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NATO와 러시아, 33년 불신의 연대기

1990년 2월 9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주석에게 건넨 약속은 명확했다.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통일을 위해 소련의 양해가 절실했던 서방은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달래기 위해 이런 구두 약속을 남발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NATO는 동구권 16개국을 새로 받아들이며 러시아 국경 바로 앞까지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불신과 배신감이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냉전이 끝나자 러시아는 서방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직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NATO 가입까지 타진할 정도였다. 1994년 러시아는 '평화를 위한 동반자관계(PfP)' 프로그램에 가입했고, 1997년에는 '상호관계·협력·안보에 관한 기본협정'을 체결하며 "NATO와 러시아는 서로를 적대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NATO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옐친은 "NATO 확대의 부정적 결과는 NATO-러시아 협약을 통해 최소화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1998년 3월에는 NATO 주재 러시아 상주대표부까지 개설하며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협력의 분위기는 1999년 3월 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으로 급변했다. 유엔 안보리 승인도 없는 일방적 군사행동에 러시아는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이는 1997년 기본협정에서 약속한 '상호 협의'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
프리마코프 총리가 워싱턴행 비행기를 대서양 상공에서 회항시킨 것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었다. 러시아는 즉시 NATO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했고, 핵군비 통제 협상도 파기했다. 러시아 의회에서는 "오늘은 세르비아, 내일은 러시아"라는 슬로건이 나왔다. 냉전 후 협력의 꿈은 이렇게 첫 번째 시험대에서 무너졌다.
2000년 집권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초기에 서방과의 협력을 모색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그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지원했고, 2002년에는 NATO-러시아 이사회(NRC)가 창설되어 러시아가 NATO 회원국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NATO 확대는 계속되었다. 1999년 폴란드·헝가리·체코가 가입한 데 이어, 2004년 발트 3국을 포함한 7개국이 추가 가입했다. 특히 발트 3국의 가입은 러시아에게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소련 구성국이었던 이들 국가의 NATO 가입은 러시아의 '근외(Near Abroad)' 정책에 정면 도전이었다.
2007년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푸틴은 역사적 연설을 했다. 그는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는 위험하다"며 "NATO 확대는 상호 신뢰를 잠식하는 심각한 요인"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 연설은 러시아가 서방과의 협력을 포기하고 대립 노선으로 전환하는 공식 선언이었다. 푸틴은 또한 "소연방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잃어버린 영향권 회복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과거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보인 친서방 노선과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했다. 2008년 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NATO 정상회의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조지 부시 미대대통령의 주도로 NATO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NATO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반대했지만 미국이 강행했다. 아후 2013년 말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은 러시아에게 생존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친러 정권이 무너지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자, 푸틴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그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NATO에 끌어들이려 한다"며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고 정당화했다.
NATO와 러시아의 불신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1990년 베이커의 구두 약속 파기에서 시작해, 1999년 코소보 폭격, 2004년 발트 3국 가입,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림 병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진 33년간의 배신과 보복의 악순환이었다. 이것이 러·우 전쟁이 쉽게 끝나기 어려운 진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