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수십 점씩 팔린다' 매대 치우고 '그림' 거는 백화점

한전진 2022. 11. 3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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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매장마다 '아트 갤러리'
한 달에 100여 점씩 팔리는 '효자'
매장 소품 넘어 이젠 '새 먹거리'
미술 관람전이 열렸던 더현대 서울의 모습 / 사진=한전진 기자 noretreat@

백화점 업계가 미술 사업에 꽂혔다. 주요 매장마다 '아트 갤러리'를 늘리는 것은 물론, 전시 진행·유치도 적극적이다. 미술 사업 전담 부서 강화에도 나섰다. 이는 미술품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진 결과다. 과거 미술품은 매장 내 소품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미술품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늘면서 중요도가 훌쩍 커졌다. 업계는 미술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워나간다는 구상이다. 

걸었다 하면 팔린다

미술품의 가능성을 가정 먼저 알아본 곳은 신세계백화점이다. 작품 전시를 넘어서 2년 전 업계 최초로 직접 판매에 나섰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 3층에 '아트 스페이스'를 만들어 예술품 2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단순 판매뿐 아니라 집, 사무실 등 공간에 맞는 미술품 건설팅도 진행 중이다. 매달 100여 점의 작품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 백화점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올해 10월까지 아트 스페이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증가했다. 

명품과 함께 전시된 미술 작품 / 사진=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도 전국 주요 지점에 아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 본점과 잠실점, 인천터미널점 등을 포함해 총 6곳이다. 각 지점의 특색에 맞는 작품을 선별해 갤러리를 구성한다. 최근에는 미술 전공·전문가를 영입해 '아트콘텐츠실'까지 신설 후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롯데백화점 역시 지난해 1400여 점의 작품을 온·오프라인으로 선보였다. 이 가운데 200점 이상이 팔렸다. 

현대백화점은 연간 100회 이상의 전시 및 판매 행사를 열고 있다. 현재 더현대 서울, 무역센터점을 포함 전국 9개 점포에서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 더현대서울에서 아트페어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열흘간 3만 명이 넘는 고객이 방문했다. 160여 점의 작품 중 50여 점이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과거에는 미술품을 찾는 사람이 한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구매자가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연령층도 낮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예술품에 담긴 '속내'

백화점이 미술품 전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집객 효과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의 희소성 있는 작품을 갤러리에 전시하면 작품을 보기 위한 방문객이 늘어난다. 자연스럽게 고객을 매장에 묶어두는 효과도 있다.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용이하다. 문화사업 공헌 이미지도 강조할 수 있다. 백화점이 온라인 쇼핑의 강세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특히 미술품은 소득 수준이 높은 VIP 고객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 사실 백화점 매출의 상당 부분은 VIP에서 나온다. 다른 채널보다 VIP 의존도가 높다. 이 때문에 소수의 VIP 고객 이동에 따라 백화점의 영업 성적이 좌우되기도 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에서 VIP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약 32% 육박한다. 롯데백화점도 27%에 달한다. 미술품은 고소득층의 대표적인 관심 분야다. 미술에는 '객단가' 상승을 위한 전략도 담긴 셈이다.

특히 미술시장은 블루오션이다. 해마다 시장 규모가 급격히 성장 중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미술품의 수요가 늘고 있다.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5329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런 추세라면 하반기 미술시장 규모는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젠 '집객 전략'을 넘어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선택 아닌 필수인 까닭

백화점은 이미 미술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자리잡았다. 이전까지 유명 미술품의 전시는 몇몇 전시관과 화랑이 독점하는 형태였다. 전시 플랫폼이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백화점 업계는 이점을 파고들었다. 최근 백화점은 단순 전시를 넘어 판매 사업에 부쩍 힘을 주고 있다. 고가 예술품에 대한 경매는 물론 개인 간 온라인 거래를 진행하는 커머스 확대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업계의 미술 사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술 사업은 무엇보다 미래 소비자인 MZ세대의 관심이 높은 분야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미술장터인 '아트바젤'과 이를 후원하고 있는 금융기업 UBS가 발표한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시장의 '큰 손' 절반 이상은 2030세대다. 이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단으로 그림 등 미술을 택하고 있다. 재테크 열풍도 일고 있다. '아트테크'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들을 잡기 위해서라도 미술 사업은 이제 필수가 된 셈이다. 

신사업으로의 '매력'도 충분하다. 미술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이려면 '소싱' 능력이 필수다. 많은 자본도 필요하다. 백화점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른바 '아트 비즈니스'를 선보이기에 적합한 토양을 갖고 있다. 본업과의 시너지도 충분하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3월 회사 정관의 사업 목적에 '미술품 전시·판매·중개 임대업 관련 컨설팅업'을 추가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미술 사업을 본격적인 수익 사업으로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평가하고 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거치며 미술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미술품에 대한 투자 가치가 커진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층이 크게 증가했다. 업계는 이런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며 "백화점이 쇼핑 공간을 넘어 문화 예술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전진 (noretreat@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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