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수 늘려도 좋고 안늘려도 OK … 의원들 '양다리 걸치기'
상충되는 법안에 이름 올려
미성년 피해자 영상 증거에
'허용' '불가' 다 동의한 의원도
발의건수 목매 입법효율 저하
국회의원들이 내용이 서로 상충하는 법률안에 양다리를 걸치는 식으로 동의해주는 사례가 빈번해 법안 처리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의원이 의원 수를 늘리는 법안에도 이름을 올리고, 의원 수를 줄이는 법안에도 이름을 올리는 식이다. 법안 발의 건수가 의원 실적으로 잡히기 때문에 숙고 없이 동의를 남발한 결과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법률안은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현행 지역구 253석을 유지하는 대신, 비례대표를 기존 47명에서 30명 증원해 77석으로 늘리고 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30명으로 늘리는 안이다.
반면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대표발의한 법률안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지역구 국회의원 150명, 비례대표 150명으로 하자는 내용으로 현행 의원 정수를 유지하는 안이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서 의원 정수 확대 여부는 핵심 논점 중 하나인데, 두 법률안은 서로 상충한다. 그런데 김영배·김민철·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양쪽 법률안에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의원 정수 확대 여부는 선거법에서 국민 정서와 관련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의원들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식 견해를 보이는 건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선거제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다리식' 법안 동의는 선거제 개혁 법률안뿐만이 아니다. 김영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작년 4월 발의)은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한해 영상녹화물의 증거 능력을 제외시키고, 피고인과 대면 진술할 때 중계시설 또는 가림시설 등을 활용해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했다. 반면 양정숙 무소속 의원 법률안(작년 11월 발의)은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라도 피의자·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녹화물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상충하는 법안이지만 민형배 무소속 의원은 양쪽 모두에 동의했다.
또 이른바 '소년범' 사건과 관련해 서영교 민주당 의원 법률안(작년 1월 발의)은 특정강력범죄를 1회 범한 소년범 초범도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반면 이병훈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년법 개정법률안(작년 5월 발의)은 특정강력범죄를 2회 이상 범한 경우에 한해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한다. 오영환·윤재갑 민주당 의원은 두 법률안에 모두 동의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런 양다리식 법안 동의가 '논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상충하는 법안에 이름을 올린다는 건 법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거나, 업적주의·성과주의에만 입각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주요 실적 중 하나인 의원입법은 10인 이상 의원이 동의하면 검토 절차를 생략한 채 발의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같은 당에서 친한 동료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에 대해 면밀한 검토 없이 동의해주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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