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돌아다니기 무서워요”…외국인 관광객이 주말 혼비백산한 이유

차창희 기자(charming91@mk.co.kr),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2024. 10. 2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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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여의도 종교집회에
세종대로 6개 차선 통제
시내 간선도로 극심한 정체
나들이 시민들 불편 호소
규제 피해 고성·합창 반복
잇단 소음에 관광객 ‘눈살’
개신교계 “창조주 부정
차별금지법은 악법” 주장
27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집회 소음에 고통을 호소하며 귀를 막고 있다. [차창희 기자]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찾았다는 베네수엘라 국적의 소르나 씨(24)는 27일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구경하던 중 재빨리 이어폰을 착용해 귀를 막았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린 광화문 광장에서 쏟아져나오는 집회 소음에 귀가 아팠기 때문이다. 소르나 씨는 “처음엔 지역 축제인 줄 알았는데 경찰에게 물어보니 집회라고 들었다”며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서 관광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으로 주말 나들이를 나온 황지연 씨(46)는 주변에서 함성처럼 들려오는 ‘할렐루야’. ‘아멘’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주말 시민의 광장을 종교단체에게 뺏긴 것 같아 안타깝다”“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한테는 불편한 모습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연합예배에 나선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는 “창조 질서를 부정하는 성 오염과 생명 경시로 가정과 다음 세대가 위협받고 있다”며 “가정을 붕괴시키고 역차별을 조장하는 동성혼의 법제화를 반대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는 동성 결합을 사실혼 관계와 같게 취급하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위법한 자격 관리 업무 처리 지침을 즉각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27일 올해 처음으로 서울 도심에서 100만 인파의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서 휴식이나 업무를 위해 시내를 찾은 시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했다. 특히 집회 개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매주 주말마다 열리는 대규모 집회에 도심 교통 체증과 소음 공해가 유발되면서 광장을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일대에서 개신교계 임의 단체인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동성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부터 ‘한국교회연합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집회로 인해 광화문, 여의도 등 주요 서울 도심의 교통이 통제됐다. 이번 집회엔 주최 측 추산 약 100만명이 모였다. 부산,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실시간 예배 모습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놓고 찬송가를 열창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됐지만, 이른 새벽부터 무대 설치가 진행되면서 주말 내내 광화문 일대에서 교통 통제가 이뤄졌다. 왕복 8차선인 광화문 세종대로는 경찰 통제 하에 2개 차로만 통행이 허용됐다. 이 여파로 을지로, 서소문로, 사직로, 율곡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했다.

한 모씨(45)는 “교통 통제로 차들이 사거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난장판이 됐다”며 사고 발생 위험을 지적했다. 교통통제를 담당하던 경찰은 “평소보다 교통정체가 매우 심한 편”이라며 “버스들이나 차량들이 혼잡 구역을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도로가 집회 참석자들로 가득 차면서 차량 이동이 완전 차단됐다. [지혜진 기자]
집회가 시작된 이후로는 정상적으로 도보를 걸어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집회 참석자들은 도로 뿐만 아니라 광화문광장에도 자리를 선점해 이동하는 시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특히 사전에 집회 관련 정보를 인지하지 못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경복궁과 덕수궁, 숭례문 등 주요 관광지의 이동 경로가 집회로 인해 가로막히자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날 집회는 국회가 위치한 여의도에서도 진행돼 나들이로 여의도공원을 찾은 시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나들이를 온 이필우 씨(55)는 “평소에는 30분 만에 오는 길을 오늘은 1시간 반이 걸렸다”며 “2주 전에도 신천지 집회로 여의대로가 점거돼 불편했었는데 자꾸 대규모 종교 집회가 열리면서 일반 시민들의 불편함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이날 집회장 곳곳에서 경찰은 ‘집회소음 측정 중’이라고 안내하며 집회 측에 과도한 소음을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집회 지역의 소음 기준은 10분간 발생한 소음의 평균값(등가소음)은 70데시벨(dB)을 넘으면 안되고 측정시간 내 발생한 가장 높은 소음(최고 소음)은 90dB를 넘어서는 안된다. 등가소음은 한 번, 최고소음은 1시간에 3회 이상 기준을 초과한 경우 소음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집회 주최자들이 이런 경찰의 기준을 무력화시키며 소음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이 소음을 측정하는 10분 중 5분만 큰 소리를 내고 나머지 5분은 음량을 줄이는 식으로 규제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불편함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최고 소음 기준인 90db를 안팎을 유지하는 선에서 고성과 합창을 지속해서 반복되자 스피커 인근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소음이 견디기 힘들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 귀를 막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2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집회 참가자들 일부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나들이 관광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지혜진 기자]
더욱이 시민들의 불편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기온 강하에도 불구하고 서울 도심에서의 대규모 집회는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내달 2일에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 규탄 장외 집회를 예고했고, 9일에는 양대 노총이 숭례문 인근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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