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전쟁사 속 사례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
명나라는 ‘북로남왜의 화’라고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구에게 심각하게 시달렸습니다.

과장 조금 보태 명나라는 역사 내내
일본 왜구들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왜구도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요.

후기 왜구의 경우는
일본인 왜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 해적까지 연루되고
연합해있던 국제규모의 범죄조직이었습니다.

명나라는 3대황제 영락제 사후로 시행한 강력한 해금정책 때문에
불법적인 해상무역을 위한 강력한 해적집단이
공고하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그 어떤 관리나 장수를 보내도
일본 왜구와 중국 해적들의 카르텔을 토벌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지휘관으로 무능했다기보다는
명나라의 군사 및 국방시스템이 엉망이었는데,

군벌 형성을 극도로 꺼려했던 명나라에서는
지휘관과 군사들 간의 연대감과 단결력을 저해하는 체제였습니다.
군역제도도 폐단이 많았고 군사훈련도 한심하기 그지없었고

또 관리들도 부패해서 왜구 및 해적들과 결탁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걸 해결했던 게 신임지휘관 척계광이었습니다.
척계광은 철저하게 현실성에 맞게끔 군제를 개편합니다.

일명 원앙진이라고 하죠.
원앙진이라는 새로운 진법을 고안하고,
왜구들의 전술에 대응할 수 있는 적합한 훈련, 무기 등을 만들고,
군기와 단결력이 바싹 든 부대를 만들어냅니다.

당파와 낭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서로 다른 각자의 역할원들로
하나의 원앙진을 만듭니다.
예컨대 누구는 막고, 누구는 창으로 싸우고, 누구는 활로 쏘고,
누구는 분대장 역할을 하는 등등 말이죠.

보통 12명이
하나의 팀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군제 개편에 성공하여
척계광은 왜구들을 상대로 5년간
80여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왜구들을 토벌합니다.

훗날 척계광의 저서 <기효신서>는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수입되어
조선의 군제개편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새로운 무기도 그렇고
새로운 진법도 그렇고
무언가 타개하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훌륭한 지휘관은 재빠르게 새롭고 융통성 있는 방식을 고안해냅니다.

기존의 체제와 방식도
분명 어떠한 목적 하에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경우
전략을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문제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