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필수 칼럼] 침체된 경기 국면 속에서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중고차 수출 시장이다. 수출 중고차는 매년 등락을 반복하면서 꾸준히 확대돼 왔지만 최근처럼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사례는 드물다.
재작년 약 66만 대 수준이던 수출 물량은 지난해 80만 대 안팎까지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 내전 종식 이후 중동 수요가 회복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특수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결과다.
지난해 말 러시아의 중고차 수입 중단으로 시장이 일시적으로 주춤했지만 중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차가 내구성을 앞세워 강세를 보였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국산차 역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수출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수출용 매물이 부족해지고 일부 차종은 내수보다 수출이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산업 구조다. 수출 물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시장의 운영 방식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체계적인 성능 점검 없이 이뤄지는 거래, 주행거리 조작에 대한 우려, 임시 주차장과 컨테이너 사무실 중심의 열악한 환경 등은 오랜 과제로 지적돼 왔다.
단 하나의 현대화된 수출 중고차 단지조차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상황에서 해외 딜러들이 국내에 상주하며 매물을 직접 확보하는 구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응 역시 미흡하다. 최근 국회에서 수출 중고차 업 등록 등 제도 개선 논의가 시작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해외 사례를 참고한 한국형 선진 모델 구축까지는 갈 길이 멀다. 특히 수출 중고차 물량의 80% 이상이 집중된 인천 지역은 인프라 부족과 불법 주차 문제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다.
과거 추진됐던 '스마트 오토밸리' 역시 무산되며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부산이 새로운 대안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자동차매매사업조합을 중심으로 부산항 인근에 첨단 수출 중고차 단지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부산시 역시 관심을 보이며 항만 지역에 대규모 부지 조성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은 국내 최대 수출 항만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중부권 이남 물량을 흡수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물류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최근 내수 중고차와 수출 중고차 시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흐름 속에서 두 시장을 연계한 통합 모델을 구축하기에도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현대화된 단지 조성, 원스톱 수출 시스템 구축, 전문 수출 딜러 양성, 체계적인 성능 점검 기준 마련, 선박 확보와의 연계까지 이뤄진다면 부산은 국내 수출 중고차 산업의 대표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성공적인 거래 문화가 정착될 경우 지역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국내 수출 중고차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지만 부산의 수출 중고차 단지 조성 논의는 정체돼 있던 산업 구조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만간 예정된 관련 세미나를 계기로 논의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수출 중고차 산업은 완성차를 넘어 부품 수출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분야다. 부산의 도전이 국내 수출 중고차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