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100년 이어진 동물실험의 성차별, 과학적 근거 없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3. 3.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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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 요동친다고 실험에서 암컷 배제
하버드대 연구 “암컷 행동이 더 안정”
수컷동물로 치료제 시험해 여성 부작용 커
”행동 연구는 암컷 택해야 더 과학적”
과학자들은 그동안 동물실험에서 주로 수컷 쥐를 사용했다. 암컷 쥐는 발정주기에 따라 성호르몬에 요동쳐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이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증거를 찾았다./Adobe Stock

실험실에도 성차별이 있다. 생명 원리를 찾고 신약을 개발할 때 사람 대신 실험하는 생쥐는 항상 수컷이다. 암컷은 발정주기에 따라 호르몬이 요동쳐 제대로 된 실험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00년 동안 실험실을 지배해온 이런 성차별이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신경생물학자인 산딥 로버트 다타(Sandeep Robert Datta) 교수 연구진은 “새로운 공간을 탐색하는 실험에서 암컷 생쥐의 행동은 호르몬 수치와 상관없이 수컷보다 더 안정적이었다”고 지난 7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동물실험을 하려면 오히려 암컷을 살피는 편이 낫다는 의미이다. 논문 공동 저자인 노스이스턴대의 레베카 샨스키(Rebecca Shansky) 교수는 “이번 연구는 뇌에 미치는 호르몬의 영향과 성 차이에 대한 기존 생각을 뒤집었다”고 밝혔다.

◇암컷 행동과 성호르몬 수치는 관계없어

연구진은 암수 생쥐의 행동이 성호르몬에 좌우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같은 계통의 생쥐를 암수 각각 16마리씩 골라 큰 양동이에 넣고 탐색 행동을 분석했다. 실험은 한 번에 20분씩 15일간 진행했다. 생쥐들의 성호르몬 수치도 측정했다.

연구진은 카메라로 생쥐의 행동을 촬영해 컴퓨터에 입력했다. 인공지능은 생쥐가 일어서거나 멈추고, 걷거나 방향을 트는 동작을 0.3초 단위로 분석해 행동이 안정적인지, 아니면 종잡을 수 없는지 알아냈다. 지금까지 생각과 달리 암컷의 행동은 성호로몬 수치와 별 관련이 없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개체마다 행동 차이는 수컷보다 적었다. 암컷이 연구에 더 일관된 정보를 준다는 말이다.

오히려 수컷의 호르몬 차이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암컷보다 더 크다. 실제로 우두머리 수컷은 다른 수컷보다 성호르몬이 10배나 많이 나온다. 다타 교수는 “100년 동안 거꾸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탐색 행동을 연구한다면 암수 동물을 모두 실험해야 한다”며 “굳이 한쪽만 고른다면 암컷을 택하는 것이 과학적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수컷 쥐로만 실험을 했다. 이 결과는 암컷 쥐는 물론, 여성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미 노스이스턴대

◇성차별 실험으로 여성에 부작용 집중

그동안 실험실에서 수컷 생쥐만 바라본 대가는 컸다.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동물실험을 수컷만 하다 보니 암컷에 대한 약효는 알 수 없었다. 이는 여성 환자의 약물 부작용이 남성보다 두 배나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임상시험에서도 여성이 배제돼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남성에게만 듣는 약을 개발해온 것이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1993년 이후 임상시험에서 여성과 소수인종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실험동물의 성차별은 그보다 오래 갔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신경과학 논문 중 수컷 실험동물을 사용한 경우가 암컷보다 5배나 많았다. NIH는 2016년에야 정부 연구비를 받으려면 암수 동물을 모두 실험하도록 했다.

하지만 변화는 더뎠다. 여전히 과학자들은 암컷 동물로 실험을 하면 호로몬 주기를 따져야 해 데이터 처리가 더 복잡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반쪽 지식만 가지고 연구를 했다. 과학자들은 60년 넘게 쥐를 놀라게 하면 몸이 얼어붙는다고 배웠지만, 이는 수컷에게만 해당한다. 암컷은 오히려 밖으로 나가려고 우리 창살로 돌진한다.

성차별 실험은 연구실을 넘어 의료 현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노스이스턴대의 샨스키 교수는 앞서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평 논문들에서 “여성이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신경질환을 두 배나 많이 겪지만, 호르몬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컷동물로만 실험했다”며 “이런 연구 결과로 사람을 치료하면 여성은 듣지 않을 수 있어 공중보건에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는 성별 특성을 고려한 과학연구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과학연구에 성별 특성 반영하는 데 기여”

국내 연구자들도 이번 결과가 과학연구에서 성별 특성을 반영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혜숙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소장은 “이번 논문으로 적어도 행동 양식과 관련된 실험연구에서 수컷동물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이제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며 “학술지의 편집 정책과 글로벌 연구 조류를 감안할 때 연구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성별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이 센터의 김혜진 박사도 “암컷 쥐의 행동들이 호르몬 주기와 일치하지 않으며, 쥐들의 행동이 개체마다 다르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며 “행동 실험에 수컷 쥐만 사용했던 기존 관습이 잘못됐음을 명확히 밝힌 증거”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도 한계는 있다. 한 계통의 생쥐만 실험했기 때문에 다른 생쥐에도 적용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앞으로 생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밝혀야 하는 과제도 남았다. 디타 교수 연구진은 “생쥐 행동의 개체 차이를 신경 단위에서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국내 당뇨병 환자 11만50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약물 부작용. 여성(붉은색)이 남성(파란색)보다 크게 표시되면 부작용이 큰 것이다. 여성이 신체 대부분에서 약물 부작용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성균관대 약대 신주영 교수가 2020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자료이다./Scientific Reports

참고자료

Current Biology, DOI: https://doi.org/10.1016/j.cub.2023.02.035

Nature Neuroscience, DOI: https://doi.org/10.1038/s41593-021-00806-8

Science,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w7570

Scientific Reports,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0-7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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