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X] '슈퍼 을' 엔비디아가 흔드는 현대차 로드맵

올해 현대차그룹 앞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X) 영역이 있습니다. X는 전통 제조사와 빅테크 간 전략적 결합이자 생존을 위해 선점해야 할 차세대 주권(NeXt)을 의미합니다. 글로벌 빅테크 및 완성차 기업들과 현대차의 역학관계를 조명합니다.

/사진= 구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그래픽입니다.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환을 선언한 현대자동차그룹이 엔비디아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전방위로 높이고 있다. 차량 컴퓨팅부터 자율주행, 로보틱스, 인공지능(AI) 학습 인프라까지 핵심 기술 영역 전반이 엔비디아 생태계 위에 구축되는 구조다.

30억달러 규모의 협력이 공식화되고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 도입이 예정된 가운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려는 선택이 중장기적으로 협상력 약화와 공급망 종속이라는 구조적 비용을 수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의 엔비디아 기술 종속이 추상적인 우려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결국 협상력 비대칭이라는 현실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차세대 블랙웰 GPU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공급을 크게 상회한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는 물론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한정된 물량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다. 이 같은 초과수요 환경에서는 개별 고객사의 가격 협상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만약 엔비디아가 칩 단가를 인상하거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체계를 조정할 경우 현대차의 대응 여지는 제한적이다. 드라이브 토르 플랫폼과 ccOS(커넥티드 카 운영체제) 아키텍처가 긴밀하게 연동된 상태에서 단기간에 대안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높은 기술 전환 비용이 가격 협상 국면에서 '인질'로 작용하는 구조다.

엔비디아 의존 구조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외생 변수와도 직결된다. 2025년 4월 미국 행정부는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설계한 H20 AI 반도체의 대중(對中) 수출에 라이선스 의무화를 통보했다. 엔비디아는 이 조치로 인해 해당 분기 최대 55억달러(약 7조9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반영할 것이라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했다.

이후 같은 해 7월 미중 무역 협상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H20 수출이 라이선스 승인 방식으로 재개됐지만 이 일련의 과정들은 AI 반도체가 언제든 강대국 간 지정학적 레버리지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AI 반도체가 전략 자산으로 분류돼 통제 대상이 확대돼 온 흐름을 감안하면 향후 규제 범위가 차량용 플랫폼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미중 관계가 재차 경색되거나 수출 통제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경우 엔비디아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의 중국 내 적용이 정책 변수에 노출될 여지도 있다.

이 지점은 현대차의 중국 전략과 교차한다. 현대차는 2025년 10월 중국 현지 전용 전기차 '일렉시오'를 출시하며 중국 시장 재건에 나섰다. 일렉시오는 인포테인먼트에 엔비디아 대신 퀄컴의 차량용 칩셋을 탑재했는데 이는 중국 내 규제 환경과 공급망 리스크를 고려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현대차의 중국 현지 전기차 '일렉시오'

현재 현대차의 중국 매출 비중은 약 4% 수준까지 낮아졌지만 중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중국 판매 비중을 8%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출시 차량에 적용 가능한 자율주행 플랫폼이 제약을 받을 경우 현대차는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구조적 열위에 놓일 수 있다. BYD, 샤오펑 등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화웨이, 바이두 등 자국 AI 플랫폼과 긴밀하게 연계해 기술 스택을 구축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급망 리스크도 한층 현실적이다. 블랙웰 GPU는 이미 대규모 설계 및 발열 문제로 출시 지연을 경험한 바 있다. 엔비디아의 칩 공급 우선순위가 하이퍼스케일러 데이터센터에 쏠리는 상황에서 완성차 업계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물량을 확보한다는 보장이 없다. 신차 출시 일정이 협력사의 공급 결정에 종속되는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이승조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달 열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시점에서 블랙웰 GPU 투입에 대한 명확한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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