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 순식간에 넘었다"…삐삐 폭탄이 다시 불러온 '공포의 계절'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27. 09:03
[뉴스페퍼민트]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나이지리아 출신의 반체제 작가로,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는 2004년 BBC 라디오 초청 강연에서 당시의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일상 곳곳에 스며든 공포"를 꼽았습니다. 강연 내용을 엮어 펴낸 책이 (강연의 제목이기도 했던)
[ https://www.bbc.co.uk/programmes/p00ghvb7 ]"공포의 계절"인데, 소잉카는 9.11 테러 이후 모두가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74083?ReviewYn=Y ]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아 수천 명이 희생된 끔찍한 공격도 "테러"지만, 그 이후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똬리를 튼 극심한 두려움, 공포도 "테러"입니다. 실제로 "테러(terror)"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가 두려움, 공포심이고, 두 번째가 공포의 대상이나 두려운 존재, 그리고 세 번째가 테러 행위나 협박, 공격입니다. 세 가지 모두 엄밀히 따지면 조금씩 다르지만, 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개념이죠.
[ https://en.dict.naver.com/#/entry/enko/a75322da0aa74202af131e10d11860a5 ]
9.11 테러가 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내놓은 소잉카의 통찰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합니다. 당장 9.11 이전에는 없었는데, 그 이후로 생겨난 것들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려면 귀찮게 신발도 벗어야 하고, 노트북 컴퓨터도 가방에서 빼서 꺼내 놓아야 하며, 멀쩡한 물은 왜 버리라고 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은 테러범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요? 막연한 공포는 이미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귀찮아도 '만에 하나' 수상한 물건을 지니지 않은, 보안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한 안전한 사람들과 여행하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달래곤 합니다.
세계는 어느덧 23년째 "공포의 계절"을 살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한 두려움은 사실 평소에는 잠잠합니다. 그런데 이따금 그 공포가 발작하듯 요동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미국에선 총기 난사 사건이 그런데, 총기 문제는 유독 미국에만 있는 일이므로 차치하면, 지난주 이스라엘이 갑자기 레바논 일대에 감행한 "삐삐 폭탄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공포의 계절"은 우리 앞에 나타나 먹구름을 드리우고 태풍이 되어 몰아칩니다.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17일 오후 3시 반, 주로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레바논 남부 일대에서 매우 낯선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누가 폭탄을 던진 것도 아니고, 차량에 폭탄을 싣고 돌진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발전소나 기계실 같은 시설물이 폭발한 것도 아닙니다. 폭발물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던 삐삐였습니다. (이튿날에는 근거리에서 쓰는 무전기가 일시에 폭발합니다.) 폭발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읽으려고 삐삐를 가까이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소규모 폭발에도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삐삐 폭탄"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100명이 넘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헤즈볼라가 활발히 활동하는 지역뿐 아니라 레바논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보안 기술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가 이번 "삐삐 폭탄" 공격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먹는 것이든 공산품이든 오늘날 인류는 전 세계적으로 촘촘히 짜인 공급망에 의존해 생활합니다. 그 말은 곧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의 안전성을 100% 확인하고 보장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어디서 누구 손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이스라엘도 공급망의 취약한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헤즈볼라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데까지 손을 뻗쳐 이번 공격을 계획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부 통신 보안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간파당하자, 헤즈볼라는 상대적으로 기술이 단순해 오히려 도·감청이 어려운 무선 호출기로 연락망을 새로 구축합니다. 이런 계획을 미리 알아챈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헤즈볼라가 사들일 삐삐의 공급망을 몰래 장악했습니다. 헤즈볼라 대원들이 들고 있던 삐삐와 무전기는 대만의 한 브랜드 제품인데, 다만 대만에서 직접 제작해 수출한 게 아니라 헝가리에 있는 한 제조업체에 외주를 맡겨 생산한 제품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삐삐를 만든 외주 제조업체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소유, 운영하는 회사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즉, 운송 과정에 개입해 물건 몇 개를 빼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공급망에 깊숙이 침투해 적군이 사용하는 기기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납품한 겁니다. 지금까지 대응을 보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여기까지 손을 뻗쳤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던 것 같습니다.
[ https://www.nytimes.com/2024/09/18/world/middleeast/israel-exploding-pagers-hezbollah.html ]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이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뒤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레바논 국경을 넘어 군대를 주둔시키자, 여기에 저항해 결성된 민병대입니다. 시아파 무슬림들로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이스라엘을 향한 게릴라 공격을 펼쳤고, (이스라엘군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2000년에 이스라엘이 군대를 물리자 이를 승리로 규정하며 지역에서 세를 불렸습니다.
