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SUV 시장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윈스톰’은 분명 익숙한 이름입니다. 당시 싼타페와 쏘렌토, 그리고 GM대우 윈스톰이 삼파전을 벌이며 중형 SUV 시장을 이끌었죠. 그런데 최근 ‘쉐보레 캡티바 EV’가 등장하며 다시금 윈스톰의 이름이 소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름만 같을 뿐, 과거의 감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차량은 중국 우링자동차가 만든 전기 SUV ‘스타라이트 S’를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배지 엔지니어링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윈스톰’은 2006년 GM대우가 선보인 중형 SUV로, 세련된 디자인과 실용성, 경제성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쉐보레 캡티바’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수출도 병행했지만, 2011년 쉐보레 브랜드 전환 이후 국내에서는 윈스톰이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캡티바가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2025년, 이 ‘캡티바’가 다시 전기 SUV로 등장했지만, 이번엔 과거 윈스톰의 정체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캡티바 EV는 중국 내수용 스타라이트 S를 쉐보레 로고만 달아 글로벌 신흥시장에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전면부 LED, 간결한 디자인, 510km(CLTC 기준)의 주행거리와 7.7초 제로백 등 스펙은 나쁘지 않지만, 생산은 철저히 중국에서 이루어지며 북미나 유럽 대신 중남미·중동 시장 중심으로 판매됩니다. 쉐보레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중국 현지 전략에 특화된 모델이라는 점에서 ‘윈스톰 후속’이라는 수식어는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캡티바 EV는 더 이상 ‘국산 SUV의 자부심’이 아닙니다. 과거 윈스톰은 한국에서 개발되고 생산된 SUV였지만, 지금의 캡티바 EV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가진 글로벌 틈새시장용 전기차입니다. 브랜드만 보고 신뢰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소비자들은 배경과 제조국, 플랫폼까지 살펴보며 판단합니다. ‘중국차에 쉐보레 마크만 붙인 전기 SUV’라는 인식은 국내 시장에 들어올 경우 더 강한 거부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번 캡티바 EV는 윈스톰을 그리워하던 소비자들에게 혼란만 안겨주고 있습니다. 익숙한 이름, 낯선 실체. 브랜드에 기대던 시대는 저물고, 자동차의 진짜 가치는 그 속에 무엇이 담겼는지로 평가받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캡티바 EV는 그 상징적인 사례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