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면 욕먹어도 괜찮다고? ‘넥슨 집게손 사이버 괴롭힘’ 그 이후

이은기 기자 2024. 8. 28.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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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경찰서가 ‘넥슨 집게손 사이버 괴롭힘’ 사건 불송치 결정을 번복했다. 언론보도로 불송치 사실이 알려지고 이틀 만에 수사 미흡을 인정하고 검찰에 먼저 재수사 요청을 구했다.
2023년 11월23일 공개된 영상에서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엔젤릭버스터가 엄지와 검지로 ‘집게손’ 모양을 만드는 장면.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홍보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애니메이터 A씨는 지난 5월16일(267건)과 6월14일(41건),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사건은 지난해 11월 남초 커뮤니티(남성들이 주로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해당 홍보 영상 속 게임 캐릭터가 엄지와 검지로 ‘집게손’ 모양을 만드는 대목을 문제 삼으면서 시작됐다(〈시사IN〉 제848호 ‘게임을 보랬더니 손가락을 보는 사람들’ 기사 참조). 이들은 ‘페미니스트인 애니메이터가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기 위해 집게손 장면을 의도적으로 넣었다’고 주장하고,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때부터 A씨를 향한 사이버불링(인터넷상의 집단 괴롭힘)이 시작됐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A씨의 신상을 공개하고 A씨에게 살해 협박, 성적인 모욕 등을 가했다. A씨는 당시 “당연한 일상을 영위하는 게 힘들었다. 잠을 푹 자지 못하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다. 무기력 때문에 종일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30일 〈경향신문〉 보도로 해당 장면을 그린 애니메이터가 40대 남성 작가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A씨를 향한 사이버불링은 계속됐다. A씨는 수차례 검토 끝에 자신을 향한 온라인 게시물과 메시지 3500여 건 중 법적 처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308건을 추려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모욕과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위반), 성폭력처벌법 위반,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를 적시했다.

A씨는 피해 이후 법적 대응에 집중했다. 공적인 절차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A씨는 “피해받은 내용을 다시 떠올려야 해서 고통스러웠지만,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거라 생각해 고소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후 경찰의 요청에 따라, 2차(6월14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고소인 조사(6월24일)를 받고 추가 보완 자료를 제출(7월12일)했다. 7월24일 수사 결과가 통보됐다.

결과는 ‘불송치(각하)’였다. 검찰로 가기도 전 경찰 선에서 잘린 것이다. 서초경찰서는 A4 용지 4쪽짜리 수사결과 통지서에 ‘불송치 이유’를 이렇게 썼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집게손가락 동작’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비록 피고소인(고소인의 오기)은 관련 그림 담당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나, 고소인의 소속 회사는 집게손가락 손동작과 관련하여 사과문을 게시한 바 있고, 고소인 또한 이전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트위터 글을 게시한 사실이 있는바, 피의자들이 고소인을 대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 보인다.” “피의자들의 글은 전체적으로 고소인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자신의 작업물 등에 몰래 집게손가락 표현을 넣는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가해자들에게 공적 면죄부 줬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두고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 해도 문제가 안 된다’라는 공적인 면죄부를 줬다”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불송치 이유’도 문제적이라고 짚었다. “보통 불송치 결정서 같은 공적인 문서에 ‘극렬한’ 같은 과한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몇몇 경찰관의 편향되고 낮은 수준의 성인지 감수성이 (불송치 결정서에서) 드러났다. 경찰 내에서도 어떻게 경찰관이 이런 불송치 결정서를 쓸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수준이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담당 수사관이 담당 과장의 결재를 받아 사건을 결론 짓고, 그 결론을 가지고 (불송치 결정서를) 썼다”라고 설명했다.

8월8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A씨는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경찰이 ‘페미니스트면 욕 먹어도 괜찮다’는 암묵적 허락을 내린 것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몇천 건이나 되는 모욕을 당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과’대로라면, 가해자들은 효용을 느끼고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 거다.” 언론을 통해 서초경찰서의 불송치 사실이 알려진 뒤, ‘경찰의 2차 가해’라는 비판과 함께 수사 결과에 대해 해명하라는 민원이 수천 건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언론보도 이틀 만인 8월7일 ‘수사 미흡’을 인정하고 검찰에 선제적으로 ‘재수사 요청’을 구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수사’는 검사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한 게 위법하거나 부당한 때 경찰에 요청할 수 있다. 검찰은 8월9일 경찰에 사건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피의자들이 모욕적이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글을 게시하거나 전송한 점을 고려할 때 계속 수사할 필요성이 있다.”

당장 경찰의 법리 미숙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각하는 불송치 사유 중 ‘혐의 없음’ ‘죄가 안 됨’ ‘공소권 없음’에 명백히 해당하거나 고소인 또는 고발인으로부터 고소·고발 사실에 대한 진술을 들을 수 없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이은의 변호사(이은의법률사무소)는 “각하는 아예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건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더 검토가 필요한 사항인데 이렇게 단적으로 ‘각하’라고 결론짓기 어렵다.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 종결했을 때 모든 고소인이 이번처럼 ‘재수사’ 결정을 받을 수는 없다.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피해자일수록 더 그렇다. 기소될 여지가 있는 사안이라면, 경찰이 법리적인 판단을 명확하게 받고 사건을 처리하는 등의 기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서초경찰서는 검찰의 재수사 요청 이후, 수사팀을 바꿔 재수사를 시작했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고소장에 적시된 4가지 혐의(모욕, 명예훼손, 성폭력처벌법 위반, 스토킹처벌법 위반)를 다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A씨를 대리하는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경찰이 적어도 재수사 과정에서는 피해자 관점에서 피해 사실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냥 피해자의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경찰이 피해자가 왜 고소하게 됐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건으로 피해자는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자긍심을 훼손당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신상이 유포되는 피해를 겪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심각한 모욕을 들었다. 이 상황에서 당사자가 어떻게 느꼈을지를 생각하면 좋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정도는 경찰이 밝혀야 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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