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반송된 원고가 세계 명작, ‘제인 오스틴’ 250주년

올해로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삶에서 길어 올린 섬세한 관찰력으로 빚어낸 그의 문장들은 [엠마]의 매치메이킹처럼 독자와 시대를 연결하는 교두보다. 시대를 초월하며 이어져 온, 인간 제인 오스틴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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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밑거름

천재는 우연히 태어나지 않는다. 1775년 12월 16일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성공회 목사였던 아버지 조지 오스틴의 지지 속에 성장했다.
그는 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일찍이 ‘작가'라 부르며 응원했다. 집안 곳곳에는 철학, 문학, 종교학 서적으로 가득해 어린 제인에게 풍부한 지적 자양분이 됐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비싼 종이와 글쓰기 재료를 아낌없이 마련해주었다. 제인만의 책상을 선물하고 직접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아버지의 사랑과 지지는 제인 오스틴의 문학적 재능에 단단한 기반이 됐다.

문학의 꽃봉오리가 맺히다
천재 문학도의 출현

1786년, 열한 살 제인 오스틴의 습작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꽃을 피웠다. 열네 살에 완성한 [사랑과 우정]은 18세기 후반 영문학의 감상주의를 통렬히 풍자했다. 당시 성적 긴장 상황에서 여성의 “기절” 장면이 소설 속 클리셰로 자리잡았는데, "미치고 싶은 만큼 미쳐도 좋지만, 절대 기절하지 말라!"라는 유명한 구절은 이러한 장면을 비판하며 당대 문학 트렌드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드러냈다.

스무 살이 되던 1796년, 오스틴은 그의 대표작이 될 [첫인상](후의 [오만과 편견])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이듬해 아버지가 유명 출판업자 토마스 카델에게 작품 출판을 제안했으나 "즉시 반송"이라는 냉담한 메모로 돌아왔다. 출판을 향한 멀고도 험한 첫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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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를 견디는 잎새가 되다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현실

1801년 1월, 아버지 조지 오스틴이 ‘스티븐턴’의 목회직을 은퇴하면서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바스로 이주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창작 활동에 한파를 불러왔다. 당시 그는 형제들에게 의지할 뿐 독립적 수입원이 없었다. 생활고에 밀려 창작 의지는 서서히 말라갔다. 27세에 오스틴은 부유한 지주 상속자 해리스 비그-위더(Harris Bigg-Wither)의 청혼을 수락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기도 했다. 재정적 안정과 문학적 꿈 사이에서 고민 끝에 결국 후자를 선택한 것.

1805년 1월 아버지 조지 오스틴이 사망하자, 그의 창작 의지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덕망 있고 행복한 삶을 마치셨다”라고 말하며 위안을 삼았지만 그 후 4년간 그의 펜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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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털어내고 꽃을 피우다
작가로서의 첫걸음

1809년 7월 ‘초턴 코티지로’의 이사는 그의 문학 인생에 전환점이었다. 5년 간의 불안정했던 삶을 뒤로하고 찾은 안식처에서 "우리의 초턴 집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라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안정된 환경은 오스틴의 창작 의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매일 아침 피아노 연습 후 글쓰기에 몰두하는 일상이 자리 잡았고 그 결실은 곧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811년, 36세의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며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여성 작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피하기 위한 익명 출판이었다. 2년 후인 1813년 1월에는 [오만과 편견]이 세상에 나오며 오랜 겨울을 견뎌낸 문학의 꽃봉오리가 마침내 피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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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지 않을 향기를 남기다
한 편의 시 같은 삶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해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에 가까웠다. 1817년 1월,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소설 [샌디턴]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병약함에 대한 자기 비판적인 풍자였고, 12장만 완성한 채 미완으로 남았다. 죽음을 앞둔 오스틴은 지인에게 "내가 쓴 한 마디 한 마디가 이별의 인사이자 영혼에 대한 인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3일 전, 영국의 우중충한 날씨에 대한 코믹한 시를 짓기도 했다. 한 편의 짧은 시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셈이다.

1817년 7월 18일, 41세의 나이로 윈체스터에서 눈을 감은 제인 오스틴은 생전에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다. “제인 오스틴”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진 것은 사후 [설득]과 [노생거 수도원]이 출간된 이후였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5년
에디터 김진우(tmdrns1111@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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