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형 / 와인소풍 대표
아직 쓰여지지 않은 미리 보는 역사 소설 ‘샴페인 과부들(Champagne Widows)’의 새 주인공 이야기
"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샴페인을 마신다. 때로는 혼자 있을 때 마신다. 동반자가 있을 때는 마시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배고프지 않으면 가볍게 마시고, 배가 고프면 마신다. 그렇지 않으면, 목이 마르지 않는 한 절대 손대지 않는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 마담 자크 볼린저가 한 말이다.
이 말은 1961년 그녀가 런던의 한 언론(the Daily Mail newspaper)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얼마나 샴페인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변으로 한 말이라는데 무슨 의미일까?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마신다는 의미 같다. 극단적으로 보면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마신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그녀가 샴페인을 마시지 않을 때는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혼자 있는데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황뿐이라는 것이니 사람에게 그런 때가 있기는 할까 싶다.
명상할 때나 무언가에 열심히 집중할 때거나 화날 때 정도일까? 우스개 소리로 해우소에 있을 때나 가능하지 않을까?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와이너리를 돌아다녔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천했다.
‘샴페인 미망인들(Champagne Widows)’의 작가 레베카 로젠버그(Rebecca, Rogenberg)가 2022년에 뵈브 클리코, 2023년에 마담 포므리에 대해 전기적 소설을 써서 출간했다.
일단 책 제목을 ‘미망인들’이라는 복수로 출발했고 두 명에 관한 작품을 썼으니 복수가 되기는 했으나 고작 두 명에 관해 쓰자고 복수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럼 다음에 그녀가 발표할 샴페인 관련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샴페인 기술이나 산업 발전에 기여한 또 한 명의 특출한 미망인을 찾으면 그녀가 다음 소설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럼 떠오르는 인물인 릴리 볼린저(엘리자베스 볼린저(Lily Bollinger)다. 영화 '007'에 등장했던 바로 그 샴페인들을 만든 주인공이다.그래서 이번에는 아직 책으로 출판되지는 않아 그녀의 이야기가 소설로 어떻게 꾸며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그녀의 실제 삶을 조명해보면서 우리가 각자 소설가가 돼 작품을 구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은 그녀의 실제 삶을 살펴볼까 한다.

릴리 볼린저 (별명 마담 자크)의 본명은 엘리자베스(Élisabeth Law Lauriston-Boubers, 1899~1977년)로 앞선 칼럼의 두 미망인 보다 한참 뒤인 1941년부터 1971년까지 볼린저 샴페인 사업의 수장으로 활동했다.
그녀는 남작 작위를 가진, 스코틀랜드계 은행가의 프랑스 후손인 귀족 아버지(Baron Olivier Law de Lauriston-Boubers)와 어머니(Berthe de Marsay) 사이에서 태어나 24살이 되던 1923년 볼린저 샴페인의 설립자(Jacques Joseph Bollinger)의 손자인 자크 볼린저(Jacques Bollinger(1894-1941)와 결혼했다.
그런데 볼린저 와이너리는 1892년에 설립되었으니 그녀의 남편이 태어나기 2년 전에 설립된 것이었다.
그녀는 마담 포므리와 유사하게 42살이 되던 1941년 남편이 사망하자 볼린저 하우스의 회장직을 맡는다. 마담 자크로 불리우며 1971년까지 회사를 경영하게 되는데 남편이 사망할 당시에도 여성의 사업 소유권은 여전히 제한돼 있었지만 미망인은 여전히 이 법을 피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뵈브 클리코나 마담 포므리처럼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라 회사를 팔아버릴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프랑스는 1965년이 돼서야 여성에게 남편이나 부모의 허락 없이 고용, 은행 및 자산 관리에 대한 완전한 권리가 부여됐다.
우리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처음부터 여성에게 투표권과 재산 소유권이 인정되었으니 이런 측면에서는 우리가 프랑스보다 한참 앞섰다고 자랑할 만하다.
그녀는 1967년 RD 볼린저 (Bollinger RD) 빈티지 샴페인을, 1969년에는 빈티지 비에이 비뉴 프랑세즈(Vieilles Vignes Françaises)를 출시하여 브랜드를 국제 무대에 올렸다. 비에이 비뉴는 수령이 오래된 포도나무를 가리킨다.
1977년 그녀가 사망한 후 그녀의 조카(Claude d'Hautefeuille)와 증조카(Christian Bizot)가 회사를 차례로 이어받았다.
작가가 그녀를 주제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가 미망인이기도 하지만 샴페인 세계에 나름 혁명적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뵈브 클리코에서 시작된 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효모 제거로 클린(Clean)은 뵈브 클리코가, 드라이(Brut)한 맛은 마담 포브리가 이뤄냈다. 하지만 언제 병입되었는 지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는데 릴리 볼린저가 이 것을 해결했다.
병입 시기에 관한 정보가 없으면 언제 마시면 맛있게 마실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셈이다.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해 양조한 해를 의미하는데 샴페인의 경우에는 셀러와 병속에서 2차 발효 기간을 얼마나 했는 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릴리 볼린저는 이에 착안해 리들링 방법으로 병목에 모인 효모 앙금을 제거한 후 와인을 보충한 날을 라벨에 표기하여 소비자에게 병입한 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것을 RD(Recently Disgorged)(‘가장 최근에 앙금 제거하고 도자주한’ 이라는 의미) 빈티지 샴페인이라고 이름 붙여 시중에 출시했다.
현재 논빈티지 샴페인은 병속 2차 발효 최소 12개월 포함 최소 15개월 이상(병입후 병숙성기간 포함)을 숙성시켜야 하고, 빈티지 샴페인은 최소 36개월 이상을 숙성시켜야 하는데 볼린저는 12년을 숙성시켜 출시하고 있다.
이유는 죽은 효모와 함께 병속에서 더 오래 숙성시킬수록 풍미가 더 풍부하고 깊어지기 때문이다.
릴리는 이 원리에 더해 오래 숙성시킨 후 충분히 숙성됐다고 판단될 때 병목의 앙금을 제거한 후에는 가급적 빨리 마실수록 더 신선하면서도 복합적인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가 만들어 낸 RD 빈티지 샴페인이다.

