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 명의 운명을 걸고… 기후위기 시대 인류를 구하라!
“이번 세기 안에 60억 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정말 무서워요. 짐 싸서 화성으로 이주해야 할까요? 비밀리에 화성 이주민을 모집하는 기업에서 제안이 왔어요. 전 재산을 팔아도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어요.” —제보자 ○○○
무시무시한 ‘인류 멸종’ 제보가 온 날,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영국 런던에 있었어요. 기후위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워털루다리를 점령해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죠. 둘은 걸어서 다리를 건넜죠. 시위 참가자들은 워털루다리 여기저기에 화분을 갖다놓았어요.
“우리는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라는 신생 조직입니다. 온실가스 흡수 능력이 크거나 꽃을 피우기 직전의 나무 47그루를 직접 골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니 시민들도 따라서 나무를 갖다놓기 시작했어요. 거리를 되찾은 거예요! 온실가스가 나오는 기다란 굴뚝을 산소를 내뿜는 숲으로 바꾼 거죠!”
둘은 호텔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어요. 구레나룻을 한 한 남성이 인터뷰하고 있었어요. 이름은 로저 할람, 멸종저항의 공동 창립자라는 직함이 붙어 있었죠.
“이번 세기 안에 대량 살상과 기아 등으로 60억 명이 죽습니다. 우리는 지금 멸종의 미래로 향하고 있어요!”
왓슨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제보자가 말한 게 저거였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현재 인구가 82억 명인데 60억 명이 죽으면 인류 멸종 수준 아닙니까?”
홈스가 말했어요.
“인류 멸종이라…, 어려운 사건의 첫걸음은 가장 권위 있고 대다수가 인정하는 집단의 의견을 듣는 게 순서야.”
왓슨이 미소를 지었지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을 말씀하시는군요.”
멸종의 미래로 향하는 지구
IPCC는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세계 과학자들이 모인 유엔 산하 국제기구입니다. 수시로 정기 보고서와 특별 보고서를 내는데, 정기 보고서의 경우 1990년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2023년 6차 보고서까지 냈어요. 엉망진창 행성조사반은 IPCC 권력의 핵심에서 일하는 핵인싸 박사에게 화상전화를 걸었어요.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가 하품하면서 나타났죠. 왓슨이 물었어요.
“홈스 반장과 제가 인류 멸종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IPCC도 인류 멸종을 조사했나요?”
“우리가 상정한 미래 시나리오가 네 개인가 다섯 개인가 되는데, 가능한 위험에 인류 멸종은 없어요. 가만있자, 이건 비밀이니, 누구에게든 말하면 안 되네.”
핵인싸 박사가 ‘쉿’ 하면서 전화를 끄려고 했죠.
“에이~ 보고서 읽어보면 다 나오는 거잖아요.”
왓슨이 얼굴을 찌푸리자 핵인싸 박사가 ‘하는 수 없군’ 하는 표정을 짓고 말했죠.
“굳이 비슷한 걸 찾자면, 네 번째 최악의 시나리오이겠지. 홈스, 왓슨 자네들도 많이 읽어봤잖나?”
홈스와 왓슨은 기습 질문에 얼어붙고 말았어요.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둘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죠.
IPCC 6차 보고서가 내놓은 최악의 시나리오(SSP5-RCP8.5)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는 경로를 상정해요. 2050년에 현재 수준의 2배에 이르고, 2100년에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가 4도를 초과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의 탄소 중독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는 상황, 그러니까 세계 각국이 여전히 산업기술의 빠른 발전에 중심을 두고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미래죠.
박사가 말을 이었어요.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번 세기말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가 3.3도에서 5.7도 아닌가. 해수면은 최소 63㎝에서 최고 1.01m까지 상승할 거고. 분명히 많은 변화가 예상되긴 하네만, 그 정도로 인류가 사라질까?”
“반장님, 이거 보세요!”
그때 왓슨이 노트북을 가리켰어요. 로저 할람이 공유한 페이스북 포스트였어요. ‘인류 멸종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일 것.’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건가?”
“그런 건 아니고 박람회라고 하는데요. 행사명이 ‘인류 멸종 박람회’? 한국 서울의 코엑스에서 열린다고 해요. 오우! 일론 마스크도 온대요!”
박람회에 나온 탄소 먹는 하마와 우주거울
코엑스의 전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입구에는 ‘자발적 멸종 운동’ 회원들이 “우리가 오래오래 살다가 죽기를!”(May we live long and die out!)이라는 표어 앞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어요. 인간의 멸종이 지구의 다른 생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번식을 자제’하고 ‘평화적 멸종’을 다짐하는 서명을 받는 것이었죠. 왓슨이 말했어요.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자발적 멸종 운동 빼고는 기업들의 홍보 전시장 같은 풍경이네요.”
“그러게. 자본과 기술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얘기밖에 없군.”
