갇혀 있으니 답답하다.
한국 정치가 '윤석열 대 이재명'의 정쟁을 위해 이 대표의 부도덕을 김 여사의 부도덕으로 덮고 물타기하는 무한정쟁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국회와 민생이 이들의 권력욕과 정쟁을 위한 인질극에 붙잡혀 있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이다.
두 사람의 '인질극 정치'로 인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민생과 공공성이 볼모로 붙잡혀 퇴행하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지금 양당이 펼치고 있는 정쟁의 정치는 36년 전 벌어진 '1988년 지강헌 인질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88년 10월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 중 지강헌 등 12명의 탈주범이 서울 시내에 잠입했다. 이들은 흉악범이 아니라 잡범이었는데,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 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탈출했다. 지강헌 등 4명은 당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고모씨 집에 잠입해 고씨 가족을 인질로 잡았다. 경찰병력 1000여 명과 대치하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다음 날 지강헌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2명은 자살, 1명은 생포됐다. 지강헌은 죽기 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지강헌은 560만원을 훔친 혐의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등 17년 옥살이를 하는 반면 76억원을 횡령한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는 징역 7년형에 그친 사실(전경환씨는 3년 후인 1991년 가석방)에 격분해 그 말을 내뱉었다. 당시 그 말은 사회적 파문과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다.
당시 혹자들은 지강헌의 외침을 듣고 그를 '의적'과 '대도'로 부르며 동정론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강헌의 말에 공감한다고 해서 이 사건의 본질을 흐려서는 곤란하다. 지강헌이 탈주범이고 그의 인질극으로 14시간 동안 공포와 위협에 떨면서 고통을 받았던 고씨 가족의 민생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영부인 리스크를 둘러싼 여야 정쟁이 지난 2~3년의 한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사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비판 여론이 팽배해도 염치도, 책임의식도 없다. 갈수록 태산이다. 국감이 두 리스크 관련 정쟁으로 블랙홀에 빠지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이 대표는 왜 이토록 대통령 탄핵에 집착하는 것일까? 자신의 정치생명을 끊어 놓을 수 있는 두 건의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 두렵기 때문일 게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그의 리더십은 크게 손상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방탄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대표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탄핵 선공 전략'을 쓰는 것이다.
대통령을 조기 퇴진시키면, 즉 이 대표의 재판이 끝나기 전에 다시 대선을 치르게 되면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대표가 검·판사 탄핵을 시도하는 것이나 재판 지연 전술을 구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계엄설을 제기하는 것도 탄핵 행동 시 진압하는 공권력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다.
여권은 영부인 리스크가 대통령 탄핵의 명분이 되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영부인의 국정 개입 의혹이 끊이지 않는데 대통령의 특검 거부가 반복되면서 탄핵의 명분으로 가고 있다. 개선되지 않는 수직적 당정 관계로 인한 영부인 리스크 관리 부족이 당정 갈등과 대통령 탄핵에 휘발유가 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 책임이다. 민주당과 국회가 '이 대표 사법 리스크 방탄용 인질극'에 볼모로 잡혀 국민의 대표직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이 대표 책임이다.
尹·李 인질극 정치에 '국민 분노' 폭발할 지경
두 사람의 '인질극 정치'가 대한민국 민생을 볼모로 잡고 공멸의 길로 가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과 국회 제1당이라는 본연의 역할마저 내팽개치며 무책임한 '민생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이것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이 대표의 방탄놀음과 대권놀음을 위해 국민의 대표를 볼모로 잡는 반헌법적 인질극을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인질극에 따른 국민의 피로감이 국민 분노로 폭발할 지경이다.
지금 한국 법치주의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직면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결자해지의 책임으로 냉철하게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국헌 문란의 인질극으로부터 거대 양당을 놓아줘야 한다.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휴전을 선언하고 '인질극 정치'에서 탈출하도록 '투 포인트 입법협정'을 맺는 정치 결단이 요구된다. '대통령 배우자법'과 '대통령·국회의원 국민소환법'의 입법이 그것이다.
전자는 '대통령 배우자의 공적 역할에 대한 법적 근거와 지원조직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영부인이 명품백을 받아도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정청탁금지법에서 제외된 것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영부인이 사실상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법적 지원 없이 법의 통제 밖에 두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법치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후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탄핵에 대한 판단 주체를 국민에게 직접 넘기자는 취지다. 이 대표가 "일을 못하면 도중이라도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과 의원이 국민과 공화국을 대표하지 않고 강성 지지층을 대변하면서 민의를 배신하고 직무유기를 하거나 직권남용을 할 때, 국민이 대통령·의원을 직접 소환해 파면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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