그녀의 남편이 사망하고 그녀가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1941년)는 2차 세계 대전(1939.9.1~1945.9.2)중이었고 프랑스가 독일 나치에 점령당했던 시기였기에 그녀는 이중고를 치러야 했다. 미망인으로서 자신을 지켜야 했고 점령군인 독일군에게 정기적으로 샴페인을 무료로 공급해야 했다.
1944년 8월 11일 볼린저 사유지가 위치한 아이(Aÿ) 마을이 폭격을 받아 부분적으로 파괴되자 그녀는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와이너리 지하실을 개방, 피난처로 삼게 했고 희생자들의 장례식도 직접 준비하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더욱 존경받게 되었다.
프랑스 해방 이후 그녀는 포도원을 점검하기 위해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포도 품질 관리에 힘썼다. 그리고 그녀는 또한 샴페인 판매망을 구축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을 오갔다.
그 결과 1950년 조지 6세 국왕과 196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각각 왕실로부터 상을 받았고 이것을 병 라벨에 표시하게 되었고 이 같은 볼린저와 영국 왕실 사이의 특별한 관계로 볼린저는 지금도 여전히 버킹검궁의 공식 공급업체로 남아 있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1951년 10월 25일, 리베르테(Liberté)라는 정기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마케팅 투어의 출발점인 뉴욕을 향해 간다. 미국에서 그녀는 언론인 및 주요 인물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샴페인 시음회를 열고, 샴페인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국인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 결과 1961년 시카고 지역의 미국인들로부터 '프랑스의 영부인'이라는 별명까지 얻기에 이른다.

볼린저 와이너리에는 운좋게도 필록세라의 폐해를 견뎌내고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주 작은 구역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 구역만을 특별히 분리 관리했다. 그리고 그녀는 1969년 VVF(Vieilles Vignes Française) 퀴베라는 샴페인 브랜드를 출시했다.
19세기 말 필록세라의 피해로 인해 이를 방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와이너리들이 뿌리 부분은 미국산 대목을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VVF 퀴베는 필록세라의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던 구역의 피노누아 원목의 품종으로 만든 것이어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린저 샴페인은 007 제임스 본드의 샴페인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그녀의 조상이 스코틀랜드 출신인데다 007 제임스 본드의 저자 이안 플레밍(Ian Fleming)도 스코틀랜드 은행가의 후손이었기에 고향과 조상 프리미엄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도 싶다.
40대 초반에 미망인이 되어 자식이 없어 굳이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전쟁통에 사업을 계승해 빈티지 샴페인의 출시 날짜를 최초로 적용한 작은 혁명의 주인공.
빈티지 샴페인을 마실 때마다 그녀를 기억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