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찬 여행지
달력이 2장도 채 남지 않았다. 이맘때쯤 나라 별 연말연시 풍습이 있다. 일본에서는 못 쓰는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며 새해를 맞는다.프랑스에서는 남은 술을 모두 마셔버린다. 각 나라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큰 줄기는 비슷하다. 바로 ‘비움’이다.
비움과 연말연시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해남이다. 해남은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떠난 법정 스님의 고향이기도 하다. 땅끝마을로 유명해서인지, 땅끝의 상징 때문인지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연말연시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땅끝 전망대부터 템플 스테이까지 해남에는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연말연시에 가기 좋은 해남 명소 4곳을 소개한다.
땅끝 전망대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위치한 땅끝마을. 땅끝마을은 우리나라 국토의 가장 마지막 지점이다. 땅끝마을을 한눈에 담기 위해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로 가는 방법은 걸어 올라가거나 모노레일을 타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걸어갈까 고민하다가 귀여운 노란색의 모노레일이 궁금해 모노레일에 몸을 실었다.
모노레일 가격은 왕복 5000원, 편도 3500원. 모노레일 탑승권을 끊으면 땅끝 전망대, 고산 윤선도 유적지, 두륜미로파크, 우수영 관광지 모두 무료입장할 수 있다. 모노레일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2층은 1층 모노레일에 가려지므로 1층에 탑승하는 걸 추천한다.
모노레일 밖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항구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까지 7분 정도 걸리는데 그림 같은 풍경에 심취한 탓인지 7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횃불 모양을 형상화한 땅끝 전망대가 보인다. 밤에 전망대 조명이 켜지면 타오르는 횃불같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땅끝 전망대 요금은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이다. 모노레일 티켓을 구매한 사람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9층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남의 경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미세먼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탁 트인 풍경. 눈앞에 다도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한민국 끝에 서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육지의 끝이지만 바다의 시작인 땅끝을 바라보며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해 보자.
▶▶▶ 땅끝 전망대 관람 꿀팁
1. 모노레일에 애완견 탑승은 금지다. 모노레일은 15분 간격으로 운영되며 티켓 유효기간은 발권 일부터 7일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운영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2. 전망대 입구에 한반도 모양의 빨간 우체통이 있다. 일명 느린 우체통으로 엽서를 쓰면 1년 후에 발송해 준다. 엽서는 땅끝 전망대 매표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5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니 꼭 엽서를 적어보길 바란다.
울돌목 스카이워크
영화 ‘명량’ 덕분인지 울돌목은 몰라도 명량을 모르는 사람은 잘 없다. 순우리말인 울돌목을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명량이다. 명량은 ‘울 명(鳴), 대들보 량 (梁)’으로 바다가 운다는 뜻이다.
울돌목은 빠른 물길 때문에 암초와 부딪쳐 튕겨져 나오는 소리가 20리 밖까지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조류가 빠르다. 울돌목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명량대첩지다.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과 싸워 승리했다는 전설의 장소다.
울돌목을 빠른 물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울돌목 스카이 워크다. 거센 물살 위를 직접 걸어볼 수 있다. 가격은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이다. 다른 지역의 스카이워크와 달리 일자로 돼 있는 것이 아닌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돼 있어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 보니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조성해 둥근 모양이라고 한다.
울돌목의 물살은 생각보다 더 거셌다.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웅장한 기분이 든다. 이곳에 다녀오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진도대교 옆에 있어 대교의 근사한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울돌목 스카위워크 관람 꿀팁
스카이워크에 메탈 철판 망이 있어 하이힐 착용자는 위험할 수 있다.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자.
법정 스님 마을 도서관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법정 스님.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닌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의 시초는 무소유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필요 이상의 것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이 꼭 들렀으면 하는 곳이다.
법정 스님은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출생해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서관에는 서책 14권, 찻잔 1점, 사진 2점등이 전시돼 있다. 그 외에 법정 스님의 찻잔, 집필 저서, 이해인 수녀의 법정 스님 추모 글, 법정 스님의 일대기 등을 볼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유언대로 유물을 최소화했다. 스님이 직접 만들고 애용했던 송광사 불일암 나무의자를 그대로 본떠 만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 잠시 앉아 사색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 법정 스님 마을 도서관 관람 꿀팁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주말에는 전문 해설사가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대흥사 템플스테이
해남 두륜산 자락에 있는 대흥사. 대흥사에는 사찰에서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Temple Stay)'가 있다. 코스는 1박 2일과 2박 3일 두 가지며 가격은 1박 2일 기준 10만 원이다.
템플 스테이 시작은 오후 3시부터다. 오전에 해남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입소하면 좋다. 회색 조끼와 바지로 갈아입은 후 사찰 예절을 배운다. 평상시 스님들이 식사하는 것을 ‘발우 공양(鉢盂供養)’이라고 하는데 식사 의례를 통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수고로움을 배울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연등 만들기 체험. 연등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혜를 상징한다.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나의 지혜도 피어오르길 기원하며 한지로 연등을 만들어보자.
둘째 날 기상은 오전 4시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 예불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108배 체험. 108가지 번뇌를 하나씩 내려놓으며 나를 비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며 지혜를 얻는 시간도 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 외에도 체험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자율형도 있으니 취향껏 선택하면 된다.
▶▶▶ 대흥사 템플스테이 체험 꿀팁
대흥사 매표소 입장 시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이용할 수 없다. 술, 담배는 금지며 신문, 잡지 등을 지참할 수 없다.
끝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육지의 끝이지만 바다의 시작이기도 한 땅끝이 딱 그러하다.
얼마 남지 않은 2022년 그리고 새로 맞이할 2023년을
해남 땅끝에서 시작하면 의미 있지 않을까.
늦가을, 그리고 겨울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보다 특별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해남 땅끝으로 떠나라.
끝과 시작을 한 번에 보게 될테니.
글=주다솔 여행+인턴기자
감수=장주영 여행+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