이후 레바논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남부 이스라엘과 접경 지역의 권력 공백을 메우며 제도권 정치에도 뛰어들어 무장 정파로 자리매김한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속에 상당한 로켓포와 미사일을 보유한 군대 조직을 갖췄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보다도 헤즈볼라를 훨씬 더 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동맹국은 헤즈볼라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감행해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헤즈볼라는 지속적으로 하마스와 연대를 표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북부 지역에 산발적으로 로켓포 공격을 가하는 등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견제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7f_tK5mE3L4 ]
다만 지난 1년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에는 갈등을 전면전으로 키우지 않는다는 모종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앞서 2006년을 비롯해 몇 차례 헤즈볼라와 전면전에 가까운 교전을 벌였지만, 끝내 헤즈볼라를 소탕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가자지구에 붙잡혀 있는 인질이 여전히 남은 상황에서 전선을 여러 개 유지하는 건 아무리 군사력이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에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헤즈볼라도 물론 상황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 이스라엘을 상대로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월 7일 이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쉼 없이 로켓포 공격을 주고받고 산발적인 교전도 벌였지만, 한편으로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음 세 가지 선을 넘지 않는 한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꼽아 왔습니다.
1.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군사 시설을 공격하더라도 헤즈볼라의 지도부 인사는 암살하지 않을 것.
2. 국경 지역에서만 전투를 벌이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공격하지 않을 것.
3. 헤즈볼라의 군사 시설과 대원만 선별적으로 공격하고 민간인은 최대한 공격하지 않을 것.
그런데 이스라엘은 11개월째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이 선을 지난주 한꺼번에, 순식간에 넘었습니다. 남부 레바논에 대대적인 공습과 폭격을 가해 헤즈볼라 대원이 아닌 민간인을 포함해 무려 560명이 숨졌으며, 수도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사령관 중 한 명을 살해했습니다. 지난 17일 처음으로 일제히 "삐삐 폭탄"이 터졌을 때만 해도 이스라엘의 계획이 무엇일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이 더 지난 지금은 이스라엘이 확전을 염두에 두고 헤즈볼라의 통신 장비를 무력화했다는 분석이 점점 더 정확해 보입니다.
[ https://apnews.com/article/israel-lebanon-hezbollah-gaza-news-09-24-2024-640a0046aceea1b5cfb395a54ff36bce ]
지금까지 대응으로 미뤄 보면, 헤즈볼라는 이번 공격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은 듯합니다. 당장 자신들이 적국 이스라엘이 만든 통신 장비를 쓴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셈이니까요. 공습에 대한 대응도 늦었는데, 전문가들은 헤즈볼라 내부 통신망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격으로 텔아비브를 향해 로켓포 여러 발을 발사했지만, 이스라엘의 에어돔 시스템이 미사일을 모두 격추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나이지리아 출신의 반체제 작가로,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월레 소잉카는 2004년 BBC 라디오 초청 강연에서 당시의 세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일상 곳곳에 스며든 공포"를 꼽았습니다. 강연 내용을 엮어 펴낸 책이 (강연의 제목이기도 했던)
[ https://www.bbc.co.uk/programmes/p00ghvb7 ]"공포의 계절"인데, 소잉카는 9.11 테러 이후 모두가 언제 어디서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74083?ReviewYn=Y ]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아 수천 명이 희생된 끔찍한 공격도 "테러"지만, 그 이후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똬리를 튼 극심한 두려움, 공포도 "테러"입니다. 실제로 "테러(terror)"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가 두려움, 공포심이고, 두 번째가 공포의 대상이나 두려운 존재, 그리고 세 번째가 테러 행위나 협박, 공격입니다. 세 가지 모두 엄밀히 따지면 조금씩 다르지만, 또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개념이죠.
[ https://en.dict.naver.com/#/entry/enko/a75322da0aa74202af131e10d11860a5 ]
9.11 테러가 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내놓은 소잉카의 통찰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합니다. 당장 9.11 이전에는 없었는데, 그 이후로 생겨난 것들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려면 귀찮게 신발도 벗어야 하고, 노트북 컴퓨터도 가방에서 빼서 꺼내 놓아야 하며, 멀쩡한 물은 왜 버리라고 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은 테러범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요? 막연한 공포는 이미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귀찮아도 '만에 하나' 수상한 물건을 지니지 않은, 보안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한 안전한 사람들과 여행하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달래곤 합니다.