사람들이 많이 몰린 부스는 ‘탄소 먹는 하마’ 시연장이었어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장치였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대형 송풍기처럼 생긴 기계를 가리키며 설명했어요.
“이 기계는 매년 3만6천t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내연기관차 8600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는 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습니다. 탄소 먹는 하마가 온실가스 농도를 관리해주니까요.”
고개를 갸웃하며 왓슨이 질문했어요.
“이 기계만 있다면, 앞으로 우리 생활이 좀 편해지는 겁니까? 지하철 안 타고 막 승용차 타고 다녀도 됩니까?”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한국인 1인당 연평균 13t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약 2800명 인구의 마을에 하나씩 설치하면, ‘온실가스 순배출량 0’의 탄소중립이 이뤄지는 겁니다. 탄소 먹는 하마는 앞으로 탄소중립의 미래를 여는 총아입니다. 정부의 기후기술 육성 사업 대상에 선정돼 상용화만 마치면….”
그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몰린 곳은 인공위성 전시장이었어요. 칠성거울공사가 개발 중인 ‘우주거울 백설호’였죠. 난쟁이 코스튬을 한 홍보요원들이 거대한 거울이 달린 인공위성 앞에서 설명하고 있었죠.
“2800명에 한 대씩 그 기계를 어느 세월에 설치하려고요? 그러는 동안 인류는 멸종합니다. 하지만 마법의 우주거울 함대를 지구 궤도에 쏘면 한 방에 해결됩니다.”
일론 마스크의 화성 이주단 모집
우주거울 아이디어는 사실 반세기 넘는 역사가 있어요. 원리는 단순해요. 우주거울을 장착한 인공위성 함대를 지구 궤도에 올린 뒤, 태양에너지를 반사해 지구로 들어오는 에너지양을 줄이면 되는 거예요.
그때 전시장 장내 방송이 울렸어요.
“제5차 산업혁명의 개척자이자 기술자, 기업인인 일론 마스크씨의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 콘퍼런스 홀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일론 마스크는 평소처럼 청바지에 하얀 티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 연단에 올랐어요.
“기후변화로 지구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인류도 금세기 안에 멸종하리라는 전망입니다. 그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자, 이 노래를 들어주십시오.”
대형 화면에 구릿빛 원반 모양의 음반이 떴어요. 음반이 회전하면서 몽환적인 ‘혹등고래의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했죠.
“미항공우주국(NASA)은 1977년, 이 음반을 보이저호에 실어 우주로 보냈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곡 등 지구와 인류의 미적 표현 가운데 마지막 남을 조각이 될지도 모를 것들이 담겼죠.”
마스크는 코 밑으로 내려간 마스크를 바로잡은 뒤 말을 계속했어요.
“3년 전, 우주의 누군가가 혹등고래의 노래를 다시 보내는 걸 포착했습니다. 우리 스페이스에스그룹은 이 신호를 분석했고 바로 그 발신지가 화성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청중석에서 큰 탄식이 이어졌습니다. 화성이라면 스페이스에스가 인류 멸종을 피해 이주하겠다며 대대적으로 발표한 곳이었거든요. 물론 아직 아무도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착륙시킨 적이 없었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비밀리에 제1차 화성 이주단을 모집했습니다. 유엔 회원국 159개 국가에서 159명 남녀가 자원했습니다. 이들을 소개합니다!”
연기와 함께 사라진 화성행 로켓
일론 마스크의 손짓에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우주 발사장이 대형 화면에 나타났어요. 유엔 회원국 159개 국가에서 나온 자원자 159명이 우주복을 입고 도열해 있었죠. 마스크가 설명했어요.
“화성에 도착해 지적생명체와 교류하면서 미래 거주지의 기반을 닦을 대원들입니다. 전쟁과 기아 그리고 폭염과 홍수를 피해 가장 먼저 지구를 떠나는 대원들에게 손뼉을 쳐주십시오!”
홈스와 왓슨도 함께 박수를 치고 있는데, 유독 한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여성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는 것 같았어요. 울면서 어깨를 들썩이던 여성은 갑자기 대열에서 이탈해 도망치기 시작했죠. 검은 양복을 입은 보안요원이 달려들어 그녀를 붙잡고 우주선으로 넣었습니다.
“저 여성, 우리에게 제보한 사람 같은데?”
홈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장내 방송이 울렸습니다.
“이제 곧 제1차 화성 이주단을 태운 로켓이 출발합니다. 박람회 방문객들은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주시해주기 바랍니다.”
“5, 4, 3, 2, 1….”
로켓이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주최 쪽이 사전에 준비한 듯, ‘혹등고래의 노래’가 잔잔히 울려 퍼졌어요. 중계 화면 하단에 고도 14㎞가 찍힌 순간이었습니다. 오른쪽 보조추진로켓에서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로 치솟던 거대한 불덩어리는 점차 힘을 잃고 꺾였습니다. 이내 로켓은 여러 개의 파편으로 나뉘었고 연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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