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을 보라. 전남의 한 마트 한켠에 산더미처럼 쌓인 에이스 과자들. 빼빼로데이가 다가오면 매대마다 빼빼로가 자리 잡은 모습은 익숙한데, 에이스가 이렇게 대량으로 놓여 있는 풍경은 낯설다. 대체 왜 에이스를 이렇게까지 쌓아둔 걸까?

알고 보니, 이 풍경은 ‘에이스데이’를 맞아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네모난 비스킷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고, 딸기잼 발라 먹으면 꿀맛인 요 녀석 에이스.

이 과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도 에이스데이는 처음 듣는데, 전남 일부 지역의 오래된 문화라고 한다. 유튜브 댓글로 “전남의 에이스데이가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마트별로 에이스가 주르륵 깔리는 이런 진풍경은 매년 10월 말쯤, 전라남도 광양, 여수, 순천 등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선 10월 31일을 ‘에이스데이’로 정해 마치 빼빼로데이처럼 친구나 연인끼리 에이스를 주고받기 때문.

지금도 그럴까? 순천 지역 마트 여러 곳에 직접 전화해 봤더니, 예전엔 행사처럼 크게 챙겼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순천마트 관계자]
에이스 데이가 예전에는 컸죠. 10월달 되면 거의 에이스 데이였죠. 옛날에는 에이스 데이 하면 (마트에서도) 막 예쁘게 꾸며 가지고 했는데 지금은 꾸미고 그런 거 없이. 요즘에는 옛날처럼 그러진 않아요.

예년처럼 10월이 되면 에이스 매출이 늘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것. 에이스보다 맛있고 다양한 과자가 많아진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근본적인 질문 하나. 전남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에이스데이가 생긴 이유가 뭘까? 에이스를 생산하는 해태제과에 물어봤다.

[소성수 해태제과 홍보팀 부장]
1984년에 광양 여중 졸업생들이 순천과 광양 여수 등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그 인근 지역에 에이스를 선물하는 것들이 많이 퍼져서 전남 지역에서 이러한 에이스 데이가 굉장히 많이 활성화된 걸로 보입니다.

즉, 10대 여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된 ‘사적인 문화’가 세월을 지나 전남 지역 기념일처럼 자리 잡은 셈.

게다가 과거 전남을 연고로 둔 해태 타이거즈의 인기가 워낙 높았던 탓에, ‘해태’라는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전남 지역 정서에 녹아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실제 에이스 비스킷 포장지에는 지금도 이렇게 적혀 있다. “10월 31일은 ACE DAY” “에이스로 마음을 전하세요.” 근데 이날은 해태가 만든 날은 아니라고 한다.

전남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에이스데이’라는 문화가 형성됐고, 회사는 뒤늦게 이를 포장 문구에 반영했을 뿐이라는 것.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그럼, 에이스데이는 어디서 시작된걸까? 사실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대신 3가지 유력한 후보지가 있다.

첫째, 태백 기원설. 1977년 강원도 태백에서 황지중학교 남학생과 황지여자중학교 여학생이 서로 에이스를 주고받은 것이 시작이라는 얘기.

둘째, 광양 기원설. 1984년 광양여중 여학생이 짝사랑 남학생에게 에이스를 건네면서 시작됐다는 전설.

마지막은 삼척 기원설. 1990년대 강원도 삼척에서 친구에게 1개, 선생님에게 2개, 사랑하는 사람에게 에이스 3개를 주며 마음을 표했다는 설이다.

그런데 요 과자는 어떻게 사랑의 상징이 된 걸까?

[소성수 해태제과 홍보팀 부장]
에이스라는 게 그 당시에는 굉장히 고급 과자였잖아요. 그래서 고급스러운 비스켓으로 자기의 마음을 표시를 하는 그런 차원에서 좀 많이 확산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에이스는 1974년 해태제과가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크래커다. 그전까진 과자가 대부분 수입 제품이라, 우리 기술을 활용해 제작된 에이스는 출시 직후부터 ‘고급 간식’의 대명사가 됐다.

가격도 당시 기준으로 꽤 비쌌다. 라면 한 봉지가 35~40원 하던 시절, 에이스 한 봉지는 100원대였다. 이런 ‘고급 이미지’ 덕분에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에이스를 건네는 건 ‘마음을 표현하는 세련된 방법’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얘기.

에이스데이는 기업이 만든 상업 기념일이 아니라, 10대들의 소소한 마음 표현 문화가 지역을 타고 퍼져 하나의 전통처럼 굳어진 독특한 사례였다.

왱구님들 고향에도, 이렇게 지역 사람들만 아는 ‘비밀 기념일’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