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여, 그대는 행복한 시지프스이니라!

방민준 2025. 11. 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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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사진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시지프스(Sisyphus)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화에 따르면 시지프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들의 눈에는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하며 특히 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점 때문에 눈 밖에 난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천부의 도둑질을 타고난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태어난 바로 그날 저녁 강보를 빠져나가 이복형인 아폴론의 소를 훔친 뒤 강보에 들어가 천진난만한 아기처럼 시치미를 뗐으나 이를 알아챈 시지프스가 아폴론에게 고자질하고 아폴론은 이를 다시 신들의 왕인 제우스에게 알렸다. 시지프스는 인간이 감히 신들의 일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헤르메스는 물론 제우스의 눈총까지 받았다.



 



이런 차에 시지프스가 결정적으로 괘씸죄를 저지른다. 어느 날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하는 현장을 목격한 시지프스는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신(降神) 아소포스를 찾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면 딸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시지프스는 코린토스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물이 귀해 백성들이 몹시 고생하고 있었다. 시지프스는 아소포스에게 코린토스에 마르지 않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딸을 찾는 게 급했던 아소포스는 시지프스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고 시지프스는 그에게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납치해 간 섬을 가르쳐 주어 구출되도록 했다.



 



자신의 비행을 엿보고 고자질한 자가 시지프스임을 안 제우스는 저승 신 타나토스(죽음)에게 당장 시지프스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보복을 예상한 시지프스는 타나토스가 나타나자 쇠사슬로 묶어 감옥에 가두었다. 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묶여 있으니 당연히 죽는 사람이 없어졌고 명계(冥界)의 왕인 하데스는 이 황당한 사실을 제우스에게 고해 제우스는 전쟁신 아레스를 보내 타나토스를 구출하게 했다.



 



시지프스는 잔인한 아레스에게 맞섰다간 온 코린토스가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알고 순순히 항복했다. 타나토스의 손에 끌려가면서 꾀를 낸 시지프스는 아내 멜로페에게 자신의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고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은밀히 일렀다.



 



저승에 당도한 시지프스는 하데스에게 읍소했다. "아내가 제 시신을 광장에 내다 버리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것은 죽은 자를 수습하여 저승에 이르게 하는 이제까지의 관습을 조롱한 것인즉 이는 곧 명계의 지배자이신 대왕을 능멸하는 것이니 제가 이승으로 다시 돌아가 아내를 벌한 뒤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사흘간 말미를 주소서."



 



시지프스의 꾀에 넘어간 하데스는 그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 주었다. 시지프스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데스가 몇 번이나 타나토스를 보내 으르고 경고했으나 그때마다 시지프스는 온갖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피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이길 수 없는 법, 마침내 시지프스도 타나토스에 끌려 명계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명계에서 그에게 주어진 형벌은 큰 바위를 높은 바위산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이었다. 시지프스가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로 그 순간 바위는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다.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하데스의 명령에 따라 시지프스는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다.



 



시지프스의 형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자가 바로 골퍼가 아닐까. 시지프스의 숙명은 골퍼들의 그것도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100타만 깨면 족하다고 소박한 기대를 한다. 그러나 100타를 깨고 나면 90대를 목표로 세우고 80대 타수를 꿈꾼다. 80대를 달성하는 순간 그의 꿈은 80대 이하 싱글 스코어로 대체된다.



 



이 정도 선에서나마 만족할 줄 안다면 골프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텐데 언더파를 넘어 나이와 같거나 더 낮은 에에지 슛(age shoot)를 꿈꾼다. 나이가 들면서 육신의 퇴행을 거스르려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골프에서 "이만하면 됐다!"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골퍼의 눈은 항상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아닌 다음 계단을 향하고 있다. 다음 계단 위에는 또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계단은 눈을 감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시지프스가 매일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던 그 바위는 골퍼가 평생 마음속에서 굴려 올리는 공과 같다. 손끝을 떠난 공은 날아가는 동안 잠시 희망의 모습이 되지만 땅에 떨어지는 순간 희망은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그 순간 골퍼는 묘한 미소를 짓고는 '그래, 다시 한번!'하고 바위에 다가선다. 



