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짠물' 습지 다 있으니 안 걸어보곤 못 배기지
지난해 5월 경남도는 습지보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남해군 남해읍 입현리 406-7번지 일대 입현매립지를 새롭게 경남도 대표 우수습지로 지정했다. 도 대표 우수습지는 2019년부터 습지보전법에 따른 습지보호지역이 아닌 습지 중 생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곳을 대상으로 지정되고 있다.
입현매립지는 바다가 육지 쪽으로 깊이 들어온 만 지형에 제방을 쌓아 만든 간척지 습지로 면적은 64만 6864㎡다. 내륙습지와 연안습지가 모두 형성돼 육상과 해양 환경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특히 갈대가 많아 다양한 생물에게 안정적인 서식과 은신처를 제공한다.
◇다양한 이름을 지닌 습지 산책로 = 현재 입현매립지와 관련해 다양한 걷는 길 명칭이 있다. 먼저 국가생태탐방로 55선 중 남해바닷길이다. 국가생태탐방로는 자연경관을 국민들이 쉽게 접하고 걷게 하도록 2008년부터 환경부에서 지정하고 있다. 남해바닷길은 남해읍을 중심으로 나래숲길, 힐링숲길, 에코파크길, 강진만길 4코스로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입현매립지는 에코파크길에 속한다. 선소리 해안도로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는 선소리조망대에서 시작해 입현매립지 습지를 한 바퀴 돌고 쇠섬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남해바래길 1코스 '바래오시다길'도 이곳을 지난다. 바래는 남해 아낙들이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가 파래나 미역을 뜯고, 조개를 캐는 일을 말한다. 바래길은 이렇게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남해를 한 바퀴 도는 걷는 길로 전체 16개 코스가 있다. 1코스는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시작해서 읍 도심을 지나 해안으로 빠져나간 다음 이동면행정복지센터까지 이어진 코스다. 남해유배문학관을 지나면 나오는 습지생태탐방로 부분이 바로 입현매립지다. 남해군생태관광협회가 지정한 봉천산책길도 입현매립지 지역에 속한다. 선소리전망대에서 시작해 입현 습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남해군수와 생태관광협의회장 명의로 된 길 이용안내판을 보면 자전거와 걷는 길 전용도로라 적혀 있다.
길 이름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입현매립지의 매력을 담으며 이어져 있다. 이렇게 입현매립지 주변 습지는 시원하게 흐르는 봉천, 직선으로 길게 뻗은 산책로, 물이 들어찬 습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먹이를 구하는 새들, 해안도로 시원한 가로수 그늘 등을 즐기며 천천히 거닐기 좋은 곳이다. 실제로 걷다 보니 운동 삼아 산책하는 주민이나 체험학습 온 초등학생들이 제법 보였다.
◇매립지에서 생태 습지로 = 입현매립지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 아니었다. 15년 전만 해도 남해군은 이 지역을 종합 스포츠·휴양 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근처 마을에서 배출되는 폐수가 그대로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하수종말처리장이 생기고 갈대가 빽빽하게 자라 물을 정화하고 있다. 이제는 남해군도 개발보다는 생태보전으로 방향을 바꿨다. 군은 입현매립지를 도 대표 우수습지로 정받고자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에 생태계 조사를 의뢰했다. 2022년 10월 '입현매립지 생태계 조사용역 최종보고회'에서 람사르재단은 입현매립지를 두고 "육상과 해상환경의 전이대로 독특한 습지생태계를 형성한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로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평했다. 재단은 1918년 고지도와 1948년 항공영상을 살펴보며 지금 입현방조제가 생기기 이전 봉천교 주변 도로를 경계로 제방도로가 건설되며 간척이 되었고, 현재 남해군 상설재활용센터와 상하수도사업소가 있는 지역과 봉천을 경계로 맞은편에 있는 농경지는 입현매립지 이전에 간척된 지역임을 확인했다. 제방 축조 이전 이곳은 하천이 공급하는 퇴적물과 바닷물의 영향으로 연안습지인 갯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람사르재단은 조사를 통해 다양한 생물이 입현매립지 습지를 터전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했다. 갈대군락을 중심으로 8개의 큰 식물군락이 조사됐다. 