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름값 급등 ‘총력 대응’…석유 최고가격제 추진

정희윤 기자 2026. 3. 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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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 4사 담합 조사·가격 모니터링 강화
30년 만 유가 직접 개입…공급가 상한 검토
휘발유 1천900원·경유 1천930원대 급등
추경·취약계층 직접 지원 등 추가 대책 거론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기름값이 빠르게 오르자 정유사 담합 조사와 주유소 가격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정부가 가격 안정에 나섰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기름값이 빠르게 오르자 정부가 가격 안정에 나섰다. 정유사 담합 조사와 주유소 가격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까지 추진하며 전방위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천906.55원으로 1천900원대를 넘어섰다. 경유 가격은 1천930.95원으로 휘발유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발생하기 전날인 지난달 27일과 비교하면 휘발유(1천693원)는 약 12.6%, 경유(1천597원)는 약 20.9% 상승했다.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일부 주유소가 재고 확보와 수익 보전을 이유로 판매 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면서 국내 유가 상승폭이 확대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우선 시장 교란 행위 점검에 착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국제유가 상승 국면에서 정유사들이 석유 제품 가격을 담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한 조사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들이 담합 등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거나 유지·변경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시정조치와 과징금이 부과되며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공정위는 전국 주유소 가격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 지역사무소를 중심으로 고유가 주유소를 점검하고 가격 담합이나 눈속임 판매 등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가 확인될 경우 즉시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국제유가 상승 가능성이 커지자 정부는 비상 대응에도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가 안정"이라며 "민생 현장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기 위한 정책을 적극 발굴하고 신속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최근 유류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화물운송과 택배, 배달, 시설하우스 농가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분야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과 에너지 세제 조정, 소비자 직접 지원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을 위한 관련 고시 제정 절차에 착수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주 내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준비가 마무리되는 대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될 경우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정부가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첫 사례가 된다. 국제유가 상승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이를 틈탄 과도한 가격 인상과 폭리를 차단해 물가 상승 압력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현재로서는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일반적으로 아시아 벤치마크인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에 환율 등을 반영해 공급가격을 산정한다.

정부는 최근 몇 주간의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 평균에 일정 마진을 더해 정유사가 판매할 수 있는 최고가격을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가격 변동이라는 객관적 지표를 반영하되 과도한 이윤을 제한해 가격 급등을 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주유소 판매가격이 아닌 정유사 공급가격을 겨냥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국 주유소는 직영과 자영, 알뜰주유소 등 운영 형태가 다양하고 지역별 임대료와 물류비 차이가 커 일괄적인 가격 통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급가격 상한을 설정하면 유통 단계의 원가 부담을 낮춰 소비자 가격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최고가격을 일정 주기로 조정하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기본적으로 2주 주기로 최고가격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첫 상한선은 현재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보다 낮은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격 통제에 따른 공급 부족을 막기 위한 관리 방안도 마련된다. 정부는 '매점매석 고시'를 통해 정유사가 생산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시장에 판매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격 상한제를 피해 물량을 쌓아두거나 수출로 돌리는 행위를 차단해 수급 불안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유가 상승에 따른 민생 부담 완화를 위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유류세를 일률적으로 인하하기보다는 취약계층 직접 지원 등 차등 지원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직접 지원을 하려면 추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와 소비자 직접 지원 방안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세제 조정과 재정 지원을 병행하는 방식의 대응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석유 수급 상황에 대한 점검도 진행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우리나라의 비축유는 약 208일분이지만 석유화학 산업 수요를 고려할 경우 실제 가용 물량은 약 4개월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확보한 600만 배럴 외에도 전략적 협력 관계에 있는 국가들과 협의를 통해 추가 물량 확보에 나서는 등 에너지 수급 안정 대책도 병행하고 있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