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을 중심으로 미국 내에 전력기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를 선점하기 위한 국내 전력기기 3사(LS일렉트릭·효성중공업·현대일렉트릭) 경쟁이 본격화된다. 미국시장 본격 진출에 앞서 3사의 설비투자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美 유틸리티 기업 "2030년까지 8217억달러 투자"
25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주요 유틸리티 기업 18곳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2030년까지 총 8217억달러 규모의 전력 인프라 설비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전년 대비 22% 늘어난 수준이다. 2020년 3878억달러에서 2021년 4574억달러, 2022년 5008억달러, 2023년 5760억달러, 2024년 6722억달러로 증가한 데 이어 투자 계획이 다시 상향된 것이다.
유틸리티 기업은 발전·송전·배전 등 전력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며 데이터센터와 산업시설, 주거지역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자다. 이들 기업의 투자 확대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실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과 전력 공급을 확정한 계약 기준으로 보면 중장기 전력 수요는 2024년 4분기 71기가와트(GW)에서 2025년 4분기 168GW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아직 계약까지는 체결되지 않았지만 향후 데이터센터 건설이 진행될 경우 전력 공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신청 물량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약 590GW 수준으로 추산된다.

국내 전력기기 3사도 일제히 설비투자(CAPEX) 확대에 나서고 있다. 다만 투자 방향과 구조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효성중공업은 변압기뿐 아니라 고압직류송전(HVDC) 변압기와 초고압 차단기 등 고부가 전력기기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경남 창원 공장에는 약 3300억원을 투입해 HVDC 변압기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약 1000억원을 들여 수출용 초고압 차단기 전용 공장을 신설·증설 중이다. 미국 멤피스 변압기 공장에도 1억57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2028년까지 생산능력을 50%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제품 라인업을 넓히는 동시에 국내와 북미 생산기지를 병행 확대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LS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CAPEX를 확대하면서도 배전반·스위치기어 비중을 키우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초고압 변압기 제2공장을 완공해 송전용 변압기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3배로 확대했으며 미국 유타 공장에는 1억6800만달러를 투입해 2030년까지 중·저압 스위치기어 생산능력을 3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송전과 배전 양쪽에 투자하되 북미에서는 배전·개폐기 쪽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쪽에 상대적 무게를 두고 있다는 평가다.
HD현대일렉트릭도 다양한 전력기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나 최근 설비투자는 초고압 변압기 중심으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울산 공장에 약 2118억원을 투입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 앨라배마에는 약 2억달러를 투자해 두 번째 변압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은 765킬로볼트(kV)급 초고압 변압기 생산과 시험이 가능한 설비를 갖추게 되며 완공 이후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기존 대비 약 50% 확대될 전망이다. 울산과 앨라배마 투자를 합치면 2025~2027년 사이 초고압 변압기 관련 설비투자 규모는 약 4000억~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2026~2028년 증설 집중…조달처 다변화 등 변수
문제는 국내외 업체들이 동시에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공급 부족으로 수주가 이어지고 있지만, 2026~2028년에 증설이 집중되면 이후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도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급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발주처의 선택지가 확대되면서 가격과 수주 조건이 이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는 핵심 소재와 숙련 인력 제약으로 공급 확대 속도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당분간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 같은 전제 역시 고정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이 전력망 안정화를 이유로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자국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인 데다 글로벌 주요 업체들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효성중공업과 LS일렉트릭은 제품군과 적용 분야를 넓히며 투자 대상을 분산하고 있는 반면 HD현대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특정 시장과 제품에 대한 투자 의존도가 높은 만큼 수요나 가격 흐름이 바뀔 경우 실적 변동폭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공급 부족으로 수주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요 업체들의 증설이 본격화되는 시점 이후에는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투자가 특정 시장이나 제품에 집중될수록 업황 변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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