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몸, 먹튀의 새 홈구장…2년 전 경이로운 홈런을 쳤던 바로 그곳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SNS

2023년 4월의 추억

2년 전이다. 그러니까 2023년 4월 10일(이하 한국시간)이다. 개막 후 열흘쯤 지났다. 신부님들(파드리스)의 시즌 9번째 경기였다.

6-0으로 앞서던 5회였다. 1사 3루에서 어썸 킴(29)의 타석이다. 카운트는 2-2로 투수 편이다. 회심의 결정구가 들어온다. 예리한 스위퍼(122㎞)가 타자 몸쪽으로 크게 꺾인다.

아차. 마음 급한 배트가 쫓아 나간다. 결과는 뻔하다. 터무니없이 낮은 코스다. 공이 맞을 리 없다. 빈손(삼진)으로 돌아서겠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다. 가까스로 스윙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기어이 배트와 공이 만난다. 아니, 만난 정도가 아니다. 제대로 타이밍이 맞았다.

타구는 좌측으로 높이 뜬다. 일단 안심이다. ‘희생플라이는 충분하겠군.’ 그런 확신이 드는 포물선이다.

그런데 웬걸. 공이 떨어지지 않는다. 죽죽 뻗어가더니, 기어이 펜스 너머로 사라진다. 2점짜리 홈런으로 둔갑한 것이다. 8-0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한방이었다.

경기 후 난리가 났다. 미디어와 SNS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다. MLB.com의 사라 랭스가 기가 막힌 일이라며 뉴스를 전한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어썸 킴은 지면으로부터 0.82피트(약 25㎝) 높이의 공을 걷어 올려 이 타구를 만들어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는 숫자가 말해준다. 스탯캐스트가 활용된 것은 2015년부터다. 그 이후로 나온 홈런이 10만 개에 육박한다(연평균 5000~6000개). 오늘 그의 타구는 5번째로 낮은 투구를 공략해 얻어낸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일이었다.

당시 타격 장면 mlb.com

“그린 재킷을 입혀줘야 한다”

타격폼 자체도 경이롭다. 배트로 땅바닥을 훑는 것 같다. 우리 팬들은 ‘무릎 쏴’라고 불렀다. 혹은 골프를 연상한다. 마치 시원한 드라이버 샷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미국도 비슷하다. 파드리스는 구단 SNS에 이런 문구를 올렸다. “누가 이 친구에게 (골프 우승자의) 그린 재킷을 입혀 주세요.” 그러자 팬들도 뜨겁게 화답한다. 호응하는 댓글이 수백 개 달린다. 합성 사진도 등장한다.

‘그린 재킷’은 기가 막힌 위트다.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 우승자가 시상식에서 입는 옷이다. 마침 그날이 마스터스 마지막 날이었다. (당시 챔피언은 존 람이었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곳은 오거스타 GC다. 골퍼들에게는 꿈의 고장이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는 대회를 전후해서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젖는다.

단지 시기만 일치한 것이 아니다. ‘그린 재킷’을 떠올린 이유는 또 있다. 오거스타는 애틀랜타에서 멀지 않다. 자동차로 2시간 거리다. (같은 조지아주)

그리고 어썸 킴의 골프 홈런이 나온 곳은 트루이스트 파크였다. 바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마스터스 대회 최종일에, 조지아의 주도(州都) 애틀랜타에서, 멋진 골프 스윙으로 대단한 홈런을 때려냈다.

5구째 궤적 mlb.com

인생 최고의 시즌이 되다

그 홈런이 2023년 2호째였다. 그 해는 최고의 시즌이 됐다.

152게임에 출전했다. 타율 0.260, 출루율 0.351, 장타율 0.749를 기록했다. 안타 140개, 2루타 23개를 쳐냈다. 홈런 17개와 도루 38개를 성공시켰다.

특히 수비에서 눈부셨다. 2루수, 3루수, 유격수를 종횡무진했다. 승리기여도(WAR)는 내내 최상위권을 맴돌았다. (최종 fWAR=4.2, bWAR = 5.4)

급기야 연말에는 낭보가 전해진다. 골드글러브 수상이라는 빅뉴스다. 아시아 출신 내야수로는 최초의 개가다.

애틀랜타와 트루이스트 파크는 그렇게 좋은 기억이 남는 곳이다.

상대 전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샌디에이고 시절, 지구는 달랐지만 (내셔널) 리그는 같았다. 따라서 상대할 일이 적지 않았다.

통산 23게임에서 0.267-0.349-0.453(타율-출루율-장타율)을 기록했다. OPS는 0.802다. 자신의 평균치 0.703을 훨씬 웃돈다.

원정 경기로 한정하면 더 좋다. 그러니까 트루이스트 구장에서의 성적이다. 13게임에서 0.333-0.389-0.625(타출장)이다. OPS로 따지면 무려 1.014나 된다. 올스타급, 혹은 MVP급 기록이다. 브레이브스전 홈런 3개 역시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OPS순으로 정렬한 트루이스트 파크 성적 베이스볼서번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SNS

전용기 동원한 명문 구단

며칠 전이다. 탬파베이 레이스가 충격적인 오피셜을 냈다. 야심 차게 영입한 FA를 1년도 안돼 웨이버로 풀었다. 방출이나 다름없는 조치다.

다만 그냥 버릴 수는 없다. 7일간의 공시 기간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선수 안 쓴다. 원하는 팀은 데려가라.’ 하는 절차다.

이런 경우 대개 결말이 안 좋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럼 마이너로 가거나, 아예 자유계약으로 풀린다. 게다가 그의 경우는 연봉(1300만 달러, 약 181억 원) 부담도 크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곧바로 클레임을 건 팀이 나타났다. 브레이브스가 용기를 낸 것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클레임을 걸었다. 그리고 즉각 구단 SNS를 통해 영입을 공식화했다.

마치 준비한 것 같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괜히 명문 구단이 아니다. 인재 모실 줄도 안다.

곧바로 영입 인사 계신 곳으로 차와 운전기사를 보낸다. 가까운 공항에는 전용기를 대기시켰다. 깍듯이 예를 갖춰 모셔온다.

합류 첫날이다. 6번 타자 유격수 자리에 선발로 나간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다. 보은의 멀티 히트(4타수 2안타)를 터트린다. 이건 예고편에 불과하다. 다음 날에는 벼락같은 스윙이 번쩍였다. 역전 3점포를 터트린 것이다.

이 한 방으로 영입의 이유가 설명된다. 이것이 올해 브레이브스 유격수가 친 유일한 홈런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야 알려진 과거가 있다. 당사자의 얘기로 보도됐다. 애틀랜타는 이미 예전부터 러브콜을 보냈다. FA 행선지를 정할 때도 그랬다. 실제 제의가 있었고, 논의된 후보 중의 하나였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SNS

먹튀, 유리몸, 골칫덩이…. 낯설고, 잔인한 수식어들이 생겼다. 몸부림쳐도 떼어낼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확 뒤바꾸고 싶다. 그러던 차였다. 마침 기회가 열렸다. 다시 시작할 무대가 마련됐다.

새 옷이 생겼다. 새 등번호(9번)를 받았다. 새 동료들이 생겼다. 다행히 좋은 기억이 많은 곳이다.

그가 이제 약속의 땅으로 간다. 내일(6일)이다. 홈팀 유니폼을 입는다. 그리고 트루이스트 파크의 타석에 선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홈런을 쳤던 그 자리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