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출하자 “위기단계별 기준가격에 생산비 적극 반영해야”
정부 기준값, 현실과 괴리
뒷북 대책에 손실 눈덩이
시세 변동폭 갈수록 커져
개정주기 단축해 대응을
정부의 농산물 수급정책 기반이 되는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이 올해 개정을 앞둔 가운데 출하자들이 생산비를 반영한 위기단계별 기준가격 설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정부의 수급정책 등에 활용되는 농산물 수급정책 매뉴얼은 2018년 도입된 개정안을 현재까지 별도의 개정 없이 운용하고 있다. 당시 개정 주기를 5년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올해에는 개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8조에 따라 2013년 정부가 설치해 운용하고 있는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의 정책 판단 기준이 되는 중요한 도구다. 매뉴얼은 품목별로 위기단계별 가격을 설정해 수급정책의 발동 시기를 제시하고 있다. 위기단계는 상승과 하락에 따라 주의·경계·심각 단계로 구분된다.
주의단계에선 산지 동향을 파악하는 수준의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계단계부터 비축물량 방출 또는 방출 억제 등 관련 기관 중심의 공급조절이 시행되고, 심각단계에선 관세 인하와 시장격리 등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품목별 위기단계 설정 기준이 농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2월 기준 겨울무의 시장격리 대책을 발동할 수 있는 ‘하락 심각단계’ 기준가격은 20㎏들이 한상자당 6702원이다. 하지만 제주도가 생산비를 포함해 산정한 지난해산 겨울무 손익분기점은 1만1550원에 달해 정부와 생산자간 시각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다.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출하자는 늦어도 손익분기점까지 가격이 하락하기 전에 시장격리 등 수급대책이 시행돼야 최소한의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데, 정부 기준가격이 너무 낮아 대책 발동 시기가 늦다보니 항상 뒷북 행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출하자들 사이에서 매뉴얼이 제시하는 기준가격이 농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하자들은 매뉴얼에서 기준으로 삼는 가격 등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배추·무·양파·배·겨울대파 등 관리품목 대부분의 위기단계별 기준가격은 서울 가락시장 등 도매시장의 상품 경락값을 기준으로 산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격 상위 5%의 평균 가격이 ‘특’, 35%는 ‘상’, 40%는 ‘보통’, 20%는 ‘하’로 산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상품 가격이 위기단계별 기준가격으로 대표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는 게 출하자들의 시각이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을 때는 보통·하품 가격은 폭락하고 상품 가격은 치솟는다”며 “이럴 때 상품 가격만 보고 상황을 오판해 수급대책을 발동하지 않거나 정반대 대책을 펼치면 보통·하품 출하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생산자들은 생산비를 적극 반영해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의 위기단계별 기준가격을 현실화하고 개정 주기도 단축해 수급대책의 유동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태문 마늘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최근 몇년간 생산비 급등 추세를 보면 변동폭이 이전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있어 매뉴얼 개정 주기를 기존 5년에서 2∼3년으로 단축해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품목별 생산비를 정확히 산출하고 이를 위기단계별 기준가격에 반영해 농가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을 준용하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병덕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농산물값이 오를 때는 매뉴얼상 위기단계별 기준가격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수급대책을 내놓지만 값이 폭락할 때는 매뉴얼은 참고사항일 뿐이라며 방관할 때가 있다”며 “이같은 이중 잣대로 인해 농가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 원예산업과 관계자는 “연구용역 자료를 토대로 농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해 올 상반기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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