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개·고양이 잡아먹어" 트럼프는 왜 루머를 믿었을까

박상현 오터레터(OTTER LETTER) 발행인 2024. 9. 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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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미국 대선과 미디어]

[미디어오늘 박상현 오터레터(OTTER LETTER) 발행인]

▲ 9월10일(미국 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간 TV 토론 갈무리.

지난주에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와 카멀라 해리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회는 해리스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토론회에서 공식적인 승패를 가르지는 않지만, 토론회 이후 나온 여론 조사는 일제히 해리스가 더 잘했다는 평가가 60%를 넘었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해리스가 자기에게 불리한, 혹은 난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트럼프가 쉽게 흥분하는 민감한 이야기를 미끼처럼 던져 놓는 전술이었다.

해리스는 가령 불법 이민자 문제처럼 현 정권에 불리한 질문에 답을 하면서 트럼프 선거유세에 찾아온 청중이 지루해서 일찍 자리를 뜬다거나, 트럼프가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돈으로 쉽게 사업을 일으켰음에도 무려 6번이나 파산 신청을 했다는 이야기를 슬쩍 집어 넣었다. 트럼프는 그런 말에 쉽게 분노해서 해리스를 공격해야 하는 찬스를 놓친 채 자기를 방어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더 중요한 건 화가 난 트럼프가 전 국민이 지켜보는 토론회에서 하면 안 될 극단적인 이야기-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는 아이티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이 주민들이 키우는 개, 고양이같은 애완동물을 잡아 먹고 있다”는 말이었다. 사회자는 트럼프가 그런 주장을 하는 즉시 “스프링필드의 관계 당국에 문의한 결과, 그건 근거 없는 허위 정보로 밝혀졌다”고 팩트체크를 했고 트럼프의 발언은 온라인에서 밈이 되고, 조롱감이 되었다.

▲ 9월13일 연합뉴스TV '

하지만 더 흥미로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팩트체크를 한 언론이 틀렸다”면서, “그 도시의 담당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숨겼을 것”이라는 트럼프와 그의 러닝메이트 J.D. 밴스의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증거로 어떤 흑인 여성이 주택가에서 피묻은 고양이 사체 앞에 앉아 있는 영상을 제시했다. 그 영상 자체는 조작이 아니었다. 경찰은 “어떤 여성이 고양이를 죽여서 먹고 있다”는 주민의 제보로 현장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피묻은 고양이를 들고 있는 여성을 촬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일까?

일단 흑인 여성이 고양이를 죽여서 먹고 있다는 신고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영상이 촬영된 건 트럼프의 주장처럼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가 아니라, 같은 주의 다른 도시 캔튼이었다. 무엇보다 이 여성은 아이티 이민자가 아니라 캔튼의 주민, 즉 미국인이었다. 경찰은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 중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허위 정보가 설득력을 얻는 아주 전형적인 과정을 볼 수 있다. 일단 자기가 믿고 싶은 사실대개는 분노를 유발하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들으면 디테일은 무시하고 일단 신뢰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아이티 이민자이고, 누가 처음으로 그런 말을 지어 냈을까? NBC 뉴스의 취재에 따르면 스프링필드에 사는 주민 에리카 리라는 이름의 여성은 자기 “친구가 아는 사람”의 고양이가 아이티 이민자에게 잡혀 먹었다는 얘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걸 본 사람들이 이를 확산시켰고, 그렇게 퍼진 이야기를 트럼프가 듣고 전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서 해버린 것.

▲ 트루스 소셜(Truth Social). 사진=pixabay

우리는 여기에서 현대 미디어의 심각한 문제들을 볼 수 있다. 우선 트럼프가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는 'X'(옛 트위터)와 자기가 설립한 '트루스 소셜(Truth Social)' 두 가지인데, 후자의 경우 애초부터 극우의 소셜미디어로 탄생했고, X의 경우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후로 많은 사용자가 떠나고 현재는 극우들의 주장과 허위 정보가 아무런 제재없이 확산되는 장소가 되었다. 다른 소셜미디어라면 “아이티 이민자가 고양이를 잡아 먹었다” 같은 황당한 주장이 퍼질 경우 검증되고 삭제됐겠지만, 트럼프가 이용하는 두 플랫폼에서는 그럴 장치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 후보조차 가짜뉴스를 믿게 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허위 정보가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민자가 고양이를 먹었다는 신고가 없었다”고 말한 스프링필드 공무원들이 거짓말을 했다며 분노하고 있고, 시장은 “스프링필드가 폭탄 테러 위협을 받고 있다”며 자제를 호소했다. 온라인에서 확산된 근거 없는 루머가 개발도상국가에서 인종 폭동으로 이어지고 사상자를 낳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이 보여준 것은 미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 왜 하필 오하이오주의 스프링필드일까? 실제로 지난 몇 년 사이에 그 도시에 아이티에서 온 이민자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스프링필드는 물가가 싸고 일거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도시이고, 원래 새로 도착하는 이민자들은 아는 사람이 정착한 곳으로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난 몇 년 사이에 1만 명이 훌쩍 넘은 아이티의 이민자가 작은 도시에 몰려들었다. 인구 6만이 채 안 되는 도시에서 학교, 주택, 의료 서비스 차원에서 수용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런데 트럼프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이를 선거에서 표를 얻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없었던 새로운 문제까지 얹어 버린 것이다.

▲ SBS뉴스 '

20세기 사회학에서는 근거 없는 루머가 퍼지는 환경으로 '정보의 통제'를 꼽았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군부의 정보 통제로 인해 온갖 흉흉한 소문이 사실과 구분없이 퍼졌던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은 다르다. '이민자가 고양이를 잡아 먹는다'는 소문에 대한 팩트체크는 이미 이뤄졌고, 키보드만 좀 두드리면 금방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보다는 자기의 분노 게이지를 높여 준 루머를 계속 믿는 쪽을 선호한다. 왜일까?

마크 트웨인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 중에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그들이 속았음을 깨우쳐 주는 것보다 쉽다”는 게 있다. 자기가 속았다는-자존심 상하는-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냥 허위 정보를 믿는 쪽을 택하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다. 트럼프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이를 활용하고 있고, 소셜미디어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물론 트럼프 본인도 허위 정보에 속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이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며, 언제든지 속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높은 지능과 자존감을 가졌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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