"공포의 계절" 다시 소환한 '삐삐 폭탄'
현지시각으로 지난 17일 오후 3시 반, 주로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한) 레바논 남부 일대에서 매우 낯선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누가 폭탄을 던진 것도 아니고, 차량에 폭탄을 싣고 돌진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발전소나 기계실 같은 시설물이 폭발한 것도 아닙니다. 폭발물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던 삐삐였습니다. (이튿날에는 근거리에서 쓰는 무전기가 일시에 폭발합니다.) 폭발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읽으려고 삐삐를 가까이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소규모 폭발에도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삐삐 폭탄"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100명이 넘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헤즈볼라가 활발히 활동하는 지역뿐 아니라 레바논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보안 기술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가 이번 "삐삐 폭탄" 공격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지다... 세상을 뒤바꾼 이스라엘의 "삐삐 폭탄"
[ https://premium.sbs.co.kr/article/5oy6IWbjO ]
[ https://premium.sbs.co.kr/article/5oy6IWbjO ]
먹는 것이든 공산품이든 오늘날 인류는 전 세계적으로 촘촘히 짜인 공급망에 의존해 생활합니다. 그 말은 곧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의 안전성을 100% 확인하고 보장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어디서 누구 손을 거쳐 만들어진 물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이스라엘도 공급망의 취약한 지점을 공략했습니다. 헤즈볼라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데까지 손을 뻗쳐 이번 공격을 계획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부 통신 보안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간파당하자, 헤즈볼라는 상대적으로 기술이 단순해 오히려 도·감청이 어려운 무선 호출기로 연락망을 새로 구축합니다. 이런 계획을 미리 알아챈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헤즈볼라가 사들일 삐삐의 공급망을 몰래 장악했습니다. 헤즈볼라 대원들이 들고 있던 삐삐와 무전기는 대만의 한 브랜드 제품인데, 다만 대만에서 직접 제작해 수출한 게 아니라 헝가리에 있는 한 제조업체에 외주를 맡겨 생산한 제품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삐삐를 만든 외주 제조업체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소유, 운영하는 회사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즉, 운송 과정에 개입해 물건 몇 개를 빼돌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공급망에 깊숙이 침투해 적군이 사용하는 기기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납품한 겁니다. 지금까지 대응을 보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여기까지 손을 뻗쳤다는 걸 까마득히 몰랐던 것 같습니다.
[ https://www.nytimes.com/2024/09/18/world/middleeast/israel-exploding-pagers-hezbollah.html ]
혼란 틈타 확전 기획한 이스라엘
이후 레바논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남부 이스라엘과 접경 지역의 권력 공백을 메우며 제도권 정치에도 뛰어들어 무장 정파로 자리매김한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속에 상당한 로켓포와 미사일을 보유한 군대 조직을 갖췄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보다도 헤즈볼라를 훨씬 더 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동맹국은 헤즈볼라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감행해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헤즈볼라는 지속적으로 하마스와 연대를 표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북부 지역에 산발적으로 로켓포 공격을 가하는 등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견제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7f_tK5mE3L4 ]
다만 지난 1년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에는 갈등을 전면전으로 키우지 않는다는 모종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앞서 2006년을 비롯해 몇 차례 헤즈볼라와 전면전에 가까운 교전을 벌였지만, 끝내 헤즈볼라를 소탕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가자지구에 붙잡혀 있는 인질이 여전히 남은 상황에서 전선을 여러 개 유지하는 건 아무리 군사력이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에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헤즈볼라도 물론 상황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 이스라엘을 상대로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월 7일 이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쉼 없이 로켓포 공격을 주고받고 산발적인 교전도 벌였지만, 한편으로 갈등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해 왔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음 세 가지 선을 넘지 않는 한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꼽아 왔습니다.
1.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군사 시설을 공격하더라도 헤즈볼라의 지도부 인사는 암살하지 않을 것.
2. 국경 지역에서만 전투를 벌이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는 공격하지 않을 것.
3. 헤즈볼라의 군사 시설과 대원만 선별적으로 공격하고 민간인은 최대한 공격하지 않을 것.
그런데 이스라엘은 11개월째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이 선을 지난주 한꺼번에, 순식간에 넘었습니다. 남부 레바논에 대대적인 공습과 폭격을 가해 헤즈볼라 대원이 아닌 민간인을 포함해 무려 560명이 숨졌으며, 수도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사령관 중 한 명을 살해했습니다. 지난 17일 처음으로 일제히 "삐삐 폭탄"이 터졌을 때만 해도 이스라엘의 계획이 무엇일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일주일이 더 지난 지금은 이스라엘이 확전을 염두에 두고 헤즈볼라의 통신 장비를 무력화했다는 분석이 점점 더 정확해 보입니다.
[ https://apnews.com/article/israel-lebanon-hezbollah-gaza-news-09-24-2024-640a0046aceea1b5cfb395a54ff36bce ]
지금까지 대응으로 미뤄 보면, 헤즈볼라는 이번 공격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은 듯합니다. 당장 자신들이 적국 이스라엘이 만든 통신 장비를 쓴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셈이니까요. 공습에 대한 대응도 늦었는데, 전문가들은 헤즈볼라 내부 통신망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격으로 텔아비브를 향해 로켓포 여러 발을 발사했지만, 이스라엘의 에어돔 시스템이 미사일을 모두 격추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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