 



골프는 끝을 알면서도 다시 오르는 길이다. 아침 햇살에 젖은 페어웨이는 늘 처음 보는 풍경처럼 반짝이고, 바람은 그날만의 표정을 짓는다. 완벽한 샷을 꿈꾸지만 그 완벽은 언제나 반 발짝 앞에서 흔들린다. 그래서 골퍼들은 멈추지 못한다. 그 아득한 반 발짝이 골퍼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릴 때 느꼈을 그 숨결, 그 반복 속에서 발견했을 의미처럼 골퍼도 홀마다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오늘의 몸, 오늘의 생각, 오늘의 작은 흔들림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나'를 다시 빚어낸다. 골프에서 얻는 것은 스코어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비로소 마주한 자기 자신이다. 가벼운 후회, 조금의 성찰, 한 줌의 기쁨, 그 모든 감정이 바람처럼 오가며 골퍼들을 단단하게 만든다. 



 



시지프스가 끝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바위를 사랑하게 되었듯 골퍼도 언젠가 깨닫는다. 신기루 같은 완벽을 좇는 일이 헛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걸으며 마음이 빛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목표였다는 것을. 



 



그래서 골퍼들은 내일도 다시 클럽을 쥔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조용히 말한다.



"그래, 오늘도 바위를 굴려보자."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려 올리며 맞닥뜨린 끝없는 반복, 도달 직전의 붕괴, 희망과 좌절의 공존은 늘 골퍼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는 풍경이다. 골프는 언제나 조금만 더 하면 닿을 것 같은 신기루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래서 시지프스의 형벌은 골퍼에게 신화가 아니라 일상의 우화처럼 다가온다. 



 



골퍼는 늘 한 걸음 앞에서 사라지는 무언가를 좇는다. 한 번의 '완벽한 샷'을 기억한 순간부터 우리는 그 장면을 영원히 재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공은 순순히 길을 내 주지 않는다.



바람이 살짝 달라지고 몸의 작은 긴장 하나에도 중심이 흔들린다. 마음의 흔들림이 미세하게 일어나며 예상치 못한 궤적이 나타난다. 



 



그래서 골프의 목표는 언제나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 시지프스가 정상 직전에서 바위를 놓치는 순간과 닮았다.



 



시지프스는 바위를 산 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바위를 굴려 올렸다. 골퍼 역시 완성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멈추지 않는다. 연습장에서의  수천 수만 번의 스윙, 라운드 중 놓친 샷을 복기하는 마음, 다음 홀에서는 더 나아지리라 다짐하는 의지 등의 과정은 일종의 선 수행으로 승화한다.



 



그러므로 골프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를 깎아내는 일이다. 즉 끝이 없는 자기 정련(self-refinement)이다. 시지프스 신화의 핵심은 그가 바위를 올려놓는 데 성공했는가에 있지 않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시지프스를 행복한 인간으로 상상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목표의 달성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골퍼 역시 마찬가지다. 그날의 바람이 다르고 몸의 감각이 매일 바뀌고 마음이 다르다. 스코어는 오르내리고 퍼팅 하나에 희비가 갈린다.



 



우리가 골프에서 얻는 것은 '신기루 같은 완벽'을 향해 나아가며 얻는 자기 인식, 겸허, 그리고 작은 기쁨이다. 



완벽은 도달점이 아니라 무한히 우리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골프의 결과도 스코어보다 더 큰 것, 곧 곧 시지프스처럼 자신의 바위를 사랑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골퍼들은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늘 조금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다시 필드를 찾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목표는 우리가 미치도록 원하는 어떤 지점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시지프스의 신화는 골퍼에게 형벌이 아니라 골프가 지닌 존재론적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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