또, 습지 면적이 비교적 넓고 해안과 가깝기에 겨울에는 오리류를 포함한 다양한 겨울 철새들이 월동지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름에도 주변 지역에서 번식을 마친 백로류 이 일대 습지에서 먹이를 구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이를 통해 재단은 입현매립지 주변이 조류 월동이나 번식지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람사르재단은 입현매립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검은머리물떼새 1종을 확인했다.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류인데, 실제 관찰되는 일이 드문 새라고 한다. 이 외에도 지역 주민과 시민 연구자들은 세계적으로 3000마리 정도가 남아 있다는 황새를 포함해 천연기념물 큰고니와 노랑부리저어새, 잿빛개구리매 등 최소 8종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확인한 것으로 재단은 기록했다. 재단이 2022년 3월부터 8월까지 무인 카메라를 설치해 관찰한 결과 멸종위기 포유류도 여럿 보였다. 우선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 가족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을 포함해 고라니, 너구리 등 4종이었다. 수달은 행동반경이 15㎞(암컷 7㎞) 내외로, 강진만의 해안선을 따라 넓은 지역을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였다. 삵 역시 넓은 행동반경을 지녔는데, 입현매립지를 비롯해 주변 농경지와 산림을 오가며 생활하고, 입현매립지를 은신처와 먹이터로 이용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조사를 통해 람사르재단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이자 생태계 먹이사슬 최상에 있는 수달과 삵의 실체가 확인됐고, 수달은 가족 단위로 관찰된 것으로 보아 입현매립지는 이들의 은신처 및 먹이터를 제공하는 생활공간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번식지로도 이용될 수 있는 중요한 생태 공간으로 판단된다"고 결론지었다.
◇남해읍 둘러보기 = 입현매립지는 남해읍에서 가깝기에 둘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타지에서 대중교통으로 온다면 먼저 읍을 둘러보고 입현매립지로 향해도 되고 반대로 해도 된다. 실제로 남해읍은 남해 여행의 시작과 끝이다. 특히 대중교통 여행자라면 더욱 그렇다. 자동차로 노량대교나 남해대교를 통해 남해로 왔다면 남해읍을 지나기 마련이다. 예전이라면 시골 읍에 뭐 볼 게 있느냐 싶었지만, 젊은 층의 귀촌이 늘어난 요즘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도심이 작긴 하지만 개성 있는 동네 카페에서 브랜드 카페까지, 동네 빵집에서 프랜차이즈 빵집, 그리고 수제 맥주 전문점도 있다. 남해전통시장에서는 특산물을 살 수도 있고, 싱싱한 회나 고소한 생선구이, 시원한 물메기탕을 먹을 수도 있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남해성당은 뜻밖에 가볼 만한 곳이고, 근처 남해향교도 둘러보면 좋다. 특히 남해군청이 참 예쁘다. 군청은 옛 동헌 자리에 그대로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나오는 큰 느티나무가 아직도 군청 뜰에 살아있는데, 군청 건물과 어우러져 그 운치가 꽤 좋다. 현재 신청사 공사를 위해 주변 정리를 하고 있지만, 큰 느티나무를 둘러보기에는 무리가 없다.
군청과 전통시장을 둘러봤다면 경남도립남해대학 근처에 있는 청년창업거리 '회나무 아랫길'로 가보자. 이곳은 남해군이 의욕적으로 꾸민 일종의 도시재생 지역으로 입구에 커다란 회화나무가 상징처럼 우뚝하다. 이 나무는 예로부터 길상목(吉祥木)이라 불리며 마을 수호신 노릇을 했다. 이 거리를 지나 남해 바래길을 따라가면 곧 유배문학관에 닿는다.
2010년 읍 외곽에 문을 연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문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놓은 국내 최초 전시관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배객들만 18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남해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건물 앞에 달구지를 타고 가는 유배자 조형물이 있고, 그 뒤로 서포 김만중(1637~1692)의 청동 좌상과 약천 남구만(1629~1711), 소재 이이명(1658~1722), 겸재 박성원(1697~1767) 등 문학비가 책처럼 펼쳐져 있다. 건물 안에는 향토역사실과 유배문학실, 유배체험실 그리고 남해 유배객 6명이 남긴 문학작품과 문학 혼을 만날 수 있는 남해유배문학실이 있다.
/이서후 기자
* 습지 보전 인식 증진 및 생태관광지 추가 발굴을 위해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경남도민일보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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