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사 닮아" 왜색 시비에 휩싸인 '논쟁 종합박물관'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1965년 건립이 추진된 박물관의 건축 면적은 707㎡다.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건축면적이 4만8644㎡인 것을 고려하면 작은 박물관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완공될 무렵 신문 톱기사를 오르내리며 여론을 뜨겁게 달궜다. 건축물이 사회적인 관심을 이렇게나 받다니 유례없는 일이었다.
명실공히 국립박물관인데 일본 신사를 닮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른바 ‘왜색 논쟁’이다. 일본이라면 치를 떨던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왜색 논쟁은 연일 신문지상을 달구며 확대되다가 건축계의 중재로 수그러들었다. 대신 건물은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 완공됐다. 이후 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993년 부여에 새 국립부여박물관이 지어지면서 더 잊혔다. 용도가 계속 바뀌면서 건물은 지금까지 살아남았지만 마땅한 새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옛 국립역사박물관 정도로 불리고 있다.
여론 들끓자 건물 일부 수정 뒤 완공
![일본 신사 건축의 특징인 ‘지기(千木)’는 지붕 끝에 X자 형태의 나무가 교차하는 형태다. [중앙포토]](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6/joongangsunday/20221016201319471kdgf.jpg)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1967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였다. ‘부여 박물관 건축양식에 말썽, 일본 신사와 같다’라는 제목의 톱 기사였다. 특히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박물관의 정문이었다. 일본 신사의 정문인 ‘도리이(鳥居)’와 비슷하다는 지적이었다. 하늘 ‘천(天)’자 모양의 큰 문인 도리이는 신성한 곳이 시작됨을 알리는 관문으로 세우는데, 일본에서 흔히 신사 앞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의 한 신사의 도리이. [사진 동아일보]](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6/joongangsunday/20221016201319802ffdm.jpg)
곧장 부여박물관의 건축양식을 조사하기 위한 심사위원회가 꾸려졌다. 14명의 심사위원은 공사현장을 답사하고 “와서 보니 도리이나 신사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일본식 냄새가 난다는 몇몇 의원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비범한 설계” “원시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평가한 심사위원도 있었다. 이후 건물 지붕은 일부 수정을 거친 뒤 완공됐다. 그리고 정문은 등나무를 심어 도리이로 의심받았던 형태를 감췄다가 어느샌가 철거됐다.
![박물관 정문이 일본 신사의 도리이와 닮았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왜색 시비가 붙었다. [사진 동아일보]](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6/joongangsunday/20221016201320085tyio.jpg)
부여 부소산 아래 관북리 일대는 백제 사비시기 도성 터로써 유력한 후보지로 꼽힌다. 1980년대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됐고, 백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됐다. 일본은 일찌감치 이 땅을 탐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고대 일본과 백제의 선린관계를 주장하기 위해 부소산 일대가 고대 일본인이 오래 전에 활동했던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부여가 내선일체 발상의 성지이자, 아스카 문화의 원천지라고 주장하며 관광사업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북리 일대에 신사를 짓고, 총독부 부여박물관을 만들었고, 공원조성 계획과 부여신궁 건설 계획까지 세웠다. 이런 예민한 역사를 품은 땅에 일본 신사를 닮은 듯 한 국립박물관이 지어진다고 하니 여론이 더 들끓었던 것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이 새 건물로 이전한 뒤 이 건물은 계속 용도가 바뀌다 2005년 또다시 철거 위기에 놓일 뻔했다. 고고학계에서 백제 유적을 완전히 찾기 위해 건물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다. 결국 건물 아래에는 관련 유적이 없을 것으로 추정돼 흐지부지됐지만, 박물관 건물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현재 건물은 백제 사비도성 가상체험관으로 쓰인다. 김 교수는 “결국 수없이 중첩된 여러 이야기는 사라지고, 백제왕궁으로서의 집단적 기억만 남겨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전통 건축은 근현대 한국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우리는 전통을 단순히 모방하고 있을까, 전통을 해석해 새로운 창조의 길로 가고 있을까. 국립부여박물관은 이 논쟁과 함께 늘 거론된다. 건물이 건립될 당시인 1960년대는 폭발적인 경제성장기로 국가 주도의 건축 프로젝트가 많았다. 당시 정권에서는 체제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건축 모방을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
백제 사비도성 가상체험관으로 쓰여
![부여박물관 주변에 건물이 빼곡했지만 백제 유적 발굴로 지금은 부여박물관을 제외한 대다수 건물이 철거됐다. [사진 동아일보·부여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210/16/joongangsunday/20221016201320495oylp.jpg)
전통 계승을 빙자한 모방의 대표적인 사례로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옛 국립종합박물관)이 꼽힌다. 1966년 공모 설계 당시 정부는 “건물 그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 여러 동의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법주사의 팔상전을 비롯해 9개의 전통건축을 디테일까지 묘사해 콘크리트로 재현시킨 안이 당선되자 건축계는 논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건립이 추진된 국립부여박물관은 이렇게 전통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서 왜색 시비에 휩싸였고, 김수근 건축가는 이후 칼을 갈듯 한국건축과 한국성에 대해 공부한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 사옥(1971~1977년)은 그 대표작으로 꼽힌다. 마치 한국 전통 건축의 흐름처럼, 비워내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공간 구성이 빼어나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자신에게 굴욕적이었던 사건을 자양분 삼아 진일보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김수근은 대단한 건축가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