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러 파병’에 정부가 신속·강경하게 나가는 이유엔 ‘정무적 판단’이 있다?
전문가들 “정부 완급 조절 필요…북한과 러시아 분리해 대응해야”
국정원의 ‘이례적’ 대응도 주목…‘지지율 위기’ 국내 정치 상황에 영향?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북한 전투병력의 러시아 파병에 윤석열 정부가 연일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무기, 인력 등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언론에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북한 포로를 심문할 대북 심리 분야 전문가 파견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의 파병이 국제사회 안보를 넘어 한반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 속 적극적이고도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태도로 풀이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 일각에선 정부가 더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주요 인사들의 공개 발언을 감안하면, 국정원의 인력 파견 검토 등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미 정부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최대치의 수준으로 열어놨다. 지난 22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주재 긴급안전보장회의(NSC) 직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에서 '단계적 대응'으로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공격용' 무기 직접 지원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대통령실에선 '살상용' 무기가 아닌 '공격용' 무기라고 표현은 순화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2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견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원칙으로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아직은 '검토' 단계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 및 조언을 내놓고 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검토' 자체가 협상 수단이 될 수 있는 카드이므로 이 카드를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들고 러시아와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며 "우리의 완급 조절에 러시아도 호응할 수 있도록 모든 채널을 동원해 러시아와 직접 대화하고 북·러 협조를 지연시키거나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살상 무기 지원을 우려하는 다수의 전문가들은 정부 대응에 있어 북한과 러시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공통되게 말했다. 자칫 섣부른 대응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일각에선 우리 국정원이 미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서방보다도 먼저 북한의 파병을 공식 인정하고, 강경 대처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해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지난 18일 북한의 파병 사실을 확인했다고 알리며 인원, 임무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내용을 공개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확답을 주저한 것과는 대비됐다. 군 고위직 출신의 한 안보 전문가는 "(국정원의 발표) 시기가 상당히 급했고, 내용이 상당히 상세했다. 흔한 장면은 아닌듯 하다"며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됐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요인에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 포함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지지율)가 매주 최저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국면전환을 위해 북한 파병 사태를 일부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야권, 특히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최근 정부가 북 파병 사태를 정치적 위기 타개책으로 삼고 있다며 '신(新)북풍몰이'라고 규정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8일 국정원의 인력 파견 검토에 대해 "결코 해선 안 될 일"이라며 "한반도에 전쟁을 획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겨나고 있는데, 지금 행동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억측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야당의 공세에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안보를 가볍게 생각하는 야당의 프레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국정원 출신 안보 전문가인 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혹은 정치인들이 어떤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할 유혹을 느끼게 되는데, 그래선 안 되고 정부가 이 국면에서 현실 인식을 정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며 "긴장감은 유지하되 앞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하게 고립시킬 수밖에 없을 텐데, 우리 정부도 발을 맞춰서 조금 더 느리게, 내부적으로 절제하면서 갈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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